부끄러움의 정체를 밝힙니다

오랜 괴로움이 단지 반성 때문일까

by 박유미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라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했어. 지금 처음 말하는 거야." 왜 갑자기 그걸 털어놓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속으로는 수없이 되새김질 했으면서도 그게 입 밖으로 삐져나오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보다 더 어렵고 껄끄러운 일들도 기회가 되면 털어놓았는데 어째서 이 사건은 내게서 한 치도 떨어져나오지 못했을까. 아마도 이 기억이 곧 나 자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리라. 말하기 어려울 만큼 어마어마한 경험이어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누설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물론 이러한 분석은 몇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가능한 것이다. 불현듯 입을 열어 아무렇지 않은 듯 남편과 이야기하던 그때는 알 수 없었던 진실.

큰 결심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동안 거론하지 않은 게 당연한 일이었듯 지금 이야기하는 것 또한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대학교 다닐 때 한 친구가 TV 인터뷰에 등장했다가 심한 온라인 괴롭힘을 당했어. 나는 도움이나 위로를 줄만큼 성숙하지 못했지. 그러다 내가 인턴기자로 활동하게 되면서 온라인 괴롭힘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조심스럽게 친구에게 익명으로 인터뷰 할 수 있을지 물어봤고 그 친구는 노발대발했지. 짧은 생각을 곧 후회하고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렇게 친구와 절교했어." 오랜 시간에 걸쳐 내 마음을 좀먹었던 이야기는 간단하게 다섯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졸업 직전 그 친구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용기 내어 인사를 건넨 순간이 떠올랐다. 얼떨결에 환하게 웃으며 받아주던 그 친구의 얼굴도.

아무 말 없이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나의 고해성사를 듣고 그가 어떤 단죄를 내릴지 궁금했다. 그동안 이 다섯 문장을 꺼낼 수 없었던 이유는 결국 혼나고 싶지 않아서였고, 이제 나는 혼나야만 한다면 혼날만 하다고 느꼈다. 남편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스무 살이었잖아. 난 어렸을 때의 내가 짐승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하는데." 신부님, 이게 무슨 무성의한 답변입니까. 뜬금없이 당신의 방탕을 고백하시다니요. 나는 곧 신랄한 깨달음을 얻었다. 처음으로 눈을 똑바로 뜨고 스무 살의 나('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나'가 아니라 진짜 거기 있는 나)와 대면하자 그동안 내가 무얼 부끄러워 했는지 선명하게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하고 있다고 믿은 것은 처절한 반성이었으나, 실제로 해온 것은 '무결한 나'에 대한 환상에서 허우적거리는 일이었다. 반성은 정당하고 필요한 일이었지만, 나의 오랜 괴로움은 반성의 결과라기보다는 '티끌 없는 자아'를 의심하며 생겨나는 불쾌함이었다.


엊그제 유성구청 뒤편에 자리한 독립서점, 비블리오그라피에서 연말 회고모임이 열렸다. 나는 비블리오그라피의 단골인지라 같은 공간에서 사회학 특강을 들은 지 이틀 만에 또 찾아왔다. 둘러앉은 모임 손님들과 함께 세 쪽으로 곱게 접은 회고 기록지를 살피며 찬찬히 지난 한 해를 돌아보았다. 나는 '올해 버리고 싶은 감정, 후회, 습관'이라는 질문 아래에 가장 먼저 답을 적었다. 2025년을 모두 돌이키지 않아도 지난 목요일 이 자리에서 내뱉은 말로부터 답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버리고 싶은 것: 상대의 맥락을 사려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말을 내뱉기'.


목요일에 열린 특강의 주제는 부르디외 이론에 따른 '사회학적 자기분석'이었다. 끝날 무렵 내 옆자리의 고등학생이 사회학으로 진로를 택하면 어떤지 묻자 강연자가 자조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하면 어떤 어려움이 따르는지 잘 아는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농담 겸 진담이었지만, 이렇게 오늘 강연이 끝난다면 조금 슬플 것 같았다. 나는 왠지 격해진 마음으로 불쑥 끼어들었다. "스무 살 전에는,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는 세상이 정해준 쓸모 있는 것들만 하잖아요. 인생에서 4년 정도는 '쓸모 없는' 거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나에게 진실인 말이 저들에게도 진실인지 고려해보았나. 내 또래에 나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에게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말이었다하더라도, 저 자리에 앉아 강연을 듣던 석박사 연구원들과 고등학생들에게 그 말은 무례하고 난폭한 말에 불과할 수 있다.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강의를 2시간 동안 들어놓고 고작 그렇게 행동하다니.

집에 돌아오는 내내 괴로워하다가 책상 앞에서 일기장을 펴고 나서야 내 마음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또 무결한 자아를 향한 집착이 반성이라는 탈을 쓰고 숨어 있었다. 나는 반성과 집착을 딱 잘라 가른 다음 '적게(사려 깊게) 말하기'를 새해 목표로 다짐했다. 남편과의 고해성사가 없었다면 그날 밤 일기를 덮고도 쉽게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회고모임에서 목요일에 일어난 내 마음의 요동을 털어놓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불필요한 괴로움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던 생각을 하나 더 말씀 드리자면, 내 말이 상대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자기환상이라는 겁니다." 작년 이맘 때 시사주간지 독자위원회에서 해당 언론의 기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내가 그 잡지의 특성을 두루뭉술하게 비판하고 기자들이 반박하는 서너 마디의 간단한 대화가 있었다. 그날도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의 말들을 후회하며 부끄러움을 삭였다. 내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기자들이 나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을 텐데 나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볍게 말을 얹었을까. 단지 말할 수 있다는 데 재미가 들려 '말을 위한 말'을 하는 건 아닐까. 나는 내 말의 무게를 생각하며 한동안 반성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기자들은 해당 언론에 적대적인 극우인사들과도 부딪치는 사람들 아닌가. 나의 말이 그들에게 딱히 영향도 못 주었으리라 가정하니 그제서야 내 괴로움의 실체가 정확히 보였다. 결함 없는 자아라는 환상은 나의 영향력에 대한 과대평가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내 말을 듣고 "어떻게 (무결한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라고 여기리라 생각하니 그토록 힘든 것이다. 실제로는 "그럴만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여길 뿐이란 걸 깨닫는다면, 그러니까 내가 그만큼 어리석고 좁은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지난 밤 내가 가슴 아파했던 만큼 괴로울 리 없다. 강연을 함께 했던 연구원과 고등학생도 아마 나를 그렇게 여기고 금방 잊었을 것이다.

회고모임에서 낯선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신나게 말하고 난 다음은 매번 그렇듯 굳이 보태지 말았어야 할 말들이 떠오른다. 내년 회고모임에서는 또 어떤 부끄러움을 고백하게 될까. 작고 보잘 것 없는 내가 반성하고 용기 내며 살았다고 자랑스러워할 기회도 찾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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