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과 죽음 사이의 이야기

난임하는 마음을 통과하며

by 박유미

'난임하는 마음은 난임하는 사람만 알지요.' 시험관 시술로 유명한 M의원 여자화장실에는 '휴지는 휴지통에' 대신 이 말이 적혀있다. '난임하다'라는 단어가 흥미로웠다. 더 흥미로운 건 여기에서 말하는 '난임하는 사람'이 곧 나라는 사실이었다. 다달이 배란유도제와 주사, 초음파검사를 반복하고 이제 인공수정을 시작하는 만 37세 여성, 그게 나였다. 그렇지만 '난임하는 사람'이 견뎌내고 이뤄내야 할 숭고한 무언가가 내게는 멀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아이를 낳고 싶어 병원에 찾아온 사람, 둘째가 갖고 싶어 6년을 기다렸고 토요일 진료를 위해 2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매달 피가 비치면 새삼스럽게 실망했다. 실패가 거듭될수록 좌절에 점점 익숙해진다는 게 그나마 나를 안심시켰다. 내가 너무 임신을 간절히 원할까봐 걱정스러웠다. 내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정말 선택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가 포기하려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감수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잠 못 이루던 어느 새벽 순진한 용기가 솟아 올랐다. 일단 시도해보고 너무 힘들면 바로 그만 두자. 결국 나홀로 남더라도 '난임을 겪은 몸'은 되어볼 테고, '난임을 통과한 마음'은 알게 될 테니. 내가 실제로 겪은 치료 과정에는 예상치 못한 돌부리들이 가득했다. 아직 본격적인 시술이 아닌 배란 유도 단계의 치료만 했는데도 배탈로 몇 달을 고생하고 병원과 불협화음도 겪었다. 무기력과 어지러움을 이겨내고 무성의한 의사와 간호조무사를 피해 전원을 택하기까지 한참 걸렸다. 앞으로 이어질 인공수정과 체외수정 시술은 얼마나 나를 헝클어놓을지 상상조차 안된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난임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게 조금 더 가뿐해졌다. 지난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생각하니 '난임하는 이들' 사이에 내 마음 겹치는 게 어색하지 않다. 적어도 '난임하는 마음'만큼은 내 것이 되었다.




탄생과 죽음을 잇대는 것이 거북할지도 모르겠다.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시간을 다룬 빌 헤이스의 <인섬니악 시티>를 꺼내들었다. 굳이 그래야만 하니까.


올리버 색스는 치료 가능성이 거의 없는 암 전이 소식을 듣고 "슬프고 충격적이고 두려운 것은 맞다. 하지만..."으로 시작하는 메모를 남겼다. 죽음 앞에서도 위대한 긍정과 재치를 보여준 여덟 개의 항목 중 두 번째는 "인생을 완결할 시간"이었다. 나는 완결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옆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죽음이 내게 '너는 누구인가' 물을 때 '좋은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었다고 답하고 싶다. 죽음, 그것이 언제 찾아오든 죽음 앞에서 망설임 없이 '좋은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내 삶은 그 몫을 제대로 해내고 완결했다고 느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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