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세우는 새벽

아이의 목소리에 길들여진 시간

by 박유미

오전 6시 20분, 안방에서 자던 혁이 날카롭게 나를 부른다. "엄마!" 작은방 책상에 가만히 앉아 일기를 쓰던 나는 아이의 쨍한 목소리를 듣고 흠칫 놀란다. "엄마, 와주세요!" 내가 곧바로 찾아가지 않으면 아이는 더욱 간절하게 외친다. 막상 가서 살펴보면 급한 사정도 없다. 그냥 자다가 반쯤 깨서 엄마를 찾는 것뿐이다. 굳이 사정이라면 엄마 새끼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싶으니 얼른 꼭 껴안고 자기를 재워달라는 것 정도. 수면습관을 똑똑하게 잘 들이면 해결되었을 일이나 나는 6년 내내 아이 목소리에 귀를 세우고 부르자마자 달려가길 반복했다. 매일 함께 잠든 것은 물론이다. 덕분에 나는 오후 8시 30분만 되면 잠이 쏟아지는 몸을 갖게 되었다. 아이가 종알종알 계속 떠들어도 30분 내로 곯아떨어질 수 있다.


밤 시간을 유용히 쓸 줄 모르는 내게 새벽이 주는 고요는 귀하다. 글 쓰고 책 읽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없다. 내 앞으로 뛰어들어와 무릎 위를 차지하거나 자기 책을 들이밀며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아이 대신 무심한 적막만이 찾아온다. 나는 하얀 적막 속에서도 혁의 동그란 얼굴을 끄집어낸다. 신생아 때는 안아 재우다가 내려놓으면 눈치 빠르게 깨서 울었다. 눕혀 재울 방법을 이리저리 강구하다가 아이를 안은 채로 점점 몸을 앞으로 기울여 세배 하듯 바닥에 엎드렸다. 조그마한 양손으로 꼭 붙잡은 내 새끼손가락을 빼면 어김없이 깰 테니 어정쩡하게 구부린 자세로 한 시간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 돌 무렵에는 상황이 심각했다. 새벽마다 잠이 깨지도 않은 상태로 두 시간씩 쩌렁쩌렁 울었다. 아이를 뒤흔들어 깨워도 곤히 잠든 채로 사이렌처럼 소리를 질렀다. 흔히 야경증이라고 부르는데, 그 시기를 견디는 것 말고는 치료방법도 딱히 없단다. 층간소음 신고가 줄이어 관리사무소 직원이 거듭 찾아오기까지 했다. 나는 자정이 갓 넘은 시간에 우는 아이를 붙잡고 면벽수련하듯 앉아 괴로움을 삭여야 했다.


작은방에서 안방까지 달려가는 데 4초면 충분하다. 몸을 둥그렇게 말아 아이의 다리를 내 다리 사이에 끼우고 오른팔로 등을 감아 안은 다음 서로의 이마를 맞댄다. 아이는 내 왼손을 만지작거리며 금세 만족하고 다시 잠에 빠져든다. 언제 이렇게 커졌지. 오늘 처음 안아보는 것처럼 낯설게 아이의 몸집과 단단함을 헤아린다. 몸을 움직여 빠져나가면 금방 깨서 엄마를 외칠지 모르니 굳어진 모양으로 한참 버텨본다. 언제라도 쉽게 깨질 수 있어서 더 소중한 찰나의 기쁨. 엄마를 제일 좋아하고 엄마에게 먼저 의지하는 아이의 짧은 한 때가 쏜살처럼 지나간다. 아이의 보드라운 뺨을 내 뺨에 살짝 갖다 대고 작은 콧구멍에서 나오는 따뜻하고 향긋한 숨을 들이마신다. 잠자리 습관을 제대로 들이지 못한 미련함을 탓하면서도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찰나일 뿐이라며 오늘도 나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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