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해도 될지 묻는 나 자신에게
"어제는 오전 내내 어지럽더니 오후에 몸이 추웠다 더웠다 하고 배가 아팠다." 지난 주 발행한 글에 적은 문장이다. 현기증과 오한과 복통이 내게는 흔한 일이라 병원에 가보라는 남편의 말은 귓등으로 넘겼다. 특히 생리 직전은 여기저기 탈이 잘 나니까. 물론 난임 치료 중이니 임신 증상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하면 두 줄이 나올지도 모른다. '상식적인 추측이 아니라 터무니 없는 망상이야!' 내 안의 누군가가 나를 맹렬히 비난했다. 언젠가부터 임신을 예상하며 설레는 것조차 범법행위처럼 느껴졌다. 난임 병원을 다니는 1년 동안 똑같은 생각을 열두 번 했고, 그래서 열두 번에 걸쳐 벌을 받지 않았냐고, 그럼 네가 하는 기대가 죄가 아니면 무엇이겠냐고, 내 무의식이 나를 매섭게 추궁했다. 임신테스트 결과를 확인할 때마다 한껏 기대했던 방금 전의 나 자신이 너무 미워서 마음 한 쪽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괴롭히는 건 임신이 안 됐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이번 주기에 실패했다고 영영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뜻은 아니지 않나. 다만 반복되는 기대와 좌절이 나만의 감옥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형벌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우울함을 끌어모아 글 한 편을 빚고 나니 마음이 조금 든든해졌다. 아랫배가 얼얼하게 아프고 여전히 손발이 차가워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1년 동안 자기 훈육이 확실히 되었는지 통증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임신의 가능성은 털끝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이제 헛된 기대 때문에 바위를 산 꼭대기까지 올렸다가 다시 떨어뜨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아. '임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왜 나쁘지?' 처음 들리는 낯선 목소리가 내 무의식에 반기를 들었다. '따지고 보면 기대가 아니라 비난이 잘못된 거잖아.' 그러고 보니 내가 괴로웠던 건 기대가 꺾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고통에 명분을 붙일 좋은 기회를 잃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던 것 같다. 지긋지긋한 아픔에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 내가 기꺼이 감당하기를 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임신테스트기를 들여다 볼 때마다 이번 통증이 '그 무엇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폭 덮은 채로 내 가슴 속을 누비고 다녔다. 감았던 눈을 뜨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게 느껴졌다. '내일 테스트 해보면 임신일 수도 있어. 설레며 기다려보자. 아닐 수도 있지만 괜찮아.' 산뜻한 목소리가 반가웠다. 바위를 등에 메고 오르는 게 쉬운 일이라는 건 아니야. 더군다나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라면. 그래도 데굴데굴 굴러가는 바위를 가만히 지켜보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세상의 순리를 발견하겠지.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는 땀에 젖은 목덜미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주변 풍경도 바라보자. 나의 허약함이 해낼 수 있는 수많은 무용한 일들이 내 생애를 가득 채우리라는 예감이 따듯한 공기처럼 나를 감쌌다.
임신을 확인한 지 딱 일주일 지났다. 지금 병원에 가봤자 아기집이나 겨우 확인할만큼 초기라서 진료는 다음 주 수요일로 예약했다. 자잘한 증상의 목록에 울렁거림과 변비가 추가되었고, 석 달째 다니던 복싱장은 관장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글러브와 신발을 챙겨 나왔다. 조심조심 가벼운 산책만 하고 어지럽고 울렁일 때마다 누워 지내며 꽤 단조로운 일주일을 보냈다. 선명한 두 줄을 내 눈으로 직접 보니 그저 신기했다. 화장실을 나서며 남편을 불렀다. 너무 기쁜 걸 들키기 싫어서 침착한 표정으로 말하고 싶었는데 뒤돌아서 거울을 보니 웃음이 숨겨지질 않았다. 양가 부모님, 우리 언니, 내 친구, 친하게 지내는 애엄마들, 남편의 조기축구 회원들에게 아직은 너무 이르지만 임신 소식을 알렸다. 일부러 알렸다기보다는 함께 이야기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 비집고 튀어나와 자연스럽게 알려졌다. 유산 확률이 높은 임신 초기에 섣부르게 일찍 말하는 게 너무 경솔한 거 아닐까 고민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굴에 가득히 퍼져나가는 웃음을 숨기지 말자고, 설레는 마음과 소박한 기대감을 그 자체로 사랑하자고 결정했다. 이게 지금의 유일한 나니까. 내 앞에 어떤 무용한 일들이 펼쳐진대도 그 모든 순간에 유일하게 반짝이는 누군가가 존재했노라고 기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