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등사>와 <쓸데없는 화살>을 읽으며
수시로 무기력을 느끼고, 근무 중에 공황으로 과호흡을 겪고, 폐렴으로 입원까지 했다. 모두 2024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일이다. 이렇게 허약해서 어떡하냐고 누가 말하면 "이래봬도 살아오면서 가장 건강한 상태"라고 대꾸했다. 역설이나 조소를 담은 표현이 아니었다. 지금껏 살아온 어느 때보다도 몸과 마음이 쌩쌩했다. 평생을 골골거리며 살아온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통증과 무기력은 조금 번거로운 일상일 뿐이다. '얼마나 아팠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활력을 느꼈는지'가 나 같은 이에게는 건강을 감지하는 중요한 척도이다. 사무실에서 후배를 도와주는 기쁨과 북토크 자리에서 독자를 만나는 반가움은 내 몸에서 '건강 감각'으로 해석되었다.
10시간씩 자야만 다음 날을 간신히 버티던 당시에 비해 지금은 체력이 좋아졌다. 과도한 업무분장으로부터 도망쳤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일을 쉬기만 하면 온갖 증상이 말끔하게 사라질 거라고 기대한 건 착각이었다. 어제는 오전 내내 어지럽더니 오후에 몸이 추웠다 더웠다 하고 배가 아팠다. 어쩔 도리가 없어 이불 아래 누워만 있다가 몸을 일으키며 생각했다. '그래도 점점 더 건강해지고 있잖아?' 이번에 갖다 댄 건강의 첫도는 '기운 없이 누워있는 날이 얼마나 자주 오는가', 다시 말해 방전 주기였다. 일하던 때는 거의 매일, 휴직 초기에는 사흘에 한 번, 지금은 거뜬히 일주일을 버틴다. 어째서 일을 쉬자마자 튼튼해지지 않는가 괴로워하다가. 몇 달에 걸쳐 '이게 다름 아닌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내 생애에서 제일 건강하다.
허약함은 내 정체성 중 하나가 되었다. '허약'이라는 단어는 너무 허약하다. 암이나 희귀질환으로 투병하며 아픔을 처절히 통과한 사람들 앞에서 내 통증과 막막함은 '허약하게' 느껴진다. 이름이 명확하게 붙지 않은 아픔은 꾀병처럼 여겨진다. 남이 그렇게 여길 뿐 아니라 스스로 속이기도 한다. 내가 그렇게까지 자주 아플 리 없어. 현명하지 못한 자기기만이 모두를 속이는 동안 나는 허우대 멀쩡하고 게으른 사람이 된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남편에게 화를 내는 때는 사실 내 자신에게 화가 났을 때다. 남편이 나를 불성실한 사람으로 몰아가도록 스스로 방치했다는 걸 눈치 채고 나면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 평생에 걸쳐 원망하고 외면해온 나의 허약함.
다와다 요코가 쓴 <헌등사>에는 과일을 씹지 못하고 몇 걸음 걷기도 버거워하면서 '스스로 불쌍하다고 여기는 기분을 모르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지진과 원전사고 이후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어두운 작품인데,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무메이의 이야기가 내게 이상한 위로를 주었다.
무메이는 '괴롭다'라는 말의 뜻을 모르는 양 기침이 나오면 기침을 하고, 음식이 식도로 역류하면 토할 뿐이었다. 물론 아픔을 느끼지만 요시로가 아는, "왜 나만 이리 괴로워야 하지." 같은 우는소리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고통이었다. 그것이 무메이 세대가 부여받은 보물일지도 몰랐다. 무메이는 스스로 불쌍하다고 여기는 기분을 모른다.
- 다와다 요코, <헌등사>, 민음사, 2025, 41쪽.
무메이는 겉으로 보이지 않게 매일 근육을 기른다. 자랑하듯 밖으로 울퉁불퉁 발달한 근육이 아니라, 무메이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걷는 데 필요한 힘을 몸속에 그물처럼 치는 것이다. (중략) 모두가 문어처럼 땅을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면 무메이는 올림픽에 나갈지도 모른다.
- 같은 책, 119~120쪽.
무메이는 혼자 외출했을 때 일부러 언덕에서 굴렀고, 그렇게 휠체어가 뒤집히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구르면서 몸을 휠체어 밖으로 내던지고, 바닥에 누운 채 뒹굴며 하늘을 바라본다. (중략) 인력이 미련처럼 잡아당기므로 우주로 떨어질 수가 없다. 하늘을 보면서 호흡을 한다. 불안은 없다. 무메이 세대는 비관하지 않는 능력을 지녔다.
- 같은 책, 140~141쪽.
허연 시집 <작약과 공터>에 실린 '쓸데없는 화살'도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쓸데없는 화살
-시작법(詩作法)
발견한 모든 성분들을
밤하늘에 던지는 일
아픔으로 알게 된 사실은
다 말할 수가 없으니까
병은 철저히 내 것이니까
틈이나 경계 이런 데서 살다가
가끔씩 처벌받고
인간에게 소리 지르다가
노을로부터 대답을 듣고
최후에 온 자들과
세계의 마지막을 반칙으로 만드는 일
매번 깨닫지만
고백은 고백 속에서만 존재하고
그러다
계속 고백하는 자로 남는 것
(이하 생략)
- 허연, <작약과 공터>, 문학과지성사, 2025년, 38쪽.
다와다 요코와 허연의 작품을 작가의 의도대로 읽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무슨 병을 앓으며 살아왔는지, 아픈 몸 때문에 어떤 좌절을 겪어왔고 무슨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 어째서 나의 불편함을 긍정하는 게 오랫동안 불가능했는지, 내 몸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글을 쓰는 게 가능한지, 나는 이 모든 생각들을 꾸깃꾸깃 눌러담아 허약함에 대한 첫 글을 쓴다. 허공 속으로 '쓸데없는 화살' 한 방을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