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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Feb 24. 2021

파나마 운하

초고속 수로 건설에 얽힌 이야기

운하(運河 canal)는 선박의 항행이나 관개, 급배수 등을 위해 만든 인공 수로다. 운하는 인간이 효율적으로 교류, 이동하고 싶은 욕망의 분출 작용이며 인류가 남긴 경이로운 인공 구조물이 아닐 수 없다. 운하가 없다면 인간은 훨씬 더 높은 비용과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태평양과 인도양을 항해할 것이다. 터어키와 중국을 잇는 실크로드가 천연의 육상 지름길이라면 대양과 대양을 이어주는 운하는 인공의 해양 지름길이다.


세계에는 많은 운하가 있지만 태평양과 카리브해(대서양)를 연결한 파나마 운하 건설에는 파란만장한 사연이 많았다. 파나마 운하의 길이는 수에즈 운하 길이의 정확히 2분의 1이다. 두 운하의 공사 기간은 엇비슷했다. 공사기간에서 길이는 문제가 아니다. 공사 환경과 공사 기간은 비례한다. 파나마 운하 공사에 환경의 제약과 난관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파나마 운하 건설에 가장 먼저 뛰어든 나라는 스페인이었다. 1534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페인은 아메리카를 먼저 발견하고 여러 지역에서 식민체제를 구축, 운영하고 있었고 운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 필요성은 배를 타고 극지를 돌고 돌아 목적지까지 가 본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가장 필요성을 절감한 사람은 1592년 멕시코 아즈텍 문명을 파멸시킨 코르테스였을 것이다. 이후로도 잉글랜드(1668년), 스코틀랜드(1689년), 프랑스(1882년)가 운하 건설을 시도했지만 포기했다. 운하는 두 육지를 연결하는 좁고 잘록한 지협(地峽)을 뚫고 대양과 대양을 연결하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던가. 프랑스는 1869년 수에즈 운하를 성공적으로 건설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파나마 운하 건설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왜, 유럽국가들은 파나마 운하 건설의 실패를 반복했을까? 중동의 수에즈 지협과 아메리카의 파나마 지협은 주변 환경이 너무 달랐다. 수에즈 지협은 지형이 건조한 사막지대였지만 지대는 평평했다. 반면 파나마 지협은 산악지대가 많고 열대의 숲과 강으로 둘러싸였다. 열대의 강과 숲에는 치명적인 전사들이 우글거렸다. 모기다. 열대의 고온 고습한 운하 부지 주변에는 모기 천국이었다. 모기 매개 전염병인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당시 파나마 공사 현장에는 이런 말이 나돌았다. "그곳에 가는 백인은 멍청이며 그곳에 머무는 백인은 더 멍청하다." 모기를 득실대는 공사 현장은 킬링 필드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이 잽싸게 기회를 포착했다. 19세기 말 미국은 신흥 제국주의로 부상한다. 유럽은 그동안 미국이란 젊은 호랑이(young tiger)를 키웠다. 주변 국가들은 신흥강국 미국이 유럽 제국주의와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약소민족이 자주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기대는 환상에 불과했다. 미국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나라였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국가 간의 신뢰를 손바닥 뒤집듯 했고 밀약 외교도 서슴치 않았다. 미국을 가장 믿었던 나라는 바로 우리의 조선이었다. 고종은 한미수호통상조약(1882)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의 한반도 지배의 마수로부터 조선을 지켜내려 했지만 국제질서의 냉혹한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오히려 미국만 쳐다보고 있다가 쓸 수 있는 카드도 놓쳐버렸다.


파나마 운하 건설 이전 미국의 산업기지는 동부에 위치하고 있어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면 남아메리카 칠레의 케이프 혼을 돌아야 했다. 미국의 동부는 태평양과 고립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운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1858-1919 재임 1901-1909)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프랑스로부터 파나마 운하 사업권을 4,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루스벨트는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긴 그 당사자다.(루스벨트는 러일전쟁을 종식시킨 공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루스벨트는 국방부 해군 담당 차관보를 역임하면서 해양 진출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알았다. 급기야 1903년 파나마 운하 건설을 위해 콜롬비아의 한 주에 불과했던 파나마 주를 독립시켰다. 무력개입을 통해서다. 신진 제국주의 호랑이가 발톱을 보인 순간이다. 미국식의 제국주의 경영방식이다.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를 세워 현지에서 식민 경영을 했다면, 미국은 적극적인 내정간섭을 통해 국가를 전복시켜 목적을 달성한다.


1904년부터 본격적으로 운하 건설을 시작하여 1914년 8월 4일 개통했다. 운하의 길이는 82km다. 총 3억 8천700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4천억 달러, 한화 약 471조 6천억 원)가 투입되었다. 2019년 우리나라 국가예산의 규모가 470조였다. 인명 손실도 컸다. 얼마만큼 난공사였는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2만 5천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이 중 프랑스에서 시작한 공사로만 2만 2천 명이 사망했다. 공사로 인한 사고보다는 말라리아와 황열병 등 풍토병에 의한 희생자가 대부분이었다. 파나마 운하는 이후 미국이 독점적으로 관할하다 1977년부터 파나마와 공동 운영했고, 1999년 파나마 소유가 되었다. 


파나마 운하는 카리브해(대서양)와 태평양을 연결한 초고속 수로다. 파나마 운하가 없다면 선박들은 남미 최남단 케이프혼을 돌아가야 한다. 미국 선박이 대서양 뉴욕에서 태평양 샌프란시스코까지 항해한다고 가정하자. 파나마 운하 덕분에 케이프혼을 돌 때의 22,500km에서 9,500km로 단축시켰다. 운항일수, 수송거리, 비용 절감이 대단하다. 이러니 운하를 건설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중국도 파나마 윗쪽에 위치한 니카라과에 운하(278km)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운하를 놓고 미중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


미국은 어떻게 파나마 운하 건설에 성공했는가? 운하 건설 공법 등을 제외하더라도 결정적 성공요인은 열대 모기 매개 질병을 퇴치하는 의약품 개발과 공중보건위생 개념의 도입이다. 특히 말라리아와 황열병을 퇴치하는 의약품 개발은 일등공신이었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공사로 사망한 2만 2천 명 대부분이 모기 매개 전염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은 공사 진행의 최대 장애는 모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은 모기 때문에 공사를 포기하고 돌아갔다. 미국은 열대 질병을 극복하는 보건위생 개념과 의약품을 개발하면서 남아메리카에서 정치경제적 지배를 확대시킬 수 있었다. 다른 국가보다 앞선 의약품의 개발이 미국 제국주의와 유럽 제국주의의 차이였다.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관문을 확보한 미국은 여세를 몰아 필리핀, 하와이, 쿠바, 사모아, 사이판, 괌 등의 섬을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다. 열대 풍토병을 퇴치할 수 있는 국가가 해양을 제패할 수 있었다. 


실패학의 사례로 프랑스 이야기를 해보자.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는 파나마 운하 건설에 자신감을 보였다. 프랑스는 유럽 국가들 중 운하 건설 역량이 가장 높은 국가였다. 지나친 자신감이 문제였다. 과도한 자신감은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높다. 프랑스의 운하 건설 책임자들은 열대 모기가 전염시키는 말라리아와 황열병의 대처에 안이했다. 모기는 프랑스의 국가 프로젝트를 좌초시켰고 체면을 구겼다. 덩치는 작지만 열대의 강과 숲에 서식하는 모기는 이방인을 환영하지 않았다. 탱크와 대포보다 치명적이었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식 주거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정원을 만들고 열대 개미의 접근을 막기 위해 나무 주위에 도랑을 만들기까지 했다. 열대 모기들을 위한 최상의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유럽의 문명인들이 현지인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고집을 피우다 엄청난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문명화란 곧 철저한 현지화라는 사실을 역사는 깨닫게 해 준다. 


반면 운하 건설에 후발 주자로 뛰어든 미국은 유럽 국가들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다. 미국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열대 모기 퇴치를 위한 노동환경의 개선과 퇴치제 개발이었다. 노동자의 숙소를 청결하게 유지하고 모기 서식지를 근절하는 데 시간과 돈을 들였다. 이 노력은 효과를 보았다. 열대 제국주의 경영에 가장 큰 공로자는 의학의 발전이었다. 역사의 교훈에서 배우는 국가와 무시하는 국가와의 차이다.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데 있다." 토인비의 말이다. 역사의 반복은 시간과 공간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인간은 역사의 냉혹함 앞에 속수무책이다. 


아틀라스 뉴스. [물과 전쟁] ‘미국의 세기’ 연 파나마 운하. 2019년 4월 18일.

연합뉴스. <파나마 운하 확장> ① 9년간의 대공사…366m 길이 배도 통행 '거뜬'.  2016년 6월 19일.

조선일보. "어떤 공사였길래" 2만 명 넘는 근로자가 죽어간 기적의 운하. 2017년 4월 30일.

최태성(2019). 역사의 쓸모. 다산초당.

Marshall, T. (2015). Prisoners of geography. 김미선 역(2016). 지리의 힘. 서울: 사이.

Winegard, T. C. (2019). The mosquito:  A Human history of our deadliest predator.  서종민 역  (2019). 모기. 커넥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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