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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12. 2021

합종연횡의 부활

미국과 중국의 세계 패권 전략


1756~1763



중국의 주왕조(1046-256 BC)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 존속한 나라이며, 무려 790년간 왕조를 이었다. 주왕조는 봉건제를 시행하면서 여러 제후들을 거느리며 거대한 중국을 통치했다. 기원전 771년 북방 이민족이 주나라를 침략하여 주왕(유왕)을 살해하는 사건 이후 주왕조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제후들은 새로운 왕을 옹립하고 호경(鎬京, 현재의 시안시 부근)에서 낙읍(洛邑, 현재의 낙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를 기준으로 이전을 서주(1046-771 BC), 이후를 동주(770-221 BC)로 구분한다. 춘추전국시대(춘추시대 770-403 BC, 전국시대 403-221 BC)는 바로 동주 시대를 일컫는다. 이 시대의 역사 소설을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라고 한다. 시대 구분은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주장한 기준에 따른 것이다. 사마광이 전국시대의 시점을 BC 403년으로 잡은 것은 주왕조가 진(晉) 나라를 3분하여 한(韓)ㆍ위(魏)ㆍ조(趙) 3가(三家)를 봉후한 사건을 기준으로 한다.


잠시 화제를 바꿔 춘추전국시대의 경국경성(傾國傾城), 즉 나라를 망하게 하거나 성을 무너뜨릴 정도의 미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잘나가던 나라가 혼란 빠지거나 망하는 것은 아둔하여 간언을 무시하고 고집을 부리는 군주에게 있지만, 이런 군주 미인의 조합은  결국엔 나라를 망하게 한다.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위태로워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면 누군가에게 원인을 돌려야 할 때 혼군과 미인을 묶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주나라 이전 하나라의 걸(桀)은 말희(末喜) 때문에 망했고, 은나라는 주(紂)는 주지육림의 달기(妲己)를 총애하다가 나라를 망쳤다. 그러니 중국 역사에서는 요순(堯舜)을 태평시대의 대명사로, 폭군의 대명사로 걸주(桀紂)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나라의 부차가 와신상담의 월나라 구천에 패배한 이유는 월나라가 보낸 서시(西施) 때문이었다.


서주의 마지막 왕 유왕(재위 781-771 BC)에게는 포사(褒姒)가 있었다.  일화가 있다. 포사는 웃지를 않았다. 유왕은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국가안보시스템을 이용했다. 주나라는 대대로 이민족 서융(西戎)의 침략을 막기 위해 여산 아래 봉화대를 설치하고 유사시 봉화를 올리면 제후들이 군대를 이끌고 오게 되어있다. 유왕은 이 시스템을 이용하여 봉화를 올렸다. 봉화를 본 제휴들은 이민족의 침략인 줄 알고 급하게 군대를 이끌고 왔지만 왕의 장난이었다는 말을 듣고 군대를 물리게 되었다. 포사는 제후들이 분노한 채 허탈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웃었다고 한다. 이런 희롱이 몇번 있는 와중에 이번에는 진짜로 서융이 침략해왔다. 실제 상황봉화올랐지만 어떤 제도 군대를 파견하지 않았다. 애첩을 웃게 하려는 왕의 희롱에 다시 속고 싶지 않아서였다. 결국 포사에게 빠져 헤어나지 못한 유왕은 도망치다 죽고 더이상 주나라는 수십 제후국을 호령하던 위엄있는 국가가 아니었다.


아무튼 동주 시대에는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지방에서 유력한 패자들이 등장하여 천하의 패권을 다투었다. 주나라가 오랫동안 중국 역사에서 지속된 것은 천자를 받는 나라라는 상징성과 제후 간의 경쟁 심리로 멸망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주나라 초기에 제후국은 1천 여국에 달했는데 점차 줄어 마침내는 10여 개국으로 쪼그라들었다. 중화의 중심 국가로서 주나라가 쇠퇴하면서 구심점이 흔들리게 되자 여러 제후들이 스스로 왕을 칭하였는데 진, 초, 제, 연, 한, 위, 조 등 7국이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였다. 군웅할거 시대다. 이들 나라를 전국칠웅이라 부르는데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백화쟁명의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국가 간에 치열한 패권 경쟁을 펼치는 혼란기에 있었지만,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펼치게 해 줄 주군을 찾아 나선 인재들도 많았다. 중국은 국토가 광활하고 물산이 풍부한 지대물박(地大物博)의 나라로 인재바다로 불릴만큼다양한 분야의 인재들도 많았다. 난세에 지식인들은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공자 역시 자신의 정치적 능력을 알아주고 자신에게 역할을 맡겨줄 제후를 찾아 천하 주유를 하지 않았던가. 당시에는 인재 발굴을 위한 과거제도 등 제도적 장치가 없던 시기였다. 대신 인재를 발탁하거나 등용하는 방식은 대단히 개방적인 특성을 나타냈다. 제후들은 유세객(遊說客)이 자신의 능력을 확인시켜주면 바로 등용하고, 유세객도 처우 조건이 맞으면 다른 제후에게로 옮겨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춘추전국시대에 유세객이 많았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의 공적 기능이 무너져내렸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할 것이다. 물론 명망가의 천거로 인재를 등용했지만, 뇌물을 바쳐 지위를 사는 경우도 많았다.


전국시대 소진(蘇秦)은 유세법과 외교술에 통달한 인재였다. 특히 소진은 췌마지술(揣摩之術)을 연마했다. 췌마란 촌탁(忖度)과 같은 의미로 자신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어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미루어 헤아리는 술책을 뜻한다. 그러나 자신의 고향인 주나라에서조차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거나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전국 칠웅 중 신흥 강대국인 진(秦)나라에 가서는 천하통일의 계책을 설명하였으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외교술을 펼칠 전략을 바꿨다. 천하의 모든 나라의 힘을 결집하여 전국칠웅 중 가장 강력한 국가였던 진나라를 배척하는 전략을 세웠다. 소진은 연나라 왕에게 "저에게 연나라의 미래를 위한 백년대계가 있습니다. 중원에서 연나라의 방패 노릇을 하는 조나라와 손을 잡고 국교를 맺어 천하를 하나로 연맹시키고 그들과 함께 힘을 합쳐 진나라를 막아야 합니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계획을 들은 연나라 왕은 소진을 측근으로 등용하였다. 소진은 연나라 왕의 적극 지원으로 나머지 다섯 나라를 방문하여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했다.


조나라 왕에게는 "산동 일대에서 가장 강한 나라는 조나라이고 조나라를 가장 시기하는 나라는 바로 진나라입니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것은 한나라와 위나라가 그들의 뒷덜미를 칠 까 봐 두려워서 참고 있는 것입니다. 조, 초, 연, 위, 한, 제 6국의 제후들의 군대를 합친다면 진나라 군대보다 몇 배나 많았습니다. 육국이 동맹을 맺어 서쪽으로 쳐들어간다면 진나라 하나를 쳐부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라고 설명하였다. 조나라 왕도 찬성했다. 소진은 "6국의 제후들이 모여 대회를 열고 서로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진나라가 만일 어느 한 나라를 침략해오면 즉시 다섯 나라가 함께 진나라를 쳐서 침략당한 나라를 구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진나라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혼자서 어찌 천하의 모든 나라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면서 유세를 마쳤다.


'진나라 밑에서 쇠꼬리로 살지 말고 닭머리로 살자'던 소진의 설득은 주효했다. 이렇게 하여 진나라를 제외한 6국이 동맹을 맺고 소진은 6국합종장(六國合從長)으로 추대했다. 6국은 소진에게 정승의 인과 금패와 보검을 주면서, 그를 6국을 관할하는 공동 정승(재상)으로 임명하였다. 소진은 6국이 동맹을 체결한 사실을 진나라에 알렸다. 이제 6국이 동맹을 맺어 공동으로 대처하기로 맹서 했으니 진나라는 이웃 나라를 괴롭힐 생각은 하지 말라는 통첩이었다. 진나라를 제외한 6국이 남북의 세로(縱)로 외교관계를 맺은 합종 전략은 15년간 진나라의 침입을 저지하는 효과를 보았다. 


그렇다면 진나라는 6국 동맹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제 서쪽의 진나라는 합종에 막혀 영원히 중원으로 진출할 수 없게 된 것인가? 진나라 조정에는 위나라  출신의 장의(張儀)가 있었다. 장의는 소진과 귀곡(鬼谷) 선생의 제자로 동문수학을 했다. 귀곡 선생의 문하생 중에는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제자들이 많았는데, 소진과 장의는 결의 형제를 맺었으며 이 둘은 유세법에서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장의는 6국 맹서를 보고 이를 깨부술 전략으로 진나라와 가장 가까운 위나라와는 우호 관계를 맺고, 가장 먼 연나라와는 사돈 관계를 맺게 했다. 장의는 6국 중 한 나라만이라도 진나라를 섬기게 되면, 즉 약한 고리를 이용하게 되면 6국 동맹은 자연히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라는 연횡(連衡) 전략을 세웠다. 장의는 나라 간의 갈등을 이용해 진나라 쪽으로 포섭하거나 연맹을 해체하면서 힘을 약화시켰다.(사마광 2019, 32). 각개 격파의 전략이다. 진나라는 동서의 가로(橫)로 외교관계를 각각 맺었다.


합종 전략과 연횡 전략이 탄생한 배경이다. 전국시대는 종횡가(從衡家)의 시대로 불릴 만큼 뛰어난 세객(說客)들의 변설이 난무했다. 종횡가들은 유세학(游說學)으로 복잡하게 얽힌 국제정치를 명쾌한 논리로 설득했다. 합종은 약한 국가가 힘을 합쳐 강한 국가에 대항하는 외교전략인 반면, 연횡은 약한 국가가 강한 국가에 붙어 안전을 도모하는 외교전략이라고 할 것이다. 합종 전략은 점차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6국의 합종 전략은 대의명분은 좋았지만, 진나라는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그 합종의 고리를 끊어버렸다. 각개 격파로 6국을 차례로 멸망시켜 천하를 통일했다. 결과적으로 연횡 전략이 합종 전략을 이겼다. 전하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장의는 어려운 시절 친구 소진의 도움으로 진나라에 등용되었고, 친구와의 의리를 생각하여 소진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합종 전략을 깨부수지 않다 소진이 죽고난 다음에야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 중국에서 발견된 문헌에 따르면 장의가 소진보다 대략 반세기 가량 앞선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진이 장의보다 먼저 죽었다는 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합종연횡은 정치, 외교, 기업 등의 분야에서 어느 시대에나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전략이지만, 21세기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는 합종연횡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원래 NATO는 냉전 시대 소련의 팽창과 위협을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한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유럽 국가들의 집단안보동맹이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지원 없이는 실질적인 군사동맹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1949년 미국을 새로 가입시키면서 오늘날의 NATO가 되었다. 군사동맹체로서 NATO의 회칙 중 가장 핵심은 '전체 회원국 가운데 어느 한 국가에서 무장 공격이 발생하면 이는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다른 모든 회원국이 필요하다면 군사력을 사용하여 공격받은 회원국을 도와주는 것이다.' 집단 방위 원칙이다. 최근에는 위협의 성격이 변화함에 따라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NATO는 테러리즘, 실패한 국가, 그리고 대량살상 무기와 같은 여타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력을 재조정하고, 다국적 대응 방안을 발전시키고 있다.


NATO의 집단 방위 원칙은 고대 중국에서 전국 칠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에 소진이 강대국 진나라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6국이 집단동맹을 맺은 합종 전략과 맥을 함께 한다. 반면 장의는 소진의 합종 전략을 깨뜨리기 위해 연횡 전략을 구사했다. 한미동맹이나 미일동맹과 같은 외교정책도 현대 버전의 연횡 전략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미국이란 강대국과 동맹을 맺어 중국이나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2021년 9월 15일 미국은 영국, 호주가 참여하는 3국 안보협력체(AUKUS)의 창설을 발표했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국 연합체(Quad)에 이은 또 하나의 대중국 견제 합종연합체가 탄생하였다. 이는 1951년 미국, 호주, 뉴질랜드가 체결한 ANZUS 안전보장조약 이후 70년 만에 이루어진 의미 있는 안보전략 전환으로 꼽힌다(송의달 2021). AUKUS는 12년 전 오바마 정부가 미국의 외교군사정책으로 천명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에 따른 실천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AUKUS에서 주목할 점은 미국이 자국의 핵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원자력 추진 기술을 호주에 이전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1958년 영국에 기술을 이전해 준 이후 63년만의 일로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합종전략이 보다 더 가시적으로 나타났다고 할 것이다(김진명 2021). 20세기 냉전 시대에는 소련의 팽창과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합종 또는 연횡 전략을 추구했지만, 21세기 초연결의 글로벌 시대에는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팽창과 위협을 견제하기 위한 합종 연횡 전략으로 판도가 바뀌었다.


한편 미국이 호주와의 핵잠수함 건조 계약으로 동맹국 프랑스의 뒷통수를 쳤다고 하지만, 핵잠수함의 특성을 비교하면 호주가 프랑스와의 계약을 파기하였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핵추진 잠수함은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핵무기를 탑재하고 다니는 '전략 핵 추진 잠수함'이고, 다른 하나는 이 잠수함을 추적, 감시하며 수중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공격 핵 추진 잠수함'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략 핵 추진 잠수함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인도 등 6개국에 불과하다. 호주가 미국과 계약한 핵 추진 잠수함은 프랑스의 디젤 잠수함과 비교할 때 여러 측면에서 비교우위에 있다. 속력면에서 핵 추진 잠수함이 KTX라면, 디젤 잠수함은 완행열차에 비유한다. 디젤 잠수함은 축전지 충전을 위해 하루 2-3회 수면 가까이 올라와 자주 노출된다면, 핵 추진 잠수함은 식량만 충분하다면 수중에서 노출되지 않고 무제한 작전이 가능하다(문근식 2021). 이러니 호주가 2016년 프랑스와 맺은 디젤 잠수함 12대 공급 계약을 파기하고 미국의 핵 잠수함을 택한 이유였을 것이다. 핵 추진 잠수함의 우수성을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을 놓고 전쟁을 벌였을 때, 당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공격 핵 추진 잠수함 5척과 디젤 잠수함 1척을 급파했다. 공격 핵 추진 잠수함은 2주만에 도착하여 승리에 기여했지만, 디젤 잠수함은 5주 후에 도착했다고 한다. 핵잠수함 간에도 기동성, 속도, 잠행능력, 생존성, 작전 지속성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하튼 춘추전국시대에 합종이 약자가 힘을 합쳐 강자에게 맞서는 것이고, 연횡이 약자가 강자에게 붙어 자국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졌지만 오늘날에는 합종과 연횡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 강자와 강자끼리 서로 힘을 합쳐 또 다른 강자를 견제하는 모양새를 나타낸다. 또한 '가치동맹'이란 새로운 동맹 이념이 등장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서방민주국가 대 중국과 같이 국가질서 또는 경제발전을 위해 개인의 인권이나 권리를 제약하거나 위축시킬 수 있다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간의 가치 싸움이 치열하다.


냉전 시대 대륙에 위치하면서 핵무기로 무장한 소련이 서방 국가에 위협적인 존재였던 상황에서 NATO와 같은 동맹체가 탄생했다면, 21세기 중국은 대륙과 해양 양쪽에서 전 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결성되는 국가 간의 동맹연합체는 냉전시대의 합종연횡과는 그 양상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할 것이다. 특히 군사적, 경제적 이해관계와 밀접한 지역, 예컨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급속히 확장시키면서 미국 등 서방국가와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인접 국가들의 대중국 견제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또한 국제 외교에서 중립노선을 걸어왔던 인도가 미국과 유럽의 대중국 견제 연합체 쿼드에 참여하게 된 것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보문제의 심각성이 급부상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대만 문제와 남중해 영토 분쟁이 지구촌의 화약고로 부상했다.


국제정치 및 외교에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생겼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한 대중국 견제 합종전략을 중국이 연횡전략으로 무너뜨릴지가 궁금하다.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하나 적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에 적이 된다. 동맹을 맺기는 어려워도 깨지기는 더 쉬운 법이다. 국가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지고 안보환경이 달라지면 합종이나 연횡에 균열이 생기면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위험이 놓여있다.


최근 서방 동맹국 간에 균열이 생겼다. 미국, 영국, 호주가 AUKUS를 결성하면서 프랑스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2016년 프랑스는 호주에 공격용 잠수함 12척을 공급하는 6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는데, 호주가 미국, 영국과 삼국 연합체를 결성하면서 프랑스와의 계약을 철회했다. 프랑스 정부는 미국과 호주를 거칠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은 "등에 칼을 꽂는 일이다. 정말 화가 나고 씁쓸한 기분이다. 이는 동맹국에 할 짓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원태성 2021).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은 "미국이 동맹국을 어떻게 대했는지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일간 르프가로는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 함대가 영국 함대에 무참히 당했던 패배를 태평양에서 당한 셈"이라는 기사를 실어 굴욕감을 표시했다(손진석 2021).


합종 전략을 깨뜨리는 연횡 전략에서 적용할 수 있는 첫번째 선택지는 합종을 맺은 동맹국들 중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내 그 고리를 끊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강력한 동맹국을 자임하고 있지만, 프랑스가 그 약한 고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현대에서는 경제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이점에서는 중국에 경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전쟁패권을 노리는 국가는 언제든 동맹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 집중 공략하게 될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동맹은 무늬만 남는 경우를 보게 된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와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프랑스는 미국과 동맹 관계를 체결(1778년)하고 미국의 독립전쟁에 군사, 외교, 재정 등 많은 분야에서 큰 도움을 주었다. 프랑스는 미국의 독립전쟁에 14척의 배와 군수품을 보냈다. 미국 군대가 사용한 화약 대부분은 프랑스가 보내준 것이었다. 물론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 전쟁을 지원하면서 노린 목적은 7년 전쟁(1756~1763) 이후 무너진 영국과의 힘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 프랑스는 전쟁 개입으로 생긴 재정 적자는 프랑스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는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 기념을 축하하기 위해 보내준 조형물이다. 그만큼 미국과 프랑스는 미국 독립전쟁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동맹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 AUKUS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익 앞에서는 오랜 동맹도 안중에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1966년 프랑스 드골 정부는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NATO에 안보를 의존할 수 없다며 NATO를 탈퇴했다가 2009년 사르코지 정부에서 복귀했다(김태훈 2021). AUKUS는 프랑스가 앵글로 색슨 국가들로부터 당한 두 번째 배신이라고 한다. 프랑스는 1958년 냉전시기에 미영방위조약에 따라 영국이 미국의 핵기술과 핵연료를 지원받는 동안 프랑스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핵잠수함을 자체 개발해야 했다. 만약 영국이 EU를 탈퇴하지 않았다면, 프랑스가 영국과 호주의 핵잠수함 논의를 미리 알게 됐을 것이다(김진호 2021).


한편 영국의 언론은 AUKUS가 출범하면서 수면으로 부상한 미국과 프랑스 사이의 갈등의 기저에는 미국이 일부 유럽 국가 중 중국과 경제적, 외교적 유대를 돈독히 갖고 있어 중국의 위협에 덜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데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임병선 2021). 동맹국 끼리 완전한 신뢰가 형성되지 못하면 신뢰가 가는 국가 간에 또 다른 동맹 연합체가 탄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할 것이다.


오늘날 국제정세는 춘추전국시대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다. 그럼에도 춘추전국대의 합종연횡 전략은 국가를 경영하고 안보를 책임진 위정자들이 새겨야 하는 교훈을 제공한다. 고전에서 샘솟는 지혜의 샘물은 마르지 않고 현대에까지 지속된다. 역사를 직시하며 고전에서 지혜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사마광. (2010). <자치통감>. 권중달 옮김. 삼화.

사마광. (2019). <한권으로 읽는 자치통감>. 나진희 옮김. 파주: 현대지성.

풍몽룡. (2008). <열국지>. 이언호 평역. 큰방.

최명. (1994). <소설이 아닌 삼국지>. 조선일보사.

강철근. (2017). <아시아앤>. <[중국 천하통일⑬] 종횡가 소진·장의, 합종연횡책으로 천하 평정>. 5월 18일.

김진명. (2021). <조선일보>. <중국 견제하려... 미, 영, 호주에 핵잠수항 극비기술 전수>. 9월 17일.

김진호. (2021). <경향신문>. <동아시아 군비경쟁이라는 판도라 상자를 연 '오커스'>. 10월 9일.

김태훈. (2021). <세계일보>. <美·英 못 믿겠다".. 佛, 드골 노선으로 복귀하나>. 9월 19일.

문근식. (2021). <중앙일보>. <호주에 핵잠 건조 지원한 미국, 한국과도 협력해야>. 10월 5일.

박현영. (2021). <중앙일보>. <중국에 당한 호주와 미국의 밀착, 아시아 안보 지형 바뀐다>. 10월 4일.

송의달. (2021). <호주의 '3종 병기', 중국 경제보복을 물거품 만들다>. 9월 30일.

이한우. (2021). <조선일보>. <췌마지술(揣摩之術)>. 10월 6일.

임병선. (2021). <서울신문>. <‘AUKUS 뒤통수’ 맞은 佛, 영국과 국방장관 회담도 취소>. 9월 20일.

David E. Sanger. (2021). <The New York Times>. <Secret talks and a hidden agenda: Behind the U.S. defense deal that France called a 'betrayal'>. Sept. 17.

네이버 지식백과. <프랑스-미국 동맹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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