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철현 Nov 02. 2021

16세기를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

①  역사는 꽃과 같다.

16세기는 지금부터 5세기 전의 일이다. 굳이 16세기 세계사를 꺼내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은 16세기야말로 인류의 정신사적 변혁과 국제관계의 향방이 바뀐 변곡점의 시기라고 판단해서다. 1517년 마르틴 루터(1483-1546)에 의해 본격화된 종교개혁은 엄청난 영적 전쟁이었다. 신학 전공의 대학 교수였던 루터는 지상에서 하느님을 대신하는 로마 가톨릭의 절대적인 권위에 도전하였고, 이 도전은 신앙인 개인은 물론 유럽 국가들 간의 오랜 갈등과 대립으로 치달았으며 결국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또 1588년 세계 최강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해양강국으로 부상한 영국의 등장은 유럽과 아시아, 유럽과 아메리카의 국제관계 역학구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새로운 슈퍼파워의 등장을 예고했다. 이제 유럽의 제국주의는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강요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무역전쟁과 식민지 구축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한반도는 장기간 전쟁터로 변했고, 전쟁의 결과는 명을 대신하여 청이 세워지고 일본도 막부 체제로 정치체제가 바뀌게 되었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듯이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제공하는 복합적 사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역사는 인과관계를 반영한다. 멀쩡한 인공 건축물이 지진 등의 자연재해나 폭발물에 의한 폭파 등으로 무너지는 것을 제외하면 갑자기 무너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래전부터 무너지는 여러 증상이 있었지만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가 새로운 것, 그것이 혁명이든 정치적 산물이든 알고 보면 이미 예고된 것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우연이 중첩되어 일어난다. 그래서 역사는 우연보다는 필연에 따른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E. H. Carr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주창했듯이, 오늘의 역사는 우연의 결과로 보기보다 과거의 역사가 풍화작용을 거치고 진퇴를 거듭하면서 또 다른 역사로 이어진다. 그래서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고 말하는가 보다.


서강대 최진석 명예교수의 인문학 정의는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다. 인문학이란 인간이 시간의 흐름 속에 남겨 놓은 족적(흔적) 내지는 인간이 그려 놓은(동굴의 벽이 되었든 목판이 되었든) 무늬의 총합이다. 인문학자는 그 흔적과 무늬를 좇아가면서 그 의미를 발굴하고 우리 삶에 적용하는 사람이다. 16세기는 당 사람들이 남겨 놓은 흔적과 무늬다. 나는 16세기 사람들이 남겨 놓은 역사적 흔적과 무늬가 현대 인류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이정표라고 생각한다. 보는 사람과 연구자에 따라 역사를 인식하는 관점이 다를 수 있겠지만, 어느 시점의 역사에 방점을 두고 공부를 하는 것도 의미가 제법일 것이다.


겸재(謙齋) 정선이 75세에 그린 인왕제색도(仁王諸色圖)로도 유명한 인왕산은 글자 그대로 ‘어진 임금의 산’이라는 의미로 조선 세종시대 집현전 학사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암석으로 둘러싸인 산에 이름과 의미를 부여하자 산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온다. 꽃의 이름을 알고 감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의 의미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김춘수 시인(1922-2004)은 <꽃>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역사도 꽃과 같다. 내가 역사에 이름을 붙여주면 이름은 의미로 나타난다. 꽃에 이름을 불러주면 의미로 다가오듯 16세기를 대표하는 세 가지 역사에 이름을 불러주고 그 의미를 아가보기로 하자.  


                                                                 <인왕제색도>

 

작가의 이전글 위대한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