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철현 Nov 01. 2021

위대한 용기

어느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용기란 '수난 밑에서의 기품'이다"라고 말했다(케네디 2007, 25 재인용). 수난이란 인간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치욕과 불명예 등 오만가지의 감정을 동반한 신체적, 정신적 고난을 의미할 것이다. 기품(品)은 고난을 당한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고귀한 인격을 뜻할 것이다. 인류사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보여준 모습이야말로 헤밍웨이가 말한 용기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이는 우스갯소리로 '참용기'를 '참고, 용서하고, 기다린다'의 줄임말로 사용하는데 이 역시 그럴듯하다.


이 분에게는 용기라는 단어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김학순(1924-1997). 위대한 한국인이고 할머니시다. 지금부터 30년 전인 1991년 8월 14일 광복절 하루 전날에 67살의 김학순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증언했다. 할머니는 그동안 역사적 사실로 알려졌던 위안부 피해자들 중 오랜 침묵을 깨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입니다. (...) 그동안 말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는 밝혀져야 할 역사적 사실이기에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위안부로 고통받았던 내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 데 일본은 위안부를 끌어간 사실이 없다고 하고 우리 정부는 모르겠다 하니 말이나 됩니까." 그녀의 말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열었고 어엿하게 살아 있는 자의 증언은 거짓과 위선의 탑을 무너뜨렸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에 힘을 얻은 세계 각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증언대에 섰다. 일본의 침략을 당했던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국뿐 아니라 호주와 네덜란드 등의 국가에서도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폭로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았다. 국제적인 문제로 번졌으며 피해 국가들과 피해자들은 지금도 진상규명을 위한 연대와 실천을 전개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일본은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정부의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대변인) 명의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 장기간에, 또한 광범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되어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다.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하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되었다. 또한,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태 하에서의 참혹한 것이었다. (...)" 이를 고노 담화(河野談話)라고 약칭하여 부르는데, 이 담화에서 일본은 군대와 관청의 관여와 동원에서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일본은 끝까지 정직하지 못했다. 일본 군대와 관청의 관여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전반적인 책임은 민간업자들에게 있다고 둘러댔다. 부분적으로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지만 법적인 책임이나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거부했다. 아베 정부에서는 아예 고노 담화 자체를 부정했다(소현숙 2019).


김학순 할머니 증언은 우리나라에 생존하고 계신 238명의 위안부 피해자들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한 사람이 보여준 용기 있는 날갯짓이 수많은 사람들을 대의(大義)의 광장에 모이게 했다. 칠흑 같은 어둠 에서 고통받고 울부짖던 수많은 영혼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나도 위안부 피해자"라고 증언했다. 그리고 그들은 단순히 피해자, 생존자, 증언자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 활동가로, 평화와 인권운동가로 거듭났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자신의 피해를 알리고 인정받는 차원을 넘어 다시는 자신들이 겪었던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미 피해 대상이라기보다 주체화된 활동가적 마인드를 가지고 계셨다"(오경민, 민서영, 이홍근 2021). 이렇게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던 수난에 대한 생생한 증언은 그들 피해자들의 개인적인 아픔을 넘어 밀폐되고 호도된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는 국제 인권운동으로 승화되었다.


2021년 10월 25일 뉴욕타임스는 부고면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기구한 생애와 위안부 피해 첫 증언의 역사적 의미를 보도했다. 부고란의 이름은 "더 이상 간과하지 않겠습니다(Overlooked No More)." 이 지면에서는 당대 유력 인사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인물의 생애를 되짚어보는 기획 연재를 싣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사로는 유관순 열사를 다룬 적이 있었다. 신문에 따르면 그동안 학계에서 일본의 전쟁 범죄와 반인륜 범죄에 대한 기록과 심증은 넘치는데 생존자의 증언이 없어 안타까웠는데,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유엔이 규정한 전쟁 범죄와 반인륜 범죄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묻는 과정을 파헤치는 학술적 연구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한다(정시행 2021). 코네티컷대 알렉시스 더든 교수(역사학)는 "김학순 할머니를 20세기의 가장 용기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She remains one of the bravest people of the 20th century)"라고 평가했다(최상헌 2021).


김학순 할머니가 보여준 용기 있는 행동은 세계인의 양심을 깨우고 연대와 행동으로 나서게 했다. 1998년 유엔보고서에서는 일본군 위안소 운영을 '반인류 범죄'로 규정하였다. 2007년 미국 의회에서는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했다. 2010년부터 해외에서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지고 있다. 2012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는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의 날’로 지정했다. 피해 당사국인 우리나라 정부의 대응은 한참 늦었다. 2018년 할머니가 첫 증언했던 8월 14일을 '세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약칭 '기림의 날')'이라는 이름의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였다.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도 제정했다.


사실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로서 증언을 했을 때가 일본 정부로서는 과거의 잘못과 위선을 털고 갈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사죄도 타이밍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일본은 정부 대변인의 담화를 빌어 위안부의 운영과 관여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전반적인 책임에 대해서는 민간업자에게 덮어 씌우는 구태를 반복했다. 아베 정부는 고노 담화마저도 뒤집고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잡아뗐다. 후안무치의 후흑(厚黑)의 역사관이다. 세계가 일본의 잘못을 규탄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데도 일본만 그렇지 않다고 우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가. 일본의 후대들이 일본 정부의 위선과 교만과 거짓의 업보를 어떻게 감당할까 걱정이다. 미래로 발을 옮기기 위해서는 그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의 사슬을 끓어야 한다. 일본 정부의 한심한 작태를 보면 오히려 그 사슬을 두세 겹으로 더 단단하게 묶는 것처럼 보여 안타까울 뿐이다. 일본은 독일 정부가 나치의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피해 당사국과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가에 대해 배워야 한다.


일본의 현실을 보면 걱정이 많다. 일본 언론에서도 위안부에 관한 보도는 소극적인 태도를 넘어 아예 금기사항으로 보인다. 실제 일본 아사히 신문의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피해 증언과 관련된 기사를 작성한  때문에 날조 기자로 낙인찍혀 일본에서 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우익의 항의와 비난이 빗발쳐 신문사도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 살해 협박까지 극우 세력의 노골적인 공격을 받았다. 우애무라 기자의 법정투쟁을 중심으로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가 '표적'이다. '표적'은 일본의 위안부 보도에 대한 탄압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나리카와 아야 2021). 진실을 보도한 기자에게 향한 화살의 표적이 일본의 양심을 쏘았다.


일본이란 나라의 이중성을 알 수 있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인 1945년 8월 20일경 일본 전국의 매춘업자들이 도쿄 긴자(銀座) 거리에 '신일본 여성에게 고함'이라는 광고 간판을 걸고 매춘여성들을 모집했다. 물론 일본 정부의 비호 아래 진행되었다. 일본군은 동아시아 일대에서 저지른 만행을 점령군 미군이 일본에서 저지를 것이라는 소문에 근거한 것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라고 하던가. 점령군 1진이 일본에 들어오던 8월 28일 도쿄 황궁 앞에서 '특수위안시설협회' 창립 대회가 열려 선서가 낭독되었다. '천황이 주둔군 위안의 난업(難業)을 과(課)하셨도다.... 국체(國體) 호지(護持)에 정신(挺身)할 뿐'이라는 내용이었다. 스스로 결성한 정신대이다. 정부 주도로 8월 17일까지 도쿄에서만 1360명의 여성이 모집되었고 20개 도시로 확대되었으며 집단 매춘은 1년간 계속되었다(신정록 2014). 예나 지금이나 믿기 어려운 일이다. 자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자발적으로 정신대를 조직했던 일본이 피식민국가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에 대해서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일본인의 속성은 강한 자에게는 철저히 몸을 숙이고 약한 자에게는 철저히 군림한다. 


일본은 19세기 이후 근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구의 선진 문화를 배우고 수용하는 데 혈안이 되었었는데, 오늘날 서구의 사죄 외교나 용서 문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단 말인가. 오호통재다. 인간이 저지른 죄악을 인간이 심판하지 못하면 역사의 날 선 칼날이 용서치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말인가. 역사의 정의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수난 밑에서의 기품'을 보여주신 김학순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의 용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역사는 한 걸음 더 앞으로 내디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짓밟힌 한(恨)의 역사를 결코 잊지도 않을 것이며  반복되게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케네디, 존 F. (2007). 용기 있는 사람들. 박광순 옮김. 파주: 범우사. 

나리카와 아야. (2021). <중앙선데이>. <2001년 NHK 외압 논란 이후, 일 언론 위안부 보도 몸 사려>. 11월 13일-14일.

소현숙. (2019). <결>. <기림의 날에 기억하는 김학순과 그녀의 증언>. 8월 16일.

사설. (2021). <한겨레>. <30년 전 세상을 깨운 김학순 할머니를 기억하며>. 8월 13일.

신정록. (2014). <조선일보>. <戰勝國 위해 정부가 나서 위안부 모집했던 일본>. 3월 4일.

오경민, 민서영, 이홍근. (2021). <경향신문>. <'성폭력 말하기'의 역사, 고 김학순 할머니 '위안부' 피해 증언 30주년>. 8월 12일.

정시행. (2021). <조선일보>. <"김학순 할머니, 20세기 가장 용기 있는 인물">. 10월 27일.

Choe Sang-Hun. (2021). <The New York Times>. <Overlooked No More: Kim Hak-soon, Who Broke the Silence for 'Comfort Women'>. Oct. 21.

영화 <귀향>(2016).

영화 <김복동>(2019).

영화 <표적>(2021).

작가의 이전글 미처 몰랐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