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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Dec 08. 2021

"나는 고발한다"

한 지성인의 붓과 행동_ 드레퓌스 사건의 경우

일부 계층이 지식을 독점했던 전통사회에서는 지식인이라고 하면 주변에서 존경을 받았다. 지식은 곧 권력이었고 신분을 상징했다. 요즘엔 인터넷 지식포털사이트나 유튜브가 지식인을 대신하고 있다. 지식은 백과사전이나 도서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클라우딩에 있다. 학생은 모르는 지식을 교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그 해답을 찾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지식인의 전형이었던 교사의 지식권위조차도 도전받는 세상이다. 


현대는 지식의 대량 생산시대이다. 리차드 B. 풀러는 인류 지식의 폭발적 증가를 '지식 2배 곡선'으로 정리했다. 인류의 지식은 100년마다 2배씩 증가해왔는데, 1900년대는 25주년 주기로 2배 증가했고, 2016년부터는 13개월 주기로 2배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30년이 되면 3일마다 지식 총량이 2배가 된다고 하니 믿어야 할지 모를 정도이다(KBS <명견만리> 제작팀 2020). 가히 지식의 빅뱅 현상이다. 영화 한 편을 1초 만에 다운로드할 수 있는 세상이니 허황된 예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잉 지식의 시대에 지식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자칫 지식인이 로봇과 유사해서 지시와 명령에 따라 기술적인 실행만 하는 존재로 떨어진다. 지식 기술자들은 인간의 본질이나 삶의 의미와 관련되는 근본적인 문제는 도외시한 채 돈벌이에만 집착하거나 권력에 집착하는 독버섯이 되고 만다. 지성인들이 사라지고 지식인들만 난무하면 독재자들이 국민을 세뇌하고 노예화하는 참담한 일이 벌어진다(홍성남 2021).  


시쳇말로 가방끈이 길면 지식인일 가능성이 높지만, 지식인이 곧 지성인은 아니다. 어느 시대든 지식인은 많지만 지성인은 찾기 힘든 법이다. 하물며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오늘날에는 지식인은 넘쳐도 지성인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야 할 정도이다. 지성인은 한마디로 시대정신을 이끌고 가는 사람이다. 시대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시대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할 뿐 아니라 시대를 꿰뚫는 가치관을 정립하는 인물이다(김준우 2020). 이처럼 지성인은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지향점과 핵심 가치를 정립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참 지식인, 즉 지성인의 본보기를 찾을 수 있다. 광주일보 2021년 12월 8일 자 사설에는 "민중의 수난을 붓과 행동으로 헤쳐 온 참 지식인, 서슬 퍼런 유신정권 아래서도 두려움 없이 행동했던 행동하는 지성인"이라는 긴 제목의 글이 실렸다. 전남대 송기숙 교수에 대한 이야기이다. 송 교수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면서 수감과 복직을 반복하면서도 군부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지성이었다. 오늘날 5.18의 은폐된 진실이 밝혀지고 이만한 평가를 받는 것은 고인의 기여가 크다 할 것이다. 참 지식인으로 살다 사후에 이런 부고가 실리면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할 것이다. 본받고 싶은 부러운 삶이다. 


한 사람의 지성인이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세상을 변화시킨 사례에 주목하는 이유다. 모두가 가슴 깊은 속에 담고 있는 닮고 싶은 지성인 목록이 있을 것이다. 나의 목록 맨 윗줄에는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가 있다. 졸라는 <목로주점>, <세 도시 이야기>의 작가로 알려졌지만, 진즉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자신의 조국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낸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글을 일간지에 게재한 사건이었다. 무엇이 작가 졸라로 하여금 대통령에게까지 붓을 들어 공개서한을 작성하게 하였을까?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쓴 유대인 출신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이다. 졸라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사람을 위해 일국의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보내는 행동을 한 참 지식인이다. 


드레퓌스 사건의 내막을 잠깐 들여다보자. 1894년 9월 프랑스 육군 정보부는 군내부에서 독일 쪽에 유리한 비밀정보를 흘리는 스파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메모를 입수했다. 육군 참모본부는 필적 등을 근거로 참모본부 소속 유대인 포병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1859-1935)를 체포했다. 드레퓌스 대위는 군적 박탈과 종신 유배형을 선고받고 프랑스령 기아나 '악마의 섬'에 유폐되었다. 이 섬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빠삐용>(1973년)이다. 나중에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졌고 진짜 범인은 참모본부 내의 에스테라지 소령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1899년 6월 에스테라지는 필적이 자신의 것이라고까지 자백했다. 진짜 범인이 자신의 필적이라고 자백까지 했지만, 정부와 군부는 드레퓌스의 유죄를 확정했다. 오히려 (군사) 법정에서는 에스테라스를 무죄 석방하여 면죄부를 주고 드레퓌스의 유죄를 인정했다. 이때 프랑스는 위선과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고 개인의 인권이나 정의를 송두리째 무시하면서 국제적인 망신과 함께 국민의 자존감도 땅에 떨어졌다. 문명국가의 전위를 자처했던 프랑스는 집단 야만과 광기로 뒤덮여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드레퓌스의 불명예 퇴역식>


한마디로 이 사건은 에스테라지 소령의 사기 행각과 앙리 대령의 서류 위조의 합작품이었다. 에스테라지는 파리 주재 독일대사관 무관 슈워츠코펜 대령에게 제발로 찾아가서 스파이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내가 병으로 앓아누워 어쩔 수 없이 스파이를 자원하게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독일 대사관에서도 스스로 찾아온 프랑스 장교가 정보국에 근무한다면서 스파이 활동을 자임하고 나서자 황당하게 생각하고 내쫓다시피했다. 수차례 독일대사관에 드나들면서 독일에 유리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현금을 받았다. 금액은 정보의 가치로 계산했다. 문제의 발단은 프랑스 첩보국이 입수한 독일측 통신문에 '무뢰한 D'라는 익명의 사람이 등장한다(니홀라스 2015). 프랑스 정보국은 이니셜 D로 시작하는 구성원 중 유대인 드레퓌스(Dreyfus)를 지목하고 그에게 모든 혐의를 뒤집어 씌었다.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는 에스테라지 중령이 무죄 석방을 받은 이틀 후에 게재되었다. <나는 고발한다>는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었고 드레퓌스의 무죄 석방과 재심을 요구하는 드레퓌스파(재심파)와 유죄를 고집하는 반드레퓌스파(반재심파)로 찢겼다.드레퓌스파는 정의, 진실, 인권옹호를 부르짖었으며, 반대파는 군의 명예와 국가질서를 내세웠다. 프랑스 정부와 군부가 무모한 음모를 수정하지 않고 확증편향에 빠질수록 내분은 격해졌다. 당시 프랑스는 프러시아(독일)와의 보불전쟁(1870-1871)에서 패배하여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알자스-로렌 지역을 빼앗기면서 독일에 대한 보복심리가 만연한 애국주의가 팽배했다. 또한 경제난까지 겹친 탓에 금융권의 큰 손인 유대인에 대한 악감정이 컸다. 여기에 우파 정부와 전쟁에서 패배하고 그 위상이 땅에 떨어진 군부와 반유대계 언론과 가톨릭 교단까지 가세하면서 희생양을 만들었다.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이 밝혀진 유대인 출신 드레퓌스 대위를 희생양으로 삼아 정부의 실정과 군부의 위신 추락을 만회해보려고 한 것이었다. 만약 드레퓌스가 유대인이 아니었고,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싶다. 정부와 군부는 한 번 잘못 끼운 단추를 다시 고쳐 끼우는 것이 아니라 계속 잘못 끼워나가기록 작정했다. 정부와 군부는 드레퓌스의 무죄와 관련한 명백한 증거를 쥐고서도 그것을 묵살했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위기에 놓인 전쟁지휘부를 구하려고 무모한 음모를 꾸민 것이었다. 국익을 위해서는 진실을 은폐하면서까지 개인을 희생하기로 했다.


1898년 1월 13일,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는 프랑스 일간지 <로로르>의 1면 머리에 실렸다. 공개서한의 정식 명칭은 '에밀 졸라가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로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졸라는 프랑스 정부의 반유대주의와 드레퓌스의 부당한 구속 수감을 비난하였다. 또 졸라는 여러 사법적 오류와 증거의 부족을 지적하였다(후일 졸라가 고발한 사람들의 범죄 행위가 모두 사실로 드러나 졸라의 정보 수집력과 판단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입증한다). 장문의 공개서한 중 후반부 몇 줄을 옮겨본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역사의 심판을 약속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당신을 역사의 심판에 넘깁니다. 역사는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해줄 것입니다. 당신은 역사 속의 당신의 페이지를 갖게 될 것입니다. 처음엔 그 민주주의적 선정에 저조차도 감동했던 펠릭스 포로 씨, 피혁상 출신이었지만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존경받았던 페릭스 포르 씨, 하지만 동시에 불행한 펠릭스 포르 씨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이제 영원히 죄 없는 자의 순교를 승인한 부당하고 심약한 인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정녕 진실과 정의의 인간으로 대리석 기념탑에 이름을 새기고 싶지 않습니까? 어쩌면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유기환 2015, 200). 졸라는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면서 논리 정연한 글로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하라는 엄중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정문일침이란 이런 글을 말할 것이다.



공개서한이 신문에 실린 뒤 졸라는 군부로부터 중상모략이라는 이유로 고소당한 뒤 유죄 선고를 받았다. 졸라의 사회적, 경제적 손실은 이마저만이 아니었다. 재판비용, 작품 판매 부수의 격감, 망명생활, 집필 시간의 부족 등으로 파산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정부와 군부는 드레퓌스 사건의 증거를 조작한 주범이었던 앙리 중령이 1898년 8월 자살하고 진범 에스테라지가 도주하고 나서야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드레퓌스는 1906년에 다시 진행된 재심을 통해 무죄와 함께 복권되어 군에 복직하였다. 안타깝게도 졸라는 이 소식을 미처 듣지 못하고 1902년 9월 의문의 가스 중독 사고로 사망했다. 졸라는 드레퓌스를 위해 쓴 글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가도 받지 않겠다는 다짐을 끝까지 지켰다. 


1898년 3월 <르 시에클>은 졸라의 용기를 기리기 위해 기부금을 모아 금메달을 제작해 국립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다. 금메달의 앞면에는 졸라의 얼굴, 뒷면에는 졸라의 글이 새겨져 있다. "진실은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행동하는 참 지식인이자 시대의 양심이었던 에밀 졸라를 통해 붓이 칼보다 강하다는 경구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무엇보다 지성인이 깨어있어야 사회의 정의가 바로설 수 있고 그들의 붓에서 나오는 한 획 한 획의 글은 시대의 공기라는 생각을 해본다. 졸라의 붓과 행동은 문명국가의 전위로 자처하고 있지만 반유대주의와 애국주의라는 집단 광기로 이성과 인간성을 잊어버린 프랑스를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드레퓌스는 구속되고 12년 만에야 복권됐다.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오늘날 드레퓌스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르 클레망소(1841-1929)이다. 그는 당시 일간지 <로로르>의 사장 겸 편집국장이었다. 군부와 권력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던 여타 신문사와는 달리 클레망소는 소신과 신념의 언론인이었다. 졸라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지만, 클레망소가 언론인 특유의 감각을 살려 <나는 고발한다>로 제목을 바꿔 실었다. 만약 클레망소가 아니었다면 졸라의 편지글이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조성관 2020). 클레망소의 말은 모든 국가에 해당한다. "국가 이익이 오늘은 드레퓌스를 치고 있지만, 내일은 다른 사람을 칠 것이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반대자를 비웃으며 쓸어버릴 것이다. 군중은 겁에 질린 채 쳐다만 볼 것이다. 정권이 국가 이익을 내세우기 시작하면 끝이 없게 마련이다."(졸라 2015 재인용). 


                                        <파리 유대교역사미술박물관 앞 드레퓌스 동상> 


광주일보. (2021). <‘치열했던 삶’ 송기숙 선생님 편히 잠드소서>. 12월 08일.

김준우. (2020). <기호일보>.  <지식인 지성인 그리고 교양인>. 12월 23일.

모루아, 앙드레 (2017). <프랑스사>. 신용석 옮김. 파주: 김영사.

이스라엘, 아르망. (2002). <다시 읽는 드레퓌스 사건>. 이은진 옮김. 자인.

조성관. (2020). <뉴스1>.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클레망소가 아니었더라면…>. 9월 17일. 

졸라, 에밀. (2015). <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 유기환 옮김. 책세상. 

KBS <명견만리> 제작팀.. (2020). <명견만리>. 인플루엔셜.

한동임. (2006). <한겨레>. <‘드레퓌스 사건’ 진실 알린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1월 12일. 

할라스, 니홀라스. (2015). <나는 고발한다: 드레퓌스 사건과 집단히스테리>. 황의방 옮김. 파주: 한길사. 

홍성남. (2021). <중앙일보>. <[Opinion :홍성남 신부의 속풀이 처방] 왜 인문학이 필요할까>.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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