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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Dec 14. 2021

중요한 것은 '어떤 연결'이냐 이다.

레드우드의 생존법에서 얻은 교훈

미국은 그 국토가 얼마나 광활하고 생태적 다양성을 지녔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캘리포니아만 해도 한반도의 4배 넓이에 4천만 명의 인구가 살고 GDP는 세계 10위권에 든다. 대부분 캘리포니아의 관광코스는 골든게이트나 알카트래즈, 캐넌 등의 국립공원, 와인너리, 할리우드 등 눈에 보이는 관광명소를 떠올리지만 진짜 숨겨진 보물은 숲 속에 감춰져 있다. 미국 전체 국립공원 59개 중 캘리포니아에만 9개가 있을 정도다. 태평양을 끼고 길게 뻗어있는 캘리포니아는 내륙과 해양의 특성이 조화를 이룬 지역으로 특히 레드우드(미국 삼나무)의 군락이 장관을 이룬다. 지금부터  레드우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레드우드는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로 알려졌다. 큰 것은 100m가 넘는다. 건물로 따지면 35층 정도에 해당한다. 수령은 무려 2500~3000년 정도이다. 5천년이 된 레드우드도 있다. 수령이 오래되면 밑동이 속에서부터 부식되는데 속이 빈 곳에 차도를 만들어 차가 다닐 정도이다. 이 레드우드를 '드라이브 쓰루 트리'라고 부른다. 워낙 거목(巨木)이다 보니 나무 물관이 전달하는 물의 높이가 제한되기 때문에 수분의 25~50%를 안개에서 얻는다. 태평양에서 생성되는 풍부한 안개가 레드우드의 생육에 안성맞춤의 환경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 거목의 뿌리는 얼마나 될까? 불과 3~4m밖에 되지 않는다. 놀라운 일이다. 일반 상식과는 도무지 맞지 않다. 이 큰 나무가 지탱하는 데 필요한 뿌리의 깊이가 고작 이 정도라고 하면 믿기 어렵다. 레드우드가 자라는 지역의 지질은 나무뿌리가 뚫고 내려갈 수 없는 암반이기 때문에 아래로 뻗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거목 레드우드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그 오랜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3,4m밖에 되지 않은 뿌리가 100m가 넘는 거목의 무게를 어떻게 지탱할 수 있을까? 생존 비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무의 뿌리가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거목을 지탱한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는 않지만, 옆 나무의 뿌리와 서로 연결하여 서로를 지탱하는 것이다. 광활한 숲 속의 나무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숲 자체가 하나의 나무인 셈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뿌리는 얕게 내리고 있지만 서로 연결된 뿌리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서로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고, 가뭄 때에는 물과 양분을 서로 나누며 버틴다(김성훈 2017). 생존 비법은 바로 연결, 교류, 공유, 연대에 있었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전에 만든 <용비어천가>에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했지만, 반드시 뿌리가 깊지 않아도 풍파에 끄떡없는 나무가 바로 레드우드이다. 레드우드 국립공원은 뿌리 연합체로서 대자연의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상징한다.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나무들은 키가 거의 비슷하다. 어떤 나무만이 일방적으로 물과 양분을 독차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환경의 제약을 잘 알고 있기에 이웃 나무와 뿌리 연합을 결성하여 수분을 나눠갖고 외부 위험에도 공동 대처한다. 그들이 연합하지 않고 서로 경쟁하는 환경이었다면 레드우드 숲은 조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레드우드 숲은 일반적인 숲의 속성과는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고 할 것이다. 나무의 생존 방식은 인간 세상보다 더 잔인하다고 하지 않던가. 뿌리로는 물과 양분을 얻기 위해, 위로는 빛을 더 받기 위해 주위 식물들과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 경쟁에 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패자부활이 없어 한 번 실패는 되돌릴 수 없다(박필선 2014). 인간 세계에서는 전쟁에서 지는 것을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말하는 데, 나무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레드우드가 이웃 나무들과 뿌리 연합을 이루면서 성취해낸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확인하면서 인간 세계를 뒤돌아본다. 오늘날 호모 사피엔스가 생활하는 지구촌도 연결사회를 실현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안방이나 일터에서 실시간으로 본다. 전쟁에서 상대방이 쏜 미사일이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과 SNS는 지구촌을 하나의 마을공동체로 만들었다. 현대인의 문제는 연결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개인 간, 지역 간, 국가 간, 블록 간에 치열한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이념 경쟁, 체제 경쟁, 무역 경쟁, 성적 경쟁, 승진 경쟁, 속도 경쟁, 청약 경쟁, 선거 경쟁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은 경쟁과 부딪치며 산다. 그러니 현대인들이 사는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부른다.


레드우드는 연결을 통해 공존하는 지혜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인간은 혁신적인 기술을 이용하여 연결사회를 실현했지만, 그만큼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이다. 어쩌면 기술은 연결되었지만 마음이 연결된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세계는 무늬만 연결사회다. 레드우드의 연결은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과 양분의 공유를 통한 공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공존 방식이 수령을 반만년까지 이어지게 한다. 경이롭다. 반면에 인간 세계의 연결은 욕구를 실현시키는 수단이 된 나머지 치열한 생존 경쟁을 위한 배경을 놓아준 것이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있다. 연결을 악용하여 익명의 사람이나 기계가 하루에도 수없이 보이스피싱을 가장한 전화와 상업성 스팸 문자를 보낸다. 통계에 따르면 매일 지구촌에서 약 18억 명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한다.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사용자까지 더하면(중복을 제외하더라도) 한달 총 사용자수는 30억명 이상이고 트위터에는 매일 전 세계에서 1억 9천만 명이 접속한다고 한다(찰스 아서, 2022). 이러니 '초연결시대'라는 용어가 나왔을 것이다. 연결이 되면 될 수록 더 많은 소통이 이뤄지고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다. SNS를 타고 흐르는 바이러스가 선전선동을 불러일으키고 분노를 전염시키고 있다. 


 레드우드가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그들만의 공존 방식으로 경이로운 숲 공동체를 만든 것처럼 우리 인간도 연결을 통한 생존 방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진정한 연결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호모 사피엔스가 살고 있는 연결사회가 더 행복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레드우드 숲이 되면 좋겠다.

 

김성훈. (2017). <데일리 투머로우>. <[연중 특징 '교류'] 나는 레드우드 같은 마음의 친구가 있는가>. 7월 18일.

김승혜. (2019). <시사플러스>. <레드우드 나무에서 배워라>. 4월 29일.

박필선. (2014). <조선일보>. <우리가 나무를 심는 이유... 박필선 서울대 수목원장: 나무로 산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생존 방식... 인간 세상보다 더 잔인해>. 3월 31일.

백성호. (2015).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민음사.

신영철. (2021). <조선일보>. <세계에서 가장 키 큰 나무들이 있는 숲, 거대한 세월 속을 거닐다>. 5월 29일.

유재우. (2017). <동아 비즈니스 리뷰>. <한 조각의 햇빛이라도 더..."식물의 치열한 경쟁이 던지는 교훈>.  4월호.

찰스, 아서. (2022). <소셜 온난화>. 이승연 옮김. 위즈덤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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