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철현 Dec 15. 2021

빈틈이 있는 삶

삶에 저항하지 말라

나이에 따라 일처리 방식과 일의 결과를 수용하는 자세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젊었을 때는 나 자신이 빈틈이 없고 꼼꼼하게 일처리를 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상사로부터 "저 친구는 아주 빈틈없이 일을 한다"라는 말을 직간접적으로 듣게 되면 신이 났다. 여기에서 '빈틈'이란 일을 하는 과정이나 결과를 보았을 때 허술하거나 부족한 점을 말한다. 빈틈을 우리말 '흠', '결점', '하자' 등으로 바꿔도 되지만 단어가 주는 결은 좀 다를 것이다. 사실 빈틈이 생기면 나 스스로를 용납하지 않는 나름의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었다. 세상의 평판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가끔은 평판과 타협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받고 싶었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이다.


지금 나를 되돌아보면 일처리 방식과 일의 결과를 수용하는 자세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일의 양이나 속도보다는 일의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그럴만한 가치가 없거나 의미 없는 일이라면 하고 싶지도 않고 심하게는 쳐다보기도 싫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미치면 의사결정은 더 쉬워진다. 과거의 경험과 사례를 곱씹어보면서 시행착오를 줄이려고 하고 어느 정도 빈틈이 있어도 나 스스로를 용납하게 된다. 군대처럼 명령과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나 스스로 일의 속도와 양을 조절하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더 좋다.


'페르시아의 흠'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카펫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페르시아 카펫 장인들은 카펫에 일부러 작은 흠집을 낸다고 한다.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무결점이 없을 수 없다는 겸손함을 나타낸다. 아마존의 인디언 부족은 모두 구슬 목걸이를 차고 다니는데 구슬 중 하나가 깨진 채 있다. 상처 없는 구슬 가운데 상처 입은 구슬 하나를 끼워 넣어 목걸이를 완성한다. 그들은 그 깨진 구슬을 '영혼의 구슬'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제주는 예전에 삼다도로 알려졌다. 가수 혜은이의 '감수광'의 첫 구절에는 제주의 삼다인 바람, 돌, 여자를 소개한다.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 제주도 돌담을 보면 중간중간에 구멍이 나있다. 바람 많은 제주의 돌담은 구멍으로 바람이 통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일부러 흠을 내고 깨진 구슬을 달고 돌담에 구멍을 내는 것은 빈틈의 역설을 설명하는 데 적격이다. 그 빈틈으로 겸손함을 표시하고 영혼을 관리하고 이쪽과 저쪽을 소통시킨다.



나만의 빈틈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백이 생긴 것 같다. 나의 빈틈은 나만의 스타일이다. 빈틈을 인정하는 순간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 가능해졌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판에 신경을 썼던 젊은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나를 많이 내려놓고 비웠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대해 관심도가 줄어들었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상대방이 부탁하면 '노우'를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나에게 솔직하기로 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정신적, 신체적으로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한다. 좀 부족하고 스타일 좀 구기면 어떤가 싶다. 심하게 말하면 해내기 벅찬 일을 부탁받고 끙끙거리면서 해내는 것은 나 자신에게 교만한 것이다. 나는 교만을 좋은 사람이라거나 능력 있다는 평판과 맞바꾼 것이다. 나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고 나의 의지를 존중하지 않은 자기 기만이요 자기 위선이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날의 객기라고 하기엔 나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 것이다. 내 안의 존귀함(dignity)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사람이란 어느 날 갑자기 과거부터 해왔던 모든 의식 구조와 행동 양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덤까지 가져가는 것도 있다. 나는 요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열심히 대화한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하던가. 나의 생애사 역시 대화로 풀어나가면서 필요하면 화해도 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과거의 나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 많다. 그대로 하고 싶어도 신체적, 정신적으로 과부하가 걸린다. 제일 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은 세상의 평판에 초연하자는 것이다. 평판에 초연하면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삶은 내가 주인이라는 것, 나의 생각, 나의 선택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대신하여 살아 줄 사람은 없다. 남의 중병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것은 인간적인 빈틈이지 이기적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가 된다. 빈틈이 있어도 그대로 놔두고 받아들이고 싶다.


법정 스님의 '삶에 저항하지 말라'는 제목의 수필을 두고두고 읽는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집>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저항하지 말라/ 그 어떤 것에도 장벽을 쌓아두지 말라/ 온갖 사소한 충동, 강제와 욕구로부터/ 그리고 그 자질구레한 모든 갈등과 위선으로부터/ 진정으로 온전히 자유로워지거라'//(법정, 2009).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빈틈을 보이기 싫어하고, 좋은 사람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고자 나를 기만하는 것은 나의 삶에 저항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스스로 쳐놓은 세상의 평판과 나의 욕구라는 거대한 장벽에 갇혀 장벽 밖의 세상을 보지 못했다. 그러니 삶이 팍팍하고 고달프지 않겠는가? 내 삶에 저항하면 할수록 진정한 자유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가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다.  


한편으로 삶에 저항한다는 것은 '삶이란 상실이고 상실이 곧 삶이다'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본다. 상실은 잃어버리는 것이다. 상실에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 유형의 것도 있고 무형의 것도 있을 것이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친구를 잃고 물건을 잃어버린다.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로스, 케슬러 2006)라는 유대 격언은 삶이 '기승전상실'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에 적합하다. '가진 것이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죽음이란 상실 앞에서는 달리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학창 시절 모르는 주관식 문제에 거짓 답을 채워 제출한 적이 있다. 문제에 맞는 답이 아닌 줄 알면서도 거짓 답안을 쓴다는 것이 낯 뜨겁고 부끄러웠지만 선생님의 인정 점수를 받고자 하는 헛된 기대를 가졌다. 지금부터의 인생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할 것이다. 삶이 나에게 낸 문제를 모르면 그냥 백지로 제출할 것이다. 내 삶의 평가자는 나 자신이다. 더 이상 나를 기만하거나 학대하지 않을 것이다. 내년은 호랑이해다. 호랑이해에 태어났으니 육십 갑자가 돌아온 것이다. 아무리 장수사회라고 해도 딱 한번 맞이한다. 인생 2 모작의 씨앗을 뿌리는 육십부터는 빈틈이 있는 나에게 우선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로 하자. 무엇보다 삶에 저항하지 않으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싶다. 남의 빈틈에도 관대한 마음을 잃지 말자.

 

배연국. (2016). <세계일보>. <[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페르시아의 흠>. 8월 30일.

법정. (2009). <아름다운 마무리>. 문학의 숲.

소노 아야코. (2018).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오경순 옮김. 책 읽는 고양이.

퀴블러-로스, 엘리자베스, 케슬러, 데이비드. (2006). <인생수업>. 류시화 옮김. 이레.

한현우. (2021). <조선일보>. <금덩이를 두르고 헤엄칠 수 있을까>. 12월 16일.

혜민. (2013). <조선일보>. <가장 위대한 사랑>. 11월 15일.

작가의 이전글 중요한 것은 '어떤 연결'이냐 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