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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Dec 18. 2021

자서전의 품격

어느 목회자의 자서전을 읽고

자서전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애를 통째로 이해하는 행위이다. 인간이 자서전을 남기는 것은 기록을 통해 자신의 일대기를 정리한다는 일차적인 의미 외에도, 저자의 살아온 삶의 종적, 횡적 의미를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일 것이다. 결국 자서전이란 자신에 대한 진솔한 기록물을 자신 이외의 타자와 공감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드러내는 행위이다. 더불어 삶의 의미를 탐색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숭고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기록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다른 동물과 차별화된 인간 고유의 상징 문화이며 특권이다. 영장류 중에서 인간 외에 체계적인 기록을 남겼다는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주변에서 자서전 출간은 삶의 원숙기에 접어든 사람들의 버킷 리스트 맨 위를 차지하는 것을 본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평가하고 회고하는 평전이 2차적 자료라고 한다면, 자서전은 한 인간의 진면목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원시자료(raw data)라는 점에서 '그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평가를 위한 기초가 된다.  


자서전의 특징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주인공이 자신이 태어나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이나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기념비적인 행동들을 일인칭 시점에서 해석하고 세부 설명을 덧붙이는 통사(通史)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통으로 이해하거나 그가 살았던 동시대를 이해하는 데 자서전만큼 친절하게 설명해놓은 책도 드물 것이다.


최근 어느 목회자의 자서전을 읽고 자서전이란 이런 맛과 멋이 있구나라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서전의 품격이랄까. 사실 서점에 진열된 자서전에는 정계, 경제계, 또는 예체능의 스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글의 내용을 보면 전문 작가들이 주인공을 통한 구술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대신 집필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글의 내용이나 전개 방식은 버터를 바른 것처럼 부드럽고 가독성 또한 좋지만 자서전에서 기대하는 진솔한 삶의 기승전결을 놓고 보면 함량 미달일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유독이나 눈에 거슬리는 것은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을 지나치게 미사여구로 회칠하고 당대의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영웅담의 서사적인 글로 채우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자서전이 회칠한 무덤이 되고 마는 이유이다. 유권자의 표를 얻을 목적으로 출간된 이른바 기획 소설이거나 정치적 자서전이 이에 해당한다. 과유불급을 떠올린다. 얼굴에 화장을 웬만큼 해야지 지나치게 하면 원형을 훼손하고 만다.


자서전에도 갖추어야 할 품격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서전을 쓸 수 있지만, 모든 것이 다 자서전의 품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는 없다.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품격은 '자신에 대한 솔직함'이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서전은 자기 고백서로 이해할 수 있다. 자서전의 그릇에는 잘한 일이든 못한 일이든 있는 그대로를 담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나의 삶의 철학은 무엇이고, 나는 고난과 역경을 이렇게 극복했다. 인간관계는 이렇게 관리하고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나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으로부터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대개 이런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다. 이런 자서전에 진정성이 결여되거나 과장법으로 회칠을 한다면 가공된 주인공은 허구의 인물이 되거나, 그 내용 또한 픽션으로 얼룩진 생애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발목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꼴이다.


두 번째의 품격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이 감동은 독자의 몫이다. 자서전의 내용을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이른바 소설처럼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감동적인 요소들로 채울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주인공의 삶을 흠집 내거나 불명예를 초래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어떤 자서전은 주인공을 마치 하늘에서 내린 숭고한 사람이라거나 불세출의 영웅으로 대중을 지도하는 리더로 예정된 인물로 묘사하기에 급급하다. 이런 꼴불견은 대중의 인기를 의식하거나 자신의 존재감을 부풀리고 싶어 하는 정치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류의 자서전은 독자들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것이고, 차라리 소설을 읽는 것이 나을 것이다.


세 번째의 품격은 자서전의 내용이나 저자가 주장하는 메시지가 독자의 생각과 삶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주어야 한다. 독자들이 자서전의 행간에서 풍겨 나오는 의미를 음미하면서 자신의 삶에 플러스가 되는 메시지를 얻거나 공유하는 내용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타산지석이고 역지사지라고 하던가. 만약 독자가 주인공과 동시대 사람이라면 주인공의 살아온 세계나 환경과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주인공보다 젊은 세대라면 그 세계와 환경에 미리 가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서전은 한 개인의 사적 기록물의 의미를 넘어 남녀노소와 연령과 세대를 넘나드는 공공 유산이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내가 아는 어느 목회자(문맥에 따라 목사님으로도 호칭함)의 자서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정치인이나 경영인 등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 인물들의 자서전은 읽어보았지만, 목회자의 자서전을 이렇게 열심히 읽은 적은 없었다. 목회자의 자서전이라고 하면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영역에서가 아니라 영적인 측면에서 경험과 사례를 주로 다룰 것이라 생각했다. 몇 장을 넘기면서 나의 선입견이라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저자는 세속계 자서전의 내용과 같이 생애사적인 주요 행적이나 드라마틱한 사연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목회자로서 교회 공동체에서 겪었던 다양한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솔직 담백하게 그려냈다. 그는 자서전의 첫 번째 품격에 해당하는 '진성성'을 담아냈다. 그의 자서전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교회 공동체에서 실제 일어난 적나라한 행태들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그의 목회 철학 중에 '배는 떡으로 채우고, 머리는 독서로 채우고, 영혼은 감동으로 채운다'라는 어록에 이끌렸다. 그의 자서전을 읽고 나면 종교인과 신앙인에 대한 구별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 그가 소속된 교회가 내분에 휩싸이고 법적 다툼으로 격화되었을 때 교회 구성원들이 보여준 각각의 모습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의 교회에서 실제 일어났던 자조적이고 낯뜨거운 모습을 증빙자료에 근거해 있는 그대로 밝히고 있다.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공동체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겉으로 또는 말로는 신앙인이라고 하지만 종교인에 머물고 있는 목사, 장로, 권사 등 이른바 교회 공동체의 리더들이 종교 권력을 휘두르고 자신들만의 성역을 만들려는 나쁜 의도들을 고발하는 것이다. 그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정치적 파당을 만들어 자기 세력을 형성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교의 정치화 실태를 고발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자서전은 종교계의 참여 문학의 유형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무려 7년 동안 165건의 송사를 겪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세 번이나 쓰러져 목숨이 위태로운 고비를 넘겼으며 지금도 수전증의 후유증을 겪으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호사가들은 목회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겪는 고난과 시련을 하나님이 예비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상을 알고 나면 이는 하나님을 빙자한 지독한 억지와 편협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 오랫동안의 다툼과 갈등을 지켜본 것은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고 승리한다는 것, 그리고 선이 악을 물리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켜주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인간적이 아닐까 싶다. 목회자도 하나님의 종이기 전에 하나의 인간이지 않는가. 그가 자서전에서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낱낱이 고발한 교회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교회 리더들의 탐욕과 권력욕이야말로 비단 해당 교회만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 목회자도 자서전을 참여문학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목숨을 내놓고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고 글을 집필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사건의 과정을 하나하나 글로 표현하고 설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목회자의 자서전이 시종 강조하는 메시지는 행동하는 신앙인이지 않나 싶다. 행동하지 않은 신앙인은 고인물처럼 언젠가 썩게 되고 목사, 장로, 권사라는 직분을 권력으로 착각하고 남들 앞에 군림하고자 한다. 교회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되고 만다. 썩은 생선 냄새가 날 것이다. 그들의 시선은 그리스도가 아닌 세속적인 욕망에 향해 있다. "오직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고정시키고 있을 때에만 그리스도인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저자가 참 신앙인을 설명할 때 인용한 영국의 작가이자 신앙인이었던 클라이브 루이스의 말이다.


이제까지 자서전 중 정주영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가장 감동 있게 읽었다. 정주영의 투박하고 솔직한 생애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서전의 원형에 정주영의 자서전이 내 머릿속에 들어앉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정주영의 자서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면, 이 목회자의 자서전은 영적인 측면에서 가장 인상에 남을 것 같다. 저자는 한국 교회사에서 가장 많은 영적 전쟁을 치른 목회자로서 뼈아픈 기록을 남겼지만, 그는 자신을 악의적으로 공격하고 송사를 제기하고 유언비어를 퍼트렸던 사람들을 기꺼이 용서한다. 그는 임기를 더 채울 수도 있지만 금년 12월 은퇴한다. 후배들에게 한해라도 더 일찍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칠순을 눈앞에 둔 목회자로서 그의 좌우명은 '나의 사랑 여정은 계속되리라'이다. 불의한 세력으로부터 악의적인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저자의 좌우명이기에 가슴에 더 와닿는다.


포항제철소의 거대한 용광로에는 순도가 높은 철만 들어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온갖 유형의 철들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 빚어내는 철은 우리들의 삶에 소중한 원료가 되고 있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1973년 6월 9일 가동된 포항제철의 용광로가 금년 12월 29일 퇴역을 한다고 한다. 48년 만이다. 그 용광로가 빚어낸 철의 양은 우리 경제의 피와 살이 되었을 것이다.


용광로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내면 깊은 곳에 용광로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즐거움, 괴로움, 좌절, 고난, 시련, 갈등, 투쟁, 대립, 분노, 상처, 집착, 실패, 스트레스 등 인간의 오만가지 감정은 그 용광로에서 새로운 감정을 빚어낸다. 인간의 용광로에서 빚어내어 담금질하는 지고지선의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바로 '사랑'이 아닐까 싶다. 톨스토이도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저자는 별만큼이나 많은 고뇌와 시련과 역경을 자신의 용광로에서 빚어내 담금질하여 탄생시킨 사랑의 여정을 계속할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장성(長城)과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먼 낯선 곳에서 노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목회자가 목회 활동을 했던 교회는 그가 몸소 보여준 사랑과 용서를 자양분으로 삼아, 다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설교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의 생애를 통째로 담아놓은 자서전을 읽었으니 저자에게 덕담을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나는 예수를 잘 모른다. 예수를 잘 모른다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를 잘 모른다는 말이다. 여전히 선데이 크리스천이다. 그러나 사랑이야말로 내 삶에 알파이고 오메가라는 것을 확신한다. 신앙인이기 전에 인간이기를 원한다. 멋진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서전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억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얄팍한 성경 지식으로 회칠한 종교인 행세를 하기보다 이신칭의(以信稱義), 즉 믿음으로 의롭다 칭찬을 받고 싶다. 자서전에서 인용한 마르틴 루터의 신앙 철학이다.


이 목회자가 은퇴 후에도 가슴속에서 용광로처럼 활활 타오르는 이신칭의의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하면서 사랑의 여정을 계속하기 바란다. 영어의 축복(blessing)은 프랑스어의 상처(blesser)에서 비롯되었다. 현재의 상처는 미래의 축복 보험이다. 상처입은 뼈마디는 더 단단하게 굳어진다. 이 곤궁한 목회자가 겪었던 숱한 상처는 축복을 위한 단단한 토대가 될 것이라 믿으며 자서전의 품격을 보는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괴로웠지만 행복한 목사'인 저자가 자신과 이웃을 위해 비춰줄 사랑과 용서의 불빛은 계속 밝혀질 것이다. God ble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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