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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Mar 29. 2022

‘피 한 방울의 원칙(one-drop rule)’

순혈의 이데올로기

   2022년 기준 지구촌에 약 80억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거대한 인구 중 순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순수한 피가 어디 있으며, 순수하지 않은 피가 어디 있겠는가 싶다. 도대체 순수 혈통의 기준을 누가 세우고 또 그 기준 무엇인지 모를 일이다. 저자는 이 세상에 순수 혈통은 없다고 정하고 싶다. 진솔하게 혈통을 따지자면 어떤 민족의 피가 더 섞였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순혈(純血) 개념은 부족이나 민족의 단결과 연대를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하기야 근대에 나온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조차도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라고 하지 않은가. 왜 '민족'은 실체가 아니고 인간이 상상으로 성립된 개념일까? "가장 작은 민족의 일원조차도 같은 겨레를 이루는 이들 절대다수를 알거나 만나보지 못한다. 그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볼 일조차 거의 없으리라. 그럼에도 각자의 가슴속에는 그들의 교감에 대한 심상이 살아 숨 쉬고 있다. 민족이 발명된 18세기 이전에 압도적인 문화체계로서 종교 공동체와 왕조국가가 있었다. 종교 공동체가 흔들리면서 민족이 상상되었다"(앤더슨 2018).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고 구심점이 와해되었을 때 순혈주의를 이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한민족을 하나로 결집시킬 필요가 있었고, 이때 단일민족은 민족적 일체감과 동질성 형성을 위한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였다. 역사는 순혈주의 이데올로기가 과잉 해석되거나 악용되면 인종주의나 배타적 국수주의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순혈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모순인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대의 첨단과학기술은 내 몸의 피를 분석하여 순혈의 허구성과 모순을 알려준다. 모 일간지 기자가 직접 체험한 DNA 검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90.3%, 일본인 8.8%, 중국인 0.6%, 동아시아인 0.3%, 아메리칸 인디언 0.1%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이 아시아 대륙의 국가와 피가 섞였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아메리칸 인디언의 유전자도 포함되었다. 학설로 존재하던 동아시아인의 아메리카 대륙 이주가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심재우 2018). 중국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베이징 출신의 중국인은 중국 62.66%, 한국 17.82%, 일본 6.94%으로 나타났다. 한국인과 차이점이라면 한·중·일 이외에도 동남아 DNA(베트남 9.88%, 미얀마 1.75%, 필리핀 0.93%)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혼혈의 매개체와 정도는 지리적 특성이 크게 작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인의 DNA를 분석해보면 대부분 한국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 혈통이 섞여 있고, 구성비가 작긴 하지만 몽골 등 북방민족 혈통도 들어있다. 한국·중국·일본인들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큰 줄기에서 만나게 된다(최준호 2019). 이 검사 결과는 한민족단일민족이라거나 순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어폐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세계 최대의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는 아직도 ‘피 한 방울의 원칙(one-drop rule)’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흑인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 있으면 흑인’이라는 사회적 통념이다. 주로 흑백 혼혈인들에게 적용되는 인종차별 시대의 잔재이다. 실제로 피 한 방울 때문에 연방대법원에서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제공한 ‘플레시 대 퍼거슨 판례'다. 최고 법원이 인종차별의 법률적 근거를 제시하고 차별을 옹호 판결의 발단을 좇아가 보자.


   1892년 6월 당시 서른 살의 제화공이자 시민운동가이었던 호머 플레시(Homer Plessy)는 루이지애나주의 한 기차의 1등석을 예약한 후 앉아 있었다. 플레시는 8분의 7은 백인 혈통이었고 8분의 1은 흑인 혈통을 가지고 있으면서 피부색이 하얀 혼혈인이었다. 차장은 그에게 다가와 1등석은 백인만 이용할 수 있다며 흑인 칸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했다. 플레시는 차장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차장은 요구가 묵살되자 보안관에게 신고했다.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주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주법원의 존 H. 퍼거슨(John H. Ferguson) 판사는 플레시가 1890년 흑백분리를 규정한 루이지애나주의 열차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하면서 25달러 벌금형에 처했다. 플레시는 흑인인권단체와 함께 루이지애나 주대법원에 항소했지만 패소했다. 플레시의 변호인단은 인종차별을 금지한 수정헌법 제13조 및 제14조의 위반이라며 해당 사건을 연방대법원에 항소했다. 1896년 5월 18일 연방대법원은 최종심에서 7대 1의 압도적인 차이로 퍼거슨의 손을 들어주었다.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구성원은 9명인데 1명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이 판결이 바로 악명 높은 인종차별법, 즉 ‘분리하되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의 효시다. 이 판결로 미국 사회, 특히 남부백인은 합법적으로 흑인의 선거권 박탈은 물론 철도, 극장, 여관, 식당, 공원 의자, 심지어는 묘지에 이르기까지 인종차별 자행되었다.


   사실 미국은 남북전쟁(1861~1865) 기간 중인 1863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했고, 1865년에는 수정헌법 제13조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한 바 있다. 1868년에는 수정헌법 제14조를 비준하여 합중국 시민은 ‘법에 의한 평등한 보호’를 받는다고 천명했다. 정부가 관련 법률 제정하였다고 해서 곧바로 그 효력이 나타나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이 규정한 ‘합중국 시민’의 범주에서 흑인 등의 유색인은 제외되었다. '모든 시민이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법률적 수사에 그쳤다. 남부에서는 흑인을 상대로 한 반인륜적인 폭력과 린치가 일상이 될 정도였다. 이는 연방군의 남부에 대한 군정이 종식되고 권력을 되찾은 토착 백인들의 횡포를 연방정부와 대법원이 눈감았던 탓이다. 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4조가 오직 정부 활동에 국한된다고 판결함으로써 백인의 흑인에 대한 폭행이나 차별에 법률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였다. 남부의 백인은 연방의회가 제정한 헌법조차도 그들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적용하였다.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의 종식 후에도 미국은 합중국이 아닌 북부와 남부의 이원화된 국가체제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이처럼 미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보편적인 상식처럼 되었던 시대에 플레시 판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한 명의 대법관이 있다. 존 M. 하렌(John M. Harlan 1833~1911) 대법관으로 그는 오늘날에는 용기있는 법관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반대의견은 미국과 미국인의 양심에 폐부를 찔렀다. 다수의 대법관은 헌법 정신을 왜곡하고 흑인을 차별하는 사회적 통념과 제도를 외면하고 정당화하는데 온갖 수사(修辭)를 동원했지만, 하렌의 생각은 다수의 그들과 달랐다. 아래에서는 하렌 대법관이 진술한 반대의견 중 일부를 옮겨본다.


미국의 헌법은 어떤 특정 인종의 공민권의 향유를 인정하는 권한을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인종적 긍지를 지니고 있으며, 법 앞에서 자신과 동등한 다른 사람의 권한이 침해되지 않는 한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긍지를 표현하고 그에 기반을 둔 행동을 취할 특권이 있다. (...) 내가 보기에 루이지애나 법령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시민의 개인 자유 문제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고 미국 헌법의 정신과 자구 모두에 어긋난다. 만약 이러한 성질의 법들이 여러 주에서 제정된다면, 필시 유해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법에 의해 허용되었던 노예 제도는 이 나라에서 분명히 사라졌다. 그러나 사악한 법령은 완전한 자유의 축복의 향유를 여전히 저지하고 있고,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시민권을 인종에 따라 제약하고 있으며, 많은 미국 시민을 법적으로 열등한 상태에 처하게 하고 있다.  


   하렌 대법관은 ‘미국 헌법은 인종에 구애되지 않으며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요지로 반대의견을 진술했다. 당시 그의 의견은 허공에 외치는 메아리처럼 들렸지만 그 메아리가 돌고 돌아 새로운 판결을 위한 씨앗이 되었다. 플레시 판결, 즉 공공시설에서 ‘분리하되 평등하다’는 판결은 1954년에야 뒤집어졌다. 무려 58년이 걸렸다. 법률적으로 인종차별의 정당화를 제공했던 연방대법원이 반세기가 지난 뒤에 ‘공공시설에서 분리는 본래 위헌이다’라고 판결했다. 이때 판결에서는 대법관 9명 전원이 찬성 의견을 냈다. 사람이 바뀐 것인지 세상이 변화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기득권의 마음에 한번 자리 잡은 사회적 통념은 그것이 옳든 그르든 바꿔지기란 어려운 법이다.


    리처드 다이어(2020)는 《화이트: 백인 재현의 정치학》에서 백인은 흑인과 원주민을 배제하고 그들만의 평등과 민주주의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현대판 고대 아테네 시민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백인들은 순수함에 대한 오만과 집착으로 홀로코스트 만행을 저질렀고, 흑인의 피 한 방울만 섞여도 흑인으로 취급하는 노예 시대의 악덕을 계승했다고 질타했다. 다이어는 백인우월주의가 기독교를 전파하고, 인종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 등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백인이 혈통에 근거한 인종주의는 ‘나’와 ‘너’라는 이분법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 ‘우리’라는 공동체 덕목은 끼어들 공간을 말살한다.


   우리나라 왕조시대에도 '피 한 방울의 원칙'이 있었다고 본다. 노비 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조선 초기만해도 노예는 종모종부법(從母從父法), 즉 부모 중 한쪽이 천인이면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무조건 천인이 되었다. 양반은 이런 제도를 환영했다. 노비는 곧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태종은 종모종부법을 종부법(從父法)으로 바꿔 양인 아버지와 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양인이 되는 구조로 만들었다. 양반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저항을 무릅쓴 노비제도의 일대 개혁이었다(이한우 2022, 322-324). 흑인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있으면 흑인으로 간주하는 미국 사회를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비로 태어나면 영원히 노비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도 국제 기준을 충족하는 다문화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유엔은 한 국가의 총인구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5%가 될 때 다문화사회로 부른다. 현재 우리나라는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다문화구성원의 비율이 5%에 근접하고 있다. 다문화사회 구성원은 결혼이주여성, 외국인 근로자, 북한이탈주민, 외국 유학생 등 다양하다. 다문화사회는 포용성과 역동성을 요구한다. 외국에서 사람이 이주해오는 것은 단지 사람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과 함께 문화도 함께 온다. 그래서 정현승 시인은 〈방문객〉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이주해 온 사람은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와 함께 오는 것이다. 이주민은 가시적인 몸과 함께 언어, 종교, 사고방식, 행동양식 등 비가시적 문화와 함께 온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를 어떻게 대응하고 관리하느냐가 우리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생각한다. 다문화사회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기득권을 가진 한국인이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순혈이니 단군 자손의 단일민족이니 하는 이데올로기는 성숙한 다문화사회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는 역사적 사례를 확인했다. 미국과 같은  다문화사회로 이행되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은 타자를 수용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우리나라도 농어촌, 제조업, 건설업, 숙박업 등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문화주의와 인종차별주의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본격 궤도에 올라 선 다문화사회 한국의 미래는 순혈의 문화,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다이어, 리처드. (2020). 《화이트: 백인 재현의 정치학》. 박소정 옮김.

앤더슨, 베네딕트. (2018). 《상상된 공동체》 . 서지원 옮김. 길.

이한우. (2021). 《태종처럼 승부하라》. 푸른 역사. 

강의정. (2018). 《중앙일보》. 〈‘섞인 피’는 옳지 않다는 순혈주의의 그늘〉. 12월 10일.

심재우. (2018). 《중앙일보》. 〈내 뿌리 찾기 DNA 테스트해보니 … 0.1% 아메리칸 인디언”〉. 3월 19일.

최준호. (2019). 《중앙일보》. 〈침 뱉어 찾은 뿌리…경주 최 씨 기자, 한·중·일 혼혈이었다〉. 11월 21일.

미국 연방대법원. 플레시 대 퍼거슨 판례(1896).

Alexander, K & Alexander, David M. (1992). American Public School Law (3rd ed.). St. Paul, MN: West Publishing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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