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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Mar 30. 2022

일본의 역사왜곡

언제까지 역사의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가?

  일본의 역사왜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그 방식과 정도가 한참 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다. 2023년부터 일본 고등학교에서 사용할 역사, 사회 교과서에서 '조선인 강제 연행'과 '종군 위안부'와 관련된 표현을 삭제했다. 또 독도를 일본 고유 영토라고 기술하였다. 이는 2022년 3월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교과서 검정심의회가 민간에서 기술한 교과서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대폭 수정, 삭제된 결과다. 일본 정부는 민간 교과서에서 기술했던 '강제 연행' 혹은 '강제 징용'의 표현을 삭제하고, 대신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영하여 '동원' 혹은 '징용'이란 단어로 수정했다. 일본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열어가자는 말을 하고 있지만,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보란 듯이 역사분쟁을 촉발하고 있다. 그동안 극우 성향의 민간단체나 일부 정치인들이 과거사를 부정 또는 미화하는 발언을 하였지만, 일본 정부가 대놓고 역사왜곡을 하는 것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와 관계 개선 운운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는 립서비스였다.  


   한·일관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保坂祐二・2003년 한국 귀화)는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 교과서 간행은 2021년 일본 정부의 각료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이다"라고 말했다. 각료회의 결정 이후 문부과학성은 교과서 집필자를 모으고 집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임기 2006~2007/2012~2020) 전 총리의 영향력이 강력한 자민당에서는 극우 성향의 인사들이 한·일관계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으면서 한국대응전담팀을 꾸려 역사 문제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한국에 고통을 주는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이윤주 2022). 호사카의 주장을 종합하면 일본 정부는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역사왜곡를 교과서에 반영하였으며, 앞으로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강경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여당인 자민당은 극우단체의 지지를 등에 업고 한국에 전쟁선포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기 위한 온갖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죄한 1993년의 고노담화(河野談話)를 계승하겠다고 공언해왔지만, 교과서에서는 '종군 위안부'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애당초 사죄가 아니라 미봉책이었다는 방증이다. 고노담화를 살펴보자.  "(...) 장기간에, 또한 광범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되어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하였다.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 경우에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이 있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하였다는 것이 명확하게 되었다. 또한,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태 하에서의 참혹한 것이었다. (...)" 이 담화를 들여다보면 일본은 군대와 관청의 관여와 동원에서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진실을 회피했다. 일본 군대와 관청의 관여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전반적인 책임은 민간업자들에게 있다고 둘러댔다. 부분적으로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지만 법적인 책임이나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 거부했다. 아베 정부에서는 아예 고노 담화 자체를 부정했다.


  일본 정부는 겉으로는 한국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말한다. 국가 간의 관계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사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정리되어야 하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개인 간의 관계도 그렇지만 국가 간의 관계는 오죽하겠는가 싶다. 과거사가 발목을 잡으면 미래 관계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국가가 일본이라면, 유럽에서는 독일을 꼽을 수 없다. 일본과 독일은 과거사를 청산하는 방식과 철학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일본은 독일이 어떻게 이웃 국가와 이스라엘, 아프리카 피식민국가와의 관계 설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를 배워야 한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임기 1969~1974)는 제2차 세계대전의 최대 피해국 중 하나인 폴란드를 방문하여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겉으로 보여주는 일회성의 사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실되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일본에도 과거사를 진솔하게 반성하고 사죄하는 지도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鳩山由紀夫 임기 2009~2010)는 "과거사는 상대방이 그만 용서를 빌라. 이제 됐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라고 말할 때까지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하여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한 적도 있었다. 2015년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와 합의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가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돈(10억엔)으로 문제를 해결한 정치적 타협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 하토야마 전 총리와 같은 사람의 발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하토야마도 정부 입장이 아닌 민간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발언한 것이다. 일본 정부 관계자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면 세계적 화제가 될 것이다. 
 

  일본과 일본인의 심리적 기저에는 강대국과 강한 사람에게는 철저히 복종하며, 약소국과 약한 사람에게는 지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일본에는 여전히 일본이 아시아를 대표하는 문명국가라든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수립이라는 제국주의의 정치적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유아독존의 망상에 빠져 있는 것이다. 또 일본은 자국의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자존심을 따지지 않고 머리를 조아린다. 일찍이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일본이 서구와 미주에 파견한 유람단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일본은 선진문물을 배워 이웃나라인 한국과 중국 그리고 아시아 국가를 침략하여 표현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쉬울 때는 머리를 조아리며 자본을 유치하고 기술을 전수받지만, 국익에 관련되면 선린우호관계는 내팽겨치고 폭력과 야만의 날카로운 이빨로 기습 공격도 서슴치 않는다. 그 사례는 조선왕비 시해(1895), 중일전쟁(1937), 진주만 공격(1941) 등 셀 수 없이 많다.    


   일본의 이중적인 태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면이 바다로 막힌 섬나라 특유의 근성인가? 또 다른 이유가 있는가? 이어령(1934~2022)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이중장부적 역사 서술'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일본인의 의식 구조에서 일본의 역사왜곡 행위를 파악했다. "일본인의 역사 의식에서는 종이에 글로 기록한 역사 따위는 휴지와 같다. '이기면 관군, 지면 역적'이라는 힘의 논리가 지배했다. 역사 기록의 전통은 중국과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궁정의 춘추사관의 그것이 아니라, 상인들이 거래를 매일 기록하는 장부 기입의 습관에서 찾아야 한다. 일본인은 장부 기입식 역사 서술은 의(義)와 불의(不義)가 아니라 이익과 순해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이익을 위해서는 세금을 속이기 위한 허위 장부를 만들어도 상관없었다. 이러한 이중장부적 역사 서술의 역사는 편리하게 개조할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 날조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것이다'(이어령 1994, 134-137).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인다운 날카로운 분석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한국과 중국은 사마천의 사기(史記) 기술 방식에 따라 역사를 기술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지만, 일본에는 힘의 논리로 얼마든지 역사가 바뀔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하기야 우리나라 왕조시대의 사관(史官)은 목숨을 내놓고 기록하고 당대 왕은 아예 기록을 열람하지 못하는 것이 불문율이었지 않았던가. 이어령의 일본인에 대한 의식 분석은 왜 일본이 역사의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손바닥 뒤집듯이 날조, 왜곡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렇다하더라도 문명국가에서 어떻게 감수성이 민감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왜곡된 역사를 가르칠 생각을 한단 말인가. 일본 정부도 조금만 멀리 본다면 역사왜곡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후과(後果)를 초래할지 알 수 있을 것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카펫 위에 떨어진 쓰레기가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남이 볼까봐 카펫 아래로 집어 넣는 꼴이다. 한 개인에게 형성된 역사의식과 역사관은 평생 지속되면서 자신의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어떤 역사관을 가지느냐는 곧 어떤 삶을 살 것인가와 연결된다. 일본 정부가 엄중한 역사를 멋대로 뜯어고치고 왜곡하여 자민족 중심의 배타적인 역사 교과서를 교과서로 사용하는 것은, 청소년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줄 뿐 아니라 심하게 말하면 범죄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것이 다름 아니다. 제2, 3의 반인륜범죄자를 만드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민간 차원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하여 역사 왜곡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민간 차원에서 기술한 왜곡된 역사가 있다면 정부가 바로잡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일 것이다. 일본 정부는 한일관계의 미래 지향적 관계를 운운하고 있지만 이번 역사 교과서 왜곡을 통해 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특히 청소년에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식민 침탈과 만행을 미화시켜 일본이 반인륜적 범죄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이지만 진실은 가릴 수 없는 일이다. 나중에야라도 일본의 청소년들이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싶다. 


   요즘 애플 TV에서 방영되는 '파친코'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에 대한 일본의 만행과 재일교포 문제를 다룬 드라마다. 이 작품은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이 쓴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했는데, 일제강점기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이방인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들의 처절한 생애를 그렸다.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작에 뽑힐 정도의 수작(秀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인들은 이 작품의 내용에 대해 역사왜곡 운운하면서 말도 되지 않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소설과 사실의 경계를 무시하는 일본인의 의식에 실망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소설의 모티브는 어디까지나 사실이 아니던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삿대질을 하는 꼴이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과 반인륜적 행동에 대해서는 미화하거나 왜곡하여 가르치는 반면에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만든 예술 작품에 대해 딴지를 건다. 지극히 자민족 중심의 배타적이고 이중장부적인 역사관에 매몰되어 있다. 저자는 독일 정부가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영화에 대해 딴지를 걸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개인이나 국가도 잘못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잘못을 은폐, 축소, 왜곡하는 것이다. 한·일관계의 개선은 과거의 문턱을 넘어서야 가능하다. 일본도 한국이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밀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같은 비정상적인 관계에서는 양국의 선린우호관계는 점점 금이가고 과거사의 문턱은 더 높아져 한국이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없다. 제2, 3의 하토야마와 같은 지도자를 기대한다. 


이어령. (1994).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 이후》. 기린원.

이윤주. (2022). 《한국일보》. <호사카 유지 "尹 정부서 일본과 관게 개선? 쉽지 않을 것"... 왜>. 3월 31일.

정준기. (2019). 《한국일보》.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과거사 무한책임 있다”>  . 6월 12일.

최우리. (2019). 《한겨레》. <헌재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정치적 합의” 헌소 각하>.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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