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철현 Mar 31. 2022

독일과 프랑스의 공동 역사교과서

역사분쟁의 해결 사례

   알퐁스 도데(1840~1897)의 단편소설《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 지역인 알자스-로렌 지역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프랑스 영토였던 알자스-로렌 지역이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해 독일 영토로 귀속되면서 이 지역의 모든 학교는 프랑스어 수업이 아닌 독일어 수업을 하게 된다.《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어로 이루어지는 수업의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소설에서 교사 아멜은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칠판에 "VIVE LA FRANCE!!(프랑스 만세!!)"라고 쓴다.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애국심을 북돋우는 소설이라 하겠다. 알자스-로렌 지역은  유럽에서 대표적인 분쟁지역의 하나였다. 중국 후한말을 배경으로 한 소설《삼국지》로 비유하자면 위, 촉, 오의 국경을 이루었던 형주((荆州)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의 소유를 둘러싼 독일과 프랑스 양국 간의 분쟁은  장구하고 치열했다.


  원래 알자스-로렌 지역은 독일령이었는데 1648년 이후 프랑스에게 뺏겼다가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보불전쟁·1870~1871)의 결과로 독일이 이 지역을 강제 합병하였고,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결과 함께 프랑스로 완전히 재편입되었다. 프랑스와 독일은 기원전부터 적대 관계의 앙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갈리아족 프랑스와 게르만족 독일의 갈등으로 시작하여 중세 프랑크 왕국과 합스부르크 왕국 간의 충돌을 거쳐 19세기 나폴레옹 전쟁과 보불 전쟁은 양국의 적대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1, 2차 세계대전과 전후 프랑스의 독일 자를란트 점령(1947~1956) 등으로 양국은 단순한 반감을 넘어 서로를 잠재적 적성국으로 규정하며 과거사의 앙금을 가라앉히지 못하였다. 그러던 양국 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을 위한 계기가 마련되었다. 1963년 1월 독일 아데나워 수상과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체결한 ‘독일-프랑스 화해협력 조약(이하 엘리제 조약)’이다(오창룡 2022).

 

  프랑스와 독일은 엘리제 조약 체결 이후 적대국에서 선린우호의 이웃 국가로 관계가 급진전하였다. 이는 미소 냉전 체제의 성립 및 유럽 공동체의 모색이라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부응하여 양국이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국제적인 환경도 작용했다. 엘리제 조약을 통해 두 나라는 뿌리 깊은 반목을 청산하기 위해 (1) 모든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한 정책을 사전 조율하고, (2) 양국 정상회담을 연 2회로 정례화하며, (3) 인적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민관기구의 창설에 합의했다(주경철 2007). 더 나아가 양국은 2019년 1월 엘리제 조약 체결 56주년에 ‘엘리제 조약 2.0 버전’을 표방하며 아헨 조약을 체결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구축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오늘날 양국은 화해와 공존의 관계를 토대로 유럽연합에서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이 급속히 가까워진 데에는 양국 청년들의 교류가 크게 작용하였다. 엘리제 조약 이후 양국은 프랑스·독일 청년 사무소(FGYO)를 개설하여 지금까지 36만 회의 학생 교환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900만 명의 양국 청년·청소년 교류를 지원했다. 양국의 학생교류 프로그램을 모델로 1987년에는 유럽연합 차원의 학생 교환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이 가동되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2014년까지 31개국 4000개 대학에서 330만 명의 학생이 서로 교류했다(채인택 2022). 인간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간의 관게도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이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처럼 유럽에서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였던 독일과 프랑스는 화해와 협력 관계를 토대로 청소년들이 활발하게 교류, 소통하면서 양국에 민감한 사안이 될 수도 있는 역사 문제에 대해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 양국은 역사교과서를 함께 편찬하여 2006년 9월부터 양국의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의 역사교재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역사 교과서를 두 나라가 공동으로 편찬하기로 한 역사적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프랑스와 독일의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의 배경을 좇아가 보자. 2003년 엘리제 조약 40주년을 기념하여 모인 양국의 청소년 대표들은 유럽을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공동의 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과 독일 슈뢰더 총리가 이들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젊은이들은 건설적인 어젠다를 제안하고 지도자들은 이를 수락하고 추진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양국의 역사학자, 지리학자, 교사 등 20명으로 구성된 편찬위원회가 구성되었고, 2006년 첫 번째 교과서 '1945년 이후 유럽과 세계'가 출간되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양국 교과서 편찬위원들은 치밀한 논의와 신중한 용어 선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줬으며, 양국 편찬위원이 합의되지 않은 의견은 있는 그대로 병기해 학생들이 다른 측면에서의 시각을 알도록 했다는 점이다. 


    양국 편찬위원의 역사 인식이 다른 내용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양국 편찬위원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역할에 대해 인식차를 드러냈다. 프랑스 측은 미국과 거리를 두는 정책을 폈던 샤를 드골(임기 1959~1969) 전 대통령의 영향으로 미국의 역할을 별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패권주의로 평가했다. 반면 독일 측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유럽에 대한 지원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양측은 교과서에 다른 역사 인식을 있는 그대로 밝혔다. 또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편찬위원들은 두 나라에 상처를 주었던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노력했다는 점이다. 양국의 관계를 대립과 갈등의 측면에서 바라봤던 과거의 사관에서 벗어나 평화와 협력의 관계도 많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편찬위원인 호르스트 뮐러 뮌헨대 교수는 "서로 차이를 비교할 수 있게 한 이런 형식은 역사교육 방법 측면에서는 물론 서로 다른 역사인식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라고 주장했다(유권하 2006).


    21세기 들어 역사분쟁을 끝내고 공존을 모색하는 방법으로 국가 간에 공동 역사서 간행이 부쩍 들고 있다. 2003년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공동 역사서'를 간행했고, 유럽에서 역사분쟁을 겪고 있는 국가들 간에 공동 역사서 간행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2016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해국인 독일과 피해국 폴란드가 양국 공동 역사교과서를 간행하고 중학교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다. 양국은 지난 2008년부터 공동 교과서 제작을 진행해왔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가해국 독일의 자세이다. 독일은 민족주의적 자만과 제국주의적 침탈로 여러 국가에 큰 피해를 주는 오점을 남겼으나 역사 분쟁이 아니라 역사 화해의 길을 과감히 추진해 나가고 있다(황인규 2014). 가해국이 피해국에 먼저 용서를 구하고 화해와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공동 역사교과서 간행 소식을 들으면서 한··일 역사논쟁에 생각이 미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일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동아시아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일본의 역사인식에 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의 고대 지방민족 정권으로 간주하고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고대사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역사관이다.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기는커녕 최근에는 강제 징용과 종군 위안부, 그리고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을 왜곡하여 교과서를 편찬하였다. ··일 세 국가는 역사 논쟁에 휘말려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의 발목에 잡힌 꼴이다. 역사논쟁의 시빗거리를 만든 쪽은 과거 역사에서 가해자 쪽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삼국의 역사 논쟁이 장기화되고 선린우호관계가 망가지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에서 화해와 공존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프랑스와 독일이 만든 공동 역사교과서를 보면서 ··일 역시 대타협으로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의 신기원을 열어가지 못하란 법은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국과 일본은 최대 가해국이다. 중국과 일본은 유럽의 최대 가해국 독일이 피해국에 사죄하고 화합과 공존으로 나아가자고 손을 내밀었을 때 분쟁의 역사에서 미래의 역사로 탈바꿈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일간에도 프랑스와 독일과 유사한 엘리제 조약이 있었다. 1998년 10월 8일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임기 1998~2003)과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총리(小渕恵三·임기 1998~2000)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양국 정상은 한·일 양국이 21세기의 확고한 선린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 11개 항에 합의하고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특히 선언문에는 한·일간의 교류 확대와 상호 이해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중·고생 교류사업의 신설을 비롯하여 정부 간의 유학생 및 청소년 교류 사업의 내실화를 기하는 동시에 양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취업관광사증제도를 1999년 4월부터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양국 정상은 재일 한국인이 한·일 양국 국민의 상호교류·상호이해를 위한 가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인식에 입각하여 그 지위의 향상을 위해 양국 간 협의를 계속해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양국 정상은 한·일 포럼 및 역사 공동연구의 촉진에 관한 한·일 공동위원회 등 관계자에 의한 한·일간 지적 교류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이러한 노력을 계속 지지해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 1998 참조). 한국과 일본에도 미래지향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 선언은 선언으로 그치고 말았다. 한·일 지도자들은 미래의 젊은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현재와 같이 얼어붙어 있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럽의 적성국에서 선린 우호국으로 바뀐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처럼  한·일간에도 새로운 전기를 기대해본다. 


오창룡. (2022). "프랑스-독일 화해협력의 제도화: 엘리제 조약에서 아헨 조약으로". EU 연구 61권.

주경철. (2007). 숙적에서 동반자로 :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적 화해. 한국연구재단.

황인규. (2014). "세계의 공동 역사교과서와 공동 역사서의 편찬과 간행 -현황과 실태, 그 의의를 중심으로-". 역사와 교육 19집.

유권하. (2006). 《중앙일보》. <독일·프랑스 공동 역사교과서 분석>. 7월 9일.

정지섭. (2016). 《조선일보》<獨·폴란드, 공동 역사 교과서 나왔다>. 6월 23일.

채인택. (2022). 《중앙일보》. <독일·프랑스 전쟁 앙금 씻은 학생 교류, 한·일에도 통할까>. 3월 16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1998).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10월 12일.

작가의 이전글 일본의 역사왜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