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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02. 2022

평균의 허상

교육의 새로운 지향점

   중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아이큐 검사를 받았을 것이다. 아이큐 검사가 끝나면 교실에서는 누가 아이큐가 높고 누군 낮더라는 말이 들렸다. 아이큐가 높다는 소문이 난 친구의 학업성적은 비교적 좋은 편이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이큐는 좋은 데 학업성적은 별로인 친구도 있었다. 아이큐가 좋은 학생이 공부하는 자세도 성실하면 최상의 공부 조합일 것이다. 당시에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곧 아이큐가 높다는 인식이 강했다. 


   사실 아이큐 검사는 언어영역, 수리영역, 공간영역 등 몇 가지 영역에서 검사를 한 결과다. 검사 결과를 통해 개인의 추상적 사고력, 판단력, 추리력, 학습 능력, 순발력, 문제 해결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아이큐가 높은 친구들은 국영수 과목을 잘했다. 학교에서 부여하는 성적 중 국영수 과목의 비중이 가장 높다 보니 아이큐가 높은 친구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학교는 예체능에 소질이 있는 친구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학 입학시험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예체능을 지원하려면 별도로 학원을 다니면서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했다. 그런 친구들은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교실에는 다양한 재능을 소유한 친구들이 앉아있었지만 교사는 대학입시와 직접 관련되는 과목에 매달렸다. 특히 인문계 학교는 대학 진학이라는 획일적인 교육목표를 설정한 뒤 학생들이 따라오도록 했다. 


   이왕 학교 성적 이야기가 나왔는데 체벌 이야기를 빼놓으면 '팥소 없는 찐빵' 같을 것이다. 학교에서 교사의 체벌이 자유롭던 시절의 이야기다. 시험이 끝나면 교실마다 매타작으로 곡소리가 난다. 학생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매를 맞는다. 첫째는 교과목 교사가 학생 개개인에게 매를 때렸다. 두 번째는 담임교사가 반 전체 학생들에게 매를 들었다. 교과목 교사나 담임교사가 매를 드는 기준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 기준은 이전 성적보다 뒤떨어지면 매를 때렸다. 또 다른 기준은 과목별 점수에서 평균에 미달한 학생은 매를 맞았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시험 종료 후에 매를 맞지 않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교사는 마치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더 높은 점수를 올리고 더 빨리 배우고 친구들을 경쟁에서 더 멀리 따돌릴 것을 요구했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는 올림픽 경기의 구호가 아니던가. 학교는 공장이고 교장이 사장이라면 교사는 공장장에 해당했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고 제품 출하량을 맞추는 것처럼 획일적으로 설정된 교육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교사에게 매를 맞는데 가장 억울하게 생각되는 것은 평균 미달로 매를 맞는 것이다. 집단 성적에 개인의 성적을 맞추는 것이다. 상대평가의 함정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시험을 잘 보았어도 다른 친구들이 시험을 더 잘 보았다면 매를 피할 수 없었다. 만약 교사가 어떤 교과목에서 어떤 분야는 잘하고 어떤 분야는 보완을 해야 한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교육 방식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평균에 매몰되어 평균 이하의 학생은 훈육의 대상이었다. 교사와 학교는 학생을 개개인으로서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생각하지 않았고 설령 개개인의 가치를 드러내는 학생이 있다면 짓눌러 집단 분위기에 맞추도록 강제했다. 


  체벌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해두자.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교육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인가? 학교현장에서 평균 이상의 성적을 거둔 학생이 매를 피했던 것처럼  평균 이상의 인간을 목표로 하는가? 도대체 평균 이상의 인간은 어떤 인간이란 말인가? 학교는 평균 이상의 표준화된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는가? 단독 직입적으로 말하면 우리 교육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평균주의에 기반한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평균적인 능력을 지닌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다(로드 2018). 평균적인 능력의 소유자는 산업시대에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는 숙련공을 연상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다차원적이고 복잡한 내면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공장에서 규격 상품을 찍어내는 것 하고는 달라야 한다. 우리들은 누군가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3차원적이라고 말한다. 3차원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인간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거나 창의적인 사람일지 모른다. 체제 순응적이고 규범적인 사고체계에서는 창의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교육이 평균적인 인재상을 지향하는 한 창의적 사고가 억압받고 상상력의 날개는 꺾이게 될 것이다. 


  하바드대학의 로즈 교수는 아이큐의 들쭉날쭉한 측면을 실증적으로 제시하여 평균주의의 문제를 부각했다. 똑같은 아이큐를 가진 학생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A학생은 공통점 찾기, 어휘력, 행렬 추리 등에서는 평균 이하였지만, 블록 짜기, 퍼즐, 상징 기호 찾기 등에서는 평균 이상을 나타냈다. B학생은 블록 짜기, 퍼즐, 숫자 암기 등에서는 평균 이하였지만, 공통점 찾기, 지식의 측면에서는 평균 이상을 나타냈다. 아이큐가 같지만 특정 영역에 따라 평균 이하가 되기도 하고 평균 이상을 나타내기도 했다(로드 2018). 이 두 학생을 평균으로 따지면 각자의 특성들을 무시하고 잠재력을 키워주지 못한다. 우리는 인간의 능력을 단일차원이 아닌 다차원적인 측면에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은 아이큐라는 단일 능력에 의존하는 학교교육에 인간 재능의 다차원적인 측면을 설명하는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 가드너는 아이큐에 매몰된 근대 이후 교육철학과 교육방식에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가드너는 전통적인 아이큐 검사가 지능을 단일 능력 요인으로 파악하여 언어적 능력과 논리-수학적 능력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능이란 문제 해결 능력 또는 특정 문화상황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정의하면서 문화와 상황에 따라 다른 지능이 요구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간의 지능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상호 작용하면서 여덟 가지 유형을 다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덟 가지 지능은 언어 지능, 논리 수학 지능, 공간 지능, 신체 운동 지능, 음악 지능, 자기 성찰 지능, 자연친화 지능, 인간친화 지능이다(가드너 2007). 저자도 호기심 삼아 다중지능검사(http://multiiqtest.com)에 참여했다. 총 8가지 영역에 걸쳐 56문항으로 구성된 검사지는 5지 선다형으로 참여자가 표기한 결과물을 제출하면 바로 순위를 알려준다. 저자의 경우에는 언어지능, 인간친화 지능, 자기 성찰 지능, 공간지능, 신체운동 지능, 논리수학 지능, 자연친화 지능, 음악지능 순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에 대체로 수긍한다.  


  이제 우리의 교육도 아이큐와 평균주의의 허상에서 벗어나 개별 학생의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생의 다중지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는 학생 개개인이 지닌 지능의 특성을 고려하여 일차원 측면의 지능에서 다차원 측면의 지능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논리수학 지능이 높지 않은 학생이 신체운동 지능이나 음악지능이 높을 수 있다. 교사가 학생의 내면에 숨어 있는 잠재력을 발견하는 안목과 학생의 능동적인 학습을 도와주는 협력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학생이 자신의 특성에 맞춰 공부할 수 있다면 학업 동기와 효과는 올라가고 학교 생활은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또한 학교교육에서도 AI와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학생 개개인의 목표와능력을 고려한 최적의 학습을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윤석만 2021).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교육이야말로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지향점으로 생각한다. 최근 교육현장에서 '맞춤형 교육'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때 맞춤형교육은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교육이 아니라 고등학교 또는 대학 진학 시험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짰다는 것을 의미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맞춤형 교육이란 학생 개개인이 지닌 다차원적인 지능의 특성을 살린 교육과정을 의미한다. 아예 토드 로즈 교수는 융합학문으로서 '개개인학(science of the individual)'을 제시하였다. 개개인학은 학교교육이 주안점을 두었던 평균주의에서 벗어나 개개인성에 초점을 맞춰 학생 개인이 가진 특성을 발굴하여 지도하는 것이다. 과거의 타성에 젖은 교육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기대해본다. 

  

가드너, 하워드. (2007). 《다중지능》. 문용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로즈. 토드. (2018). 《평균의 종말》. 21세기북스.

윤석만. (2021). 《중앙일보》. 〈학교는 19세기, 학생은 21세기...AI 맞춤형 학습하자〉. 11월 3일.

유홍림. (2021). 《중앙일보》. 〈타성에 젖은 한국 대학 일깨우는 미네르바 대학〉.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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