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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03. 2022

기후변화,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① 꿀벌의 실종

  생전의 부모님은 텃밭 담장 아래에 벌통을 놓고 한봉을 쳤다. 산 아래에 터를 잡은 고향 집은 벌을 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한봉은 한 곳에서 꿀벌을 치고 첫서리가 내릴 때 채밀(採蜜)을 한다. 반면 양봉은 철 따라 꽃 따라 이동하며 기른다. 유채, 아카시아, 밤, 싸리 등의 꽃이 피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여러 차례 꿀을 얻는다. 한봉이 정주민이라면 양봉은 유목민에 가깝다. 생산성 측면에서 한봉은 양봉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부모님이 채밀을 하면서 진한 꿀을 입에 넣어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위장이 쓰리다고 하면 약효가 있다며 되레 좋아하셨다. 벌집을 가득 채운 꿀이 꿀단지에 뚝뚝 떨어지는 모습은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채밀한 꿀은 일 년 내내 가족의 건강을 위해 중요한 식량이 되었다. 벌통은 외부 침입자들에게 시달렸다. 그들은 벌통 속으로 침입하여 수많은 꿀벌들을 물어 죽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작은 벌통 속에서도 먹이사슬과 적자생존의 원칙이 벌어진다. 벌통 옆에 파리채를 들고 앉아 호박벌이며 말벌 등의 이방인들로부터 한봉을 지키는 보초를 선 적도 많았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Earth Watch'는 지구 상에서 절대 사라져서는 안 될 다섯 가지 생명체로 꿀벌, 플랑크톤, 박쥐, 균류, 영장류를 꼽았는데 그중에 꿀벌이 1위로 뽑혔다. 과학계에서는 "지구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도 사라진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꿀벌은 중요하다. 인간이 재배하는 1,500종의 작물 중 약 40%는 곤충을 통한 꽃가루받이가 이뤄지는데, 그중 꿀벌이 80%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하니 그런 평가를 받을만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종의 주요 농작물 중 수박, 호박, 양파, 아몬드, 사과 등 71종이 꿀벌의 꽃가루받이로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김형자 2022). 전 세계 식량 작물 4종 중 3종은 벌과 같은 꽃가루 매개 생물에 의존한다. 꿀벌은 지구 상의 최대의 꽃가루 매개자로서 인류 생명의 유지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 곳곳에서 꿀벌들이 집단으로 실종되는 사건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는 2010년대 들어 꿀벌의 30~40%가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2일 기준 전국 227만 6593개 벌통 중 39만 517개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꿀벌이 월동에 들어갈 무렵 벌통 안에 사는 꿀벌의 개체수는 대략 1만 5000마리 정도라고 하니 전국에서만 약 60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졌다(조승한 2022). 


  꿀벌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미국에서는 2006년 꿀벌 집단이 갑자기 실종되는 ‘군집 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을 보고됐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응애류(0.2∼0.8mm의 아주 작은 거미류의 해충으로 농작물이나 가축에 기생하여 사막·툰드라·고산·동굴·온천·바다밑 등 거의 모든 환경에 걸쳐 서식한다. 현재까지 3만 종 이상이 알려져 있지만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종이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와 같은 해충, 농약, 새로운 병원균, 기후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했다. 우리나라 농업진흥청이 2021년 1월과 2월 전국 양봉농가 99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꿀벌 실종은 꿀벌응애류 발생과 말벌류에 의한 폐사, 기후변화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 이유로 8월까지 꿀 생산이 이어지면서 이 시기 늘어나는 기생성 해충 응애류가 거의 대부분 피해를 본 벌통에서 발견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응애를 막기 위해 약제를 많이 뿌리면서 월동 전 꿀벌 발육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기후변화는 꿀벌의 생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9~10월의 저온현상과 11~12월의 고온현상이 생기면 일벌들은 사냥을 나갈 정도로 발육이 되지 않은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되면 월동 중이던 늙은 일벌들이 일찍 핀 꽃의 화분을 찾아 사냥을 나갔다 벌통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김민제 2002). 꿀벌에게는 내우외환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셈이다. 벌통에는 꿀벌의 생태계를 해치는 병원균이 득실거리고 인간은 이를 퇴치하기 위해 치사량에 가까운 살충제를 살포한다. 또 기후변화로 벌이 한참 월동을 하면서 체력을 키워야 할 때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꿀벌이 버틸 수 있는 임계치를 넘어섰다.  


  미국과 유럽 등 꿀벌 피해를 크게 본 지역에서는 꿀벌을 살리기 위한 노력들이 분주하다. 영국에서는 꿀벌 친화적 통로인 'B-라인'을 만들어 야생화가 서식하거나 잠재적으로 서식할 만한 곳을 지도로 만들었다. 이 지역은 야생 당근과 미나리과 식물을 포함해 야생화 서식 장소로 탈바꿈시켜 꿀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20만 그루의 해바라기를 심어 벌이 쉴 수 있는 벌집을 마련했다. 해바라기는 번식력이 강하고 꿀이 많아 최적의 벌의 서식처라고 한다. 유럽연합은 꿀벌을 죽이는 살충제 네오니코티노이드 사용을 금지했다(고은경 2020). 최근에는 IT를 이용하여 전 세계에 5만 개의 지능형 벌통을 구축하고 기업과 협력하여 클라우드 컴퓨팅 방식으로 벌집의 온도, 습도 등 환경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조승한 2022).


  유엔은 2017년 5월 20일을 ‘세계 꿀벌의 날(World Bee Day)’로 지정했다. 지구촌 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인간 생명의 지킴이로서 꿀벌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흥미로운 점은 인구 200만 명의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가 이 꿀벌의 날을 제안했는데, 슬로베니아는 전 국민의 0.5%인 10,000여 명이 양봉업에 종사하는 유럽에서 가장 큰 양봉 국가라고 한다. 5월 20일로 정한 것도 슬로베니아의 저명한 양봉가인 안톤 얀사(1734~1773)의 생일날을 기린 것이다(김경태 2021). 


  오늘날 세계는 벌집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은 인터넷과 인터넷의 인공적인 연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연결의 본질은 자연 생태계와 인간 생태계 간의 연결이다. 꿀벌 생태계가 망가져 소멸되면 인간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꿀벌의 실종을 분석한 과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결국 기후변화가 근인(近因)으로 꼽히고 있다. 기후변화로 꿀벌이 실종되는 환경에서는 인간도 살기 어렵다. 꿀벌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다. 지금 그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따사로운 햇볕이 연구실의 유리창을 비추고 건너편 산에서는 매화,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등의 꽃들이 만개하여 꿀벌들을 유혹하고 있다. 창밖에서 벌들이 윙윙 소리를 낸다. 평소 같으면 벌 소리에 위협을 느꼈을 것이지만 이번에는 반가운 마음이 든다. 기후변화로 충분한 월동 기간을 보내지 못하고 일찍 화분 사냥을 나온 꿀벌이 아니길 바란다. 산과 들에 꽃이 만개하는 봄날 벌의 존재가 강렬하게 와닿는 것은 저자만이 아닐 것이다. 


고은경. (2020).《한국일보》.〈전 세계는 지금 멸종위기 '꿀벌' 구하기 나섰다〉. 7월 19일.

김경태. (2021).《농수축산신문》.〈세계 꿀벌의 날을 맞이하여. 5월 18일. 

김민제. (2022).《한겨레》.〈꿀벌 60억 마리가 갑자기 사라졌다. 왜〉. 3월 15일.

김형자. (2022).《조선일보》.〈꿀벌 사라지면 수박, 호박, 아몬드 못 먹을 수도 있어요〉. 3월 29일.

김한솔. (2022).《경향신문》.〈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을까…2022년 꿀벌 실종 사건의 전말〉. 3월 31일.

조승한. (2022).《동아사이언스》.〈세계 곳곳서 보고되는 꿀벌 집단 실종 사건... 식량위기 생태계 붕괴 신호탄되나〉.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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