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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May 10. 2022

교황 프란치스코

예수님의 언어를 말하고 실천하는 자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놓고 교계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의 수장으로서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재위 2013~)는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재위 2009~)에게 "푸틴의 복사(復事) 노릇이나 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지 말라"라고 경고했다. 복사는 천주교 예배 의식에서 사제의 미사 집전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교황은 키릴 총대주교에게 침략자 푸틴 대통령의 종노릇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이 세상에 누가 이처럼 대범한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교황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교황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키릴 총대주교는 동방 정교회에서 최대 교세를 자랑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이지만,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키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원래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를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발언을 했다. 또한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옛 소련의 영토를 회복하려는 푸틴의 계획을 찬성하고 푸틴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종교의 정치 예속화다. 종교가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서방에서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하여 기관과 개인을 제재하는 가운데 키릴 대주교를 제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이 반인류적인 침략자와 범법자에 대해 경제적 제재를 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국제적 규범이지만, 종교 수장에게 제재를 한다는 소식은 금시초문이다. 그만큼 키릴 총대주교가 러시아 정교회의 리더로서 세계 평화와 안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할 것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키릴 총대주교에게 "형제여, 우리는 국가가 임명한 성직자도 아니고 예수의 언어가 아닌 정치의 말을 사용하면 안 되오. 우리 모두는 신의 성직자"라고 말한 대목이다. '예수님의 언어'. 저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예수님의 언어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과 용서의 언어다. 평안과 평화의 언어다. 돌봄과 배려의 언어가 아니던가. '언어'라는 말 앞에서 화자(話者)를 수식어로 붙여놓으니 언어에 대해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물론 예수님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말의 무게는 달라질 것이다. 저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야말로 '예수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누구에게나 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빈자의 대변인', '거리의 교황'으로 불리는 성직자가 아니던가. 교황은 낮은 곳에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사랑의 사랑을 실천했다. 그는 수많은 어록을 만든 어록 제조기로 불릴 정도로 영성이 빚어낸 언어를 사용하였다. 어록이란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현자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어록을 보면 흙냄새가 되고 된장찌개처럼 구수하고 쉽게 와닿는다. 저자에게 가장 감동적인 어록은 교황이 2013년 즉위한 뒤 즉위 축하 미사를 앞두고 한 말이다. "비싼 경비를 들여 로마까지 올 필요가 없다고 주교들과 신도들에게 말해주시오. 그 대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자선단체에 기부해 달라고 전해주시오." 저자는 역대 교황 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가장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그는 자유와 평화를 누구나 사랑하고 인간의 기본권 신장을 위해 기도하는 영적 지도자이다. 그는 독재를 비판하고 전쟁을 규탄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모든 악에 저항하고 이를 물리칠 용기를 갖도록 고무시킨다. 미국 민주주의를 3류 소설로 떨어뜨린 트럼프도 교황만큼은 어려워했다. 교황이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에게 정치의 언어가 아닌 예수님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경고한 것도 우발적인 대화가 아니다. 이는 평소 교황의 모습 그대로이다. 


교황은 기자회견이나 대중 연설을 할 때 특정한 편을 가르거나 등급을 매기 않는다고 한다.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 선과 악, 동과 서, 신앙인과 무신론자를 구분하는 법이 없다. 진영을 갈라 이쪽과 저쪽 간에 싸움을 붙이지 않는다. 교황의 이러한 처신과 행동은 "군자는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 무리를 짓지 아니하고, 소인은 무인을 지어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공자의 군자론과 맥을 함께 한다(이기주, 2017). 교황이 교도소에 복역 중인 수형자와 무슬림의 발을 씻겨주고 입맞춤을 했다. 교황은 세상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경제적 지위, 남성과 여성, 계층, 부자와 빈자, 종교와 종파, 신분에 대한 구분이 없으며 오로지 예수의 사랑과 용서로서 사람들을 대하고 있음을 잘 나타낸다. 물론 역대 교황들도 세족식을 거행했는데 가톨릭 신자에 국한하여 발을 씻겨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과 행동이 파격적인가? 교황의 생각과 행동이 파격이라기보다는 파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편향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교황의 생각과 행동은 전 인류의 영적 지도자로서 마땅한 일이라고 본다. 교황은 한쪽 진영이나 세력 또는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행동하는 큰 군자요, 큰 사랑의 실천자라고 생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으로 즉위하기 전의 이름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Jorge Mario Bergoglio)이었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본래 교황 자리에 욕심이 없었다. 그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의 대주교를 역임하고 있던 2005년 4월 요한 바오르 2세가 서거함에 따라 새 교황 선출을 위해 바티칸 시국에 소환되었다. 세 차례에 걸친 콘클라베에서 독일계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1927~)이 선출되어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된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뜻밖에도 2위를 차지했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2013년 3월베네딕토 16세가 직무수행의 어려움을 이유로 스스로 물러나면서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뒤 자신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과거의 사례로 볼 때 선출된 교황 대부분은 예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본땄지만, 그는 프란치스코 수도자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평생을 가난한 자, 병든 자들과 함께 하고 무소유를 실천하며 묵묵히 수도한 성 프란치스코를 본받겠다는 뜻이었다. 교황은 낮은 곳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즉위할 때의 약속을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다. 그는 장애인을 만나서는 차에서 내려 입을 맞추고, 전용차를 마다하고 버스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추기경 시절에도 그는 버스 등을 이용해 출퇴근했다고 한다. 교황은 바티칸의 카사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는데, 사제가 공동생활을 하는 기숙사다. 그가 묵는 201호엔 나무로 짠 침대와 작은 책상, 소형 냉장고 등을 갖춘 방 2개가 있다. 교황은 공동식당에서 사제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게스트하우스의 성당에서 미사를 올린다(안수찬, 2013). 


프란치스코 교황의 소탈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랑의 표현은 깊은 울림을 준다. 중세에는 비판적인 정치적 레토릭으로 교황은 해(日)로, 황제는 달(月)로 비유한 적이 있다. 저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류의 해가 되어 곳곳에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의 햇볕을 비추면 좋겠다.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기 전에 한 명의 성직자로서 그의 진실됨과 순수한 인류애를 닮고 싶은 것은 저자만이 아닐 것이다. 인류는 전쟁, 핵개발 경쟁, 기후변화, 불평등, 자원 민족주의 등 대위기에 직면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언어를 말하고 실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영적 지도자를 둔 것에 위로가 된다. 그는 인류의 소금이며 희망의 빛이다. 말(언어)이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진영을 나누고 모든 것을 이분법으로 갈라치는 날선 칼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예수님의 언어'는 치유와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면서 우리나라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이 그리운 것은 저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기주. (2016).《언어의 온도》. 말글터.

이기주. (2017). 《말의 품격》. 황소북스.

테일러, 마크. (2022). 《침묵을 보다》. 임상훈 옮김. 예문아카이브.

강종훈. (2022).《연합뉴스》.  <러 정교회, 교황에 "키릴 총대주교 관련 발언, 대화에 무익" 반발>. 5월 4일. 

강혜진. (2022). 《크리스쳔투데이》. <‘푸틴 지지’ 키릴 총대주교 때문에… 세계정교회 분열 조짐>. 3월 16일.

《바티칸 뉴스》. (2022). <교황, 러 정교회 수장 키릴 총대주교 통화 "교회는 정치 언어 아닌 예수님 언어 사용해야>. 3월 16일.

안수찬. (2013). 《한겨레》. <낮은 곳에 임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무슬림·여성 등에 사상 첫 ‘세족식’>. 3월 29일.

이철민.(2022).《조선일보》. <교황,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에게 "푸틴의 행동을 따르지 말라" 경고>. 5월 6일.

《두 교황》. (2019).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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