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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Jun 10. 2022

교학상장(敎學相長)

우리는 누군가의 스승이자  제자다

   2022년 6월 8일, 국민대표 MC로 불리던 송해 씨(본명 송복희)가 향년 95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61세 되던 1988년부터 KBS 예능프로그램 '전국 노래자랑'에서 34년 동안 사회자로 활약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요일에는 여지없이 등장하여 국민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선사한 '일요일의 상남자'였고 '전 국민의 오빠'였다.  '최고령 텔레비전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진기록도 세웠다. 한 개인에 대한 진솔한 평가는 그가 죽은 다음에 나온다. 송해는 그런 점에서 성공한 삶을 살았다. 동료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가 남긴 유산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고인은 방송대본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수십 장의 대본을 미리 외워두었다. 머릿속에 넣어 둔 대본을 토대로 방송 출연자와 지역 상황에 따라 흥(興)과 끼를 발휘했다. 마치 시험공부를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수험생이 누리는 여유랄까. 그런 여유가 있으니 전국 노래자랑에 출연하는 아마추어 가수들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는 맞춤형 MC로 장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송해 인생 티비'에서는 이런 말을 남겼다. "만 세 살부터 백열다섯 살 되시는 분까지 만나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정말 배우는 게 많아요. 이 순간에도 제 이야기를 경청하시는 분들이 저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거예요." 그는 교학상장의 철학을 실천한 전형적인 평생학습자였다.

  또 그의 인생철학이 녹아있는 일화가 있다. 일요일마다 방송된 전국노래자랑에서 합격하면 '딩동댕'을 치고 떨어지면 '땡'을 쳤는데, 땡을 받은 출연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땡, 땡, 땡 세 개 합치면 딩동댕 아니겠소. 우리 인생도 그런 거야." 인생도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끈기 있게 물고 늘어지면 언젠가 성공한다는 말이었다(최보윤, 2022). 한 마디로 인생에서 "'땡'을 받아보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른다"라는 말이다(강혜란, 2022). 인생이란 처음부터 탄탄대로가 아니며 피와 눈물이 켜켜이 쌓여 그 길을 낸다는 말일 것이다. 말은 화자의 삶과 공명하는 법이다. 한 세기 가까이 살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고인의 말이기에 설득력이 더 있다.  

  그래서인지  트로트 문화가 엄숙주의를 거부하는 '통속의 미학'을 특징으로 한다고 보았을 때, 고인은 방방곡곡의 서민들과 어우러져 함께 웃고 울면서 트로트의 미학을 잘 구현했다(장유정, 2022 재인용)라는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한 저자는 고인이 우리 사회의 연장자로서 교학상장의 본보기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고인의 후배 방송인과 예술인들이 남긴 추모글을 읽어보면 고인은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한 것으로 생각된다. 뽀빠이 이상용에게 "상용아, 우리 둘이는 절대 크지 말고 이대로 있자. 크면 가치가 떨어진다. 우리가 키 큰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 머리로 이기자"라고 말했다. 뽀빠이는 고인이 신문을 꼼꼼히 읽고 책을 놓치 않는 것을 본 다음부터 그 역시 책과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이상용, 2022). 저자는 고인이 희극인 답게 코믹하게 표현한 '절대 크지 말자'라는 말에는 좀 성공하고 인기를 누린다고 해서 '절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자'라는 말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해본다. 그가 끊임 없이 배우는 자세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쌓여 그를 국민 MC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그는 끊임없이 경청하고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의 연륜과 경륜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할 말이 많을 수 있겠지만, 그는 항상 경청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가 세계에서 최고령의 텔레비전 방송 사회자로 기네스북에 오른 데는 자신을 낮추고 부단히 배우려는 자세에서 나왔을 것이다.《송해 평전_나는 딴따라다》를 집필한 오민석에 따르면,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오르기 전 해당 지역의 목욕탕에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시장을 돌며 지역 분위기를 파악한 뒤에 무대에 섰다고 한다.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알았을 때 무대에 섰을 때 출연자들과 더 가깝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채태병, 2022). 고인은 평양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월남한 실향민으로 극단에 데뷔하여 가수, 코미디언을 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버라이어티 쇼 사회자로 '전국노래자랑'에서 국민 MC로 인정받은 데에는 그의 경청하고 배우려는 노력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송해는 전 국민의 MC이기 전에 모범적인 학습자였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국민 MC 송해의 일대기를 보면서 교학상장(敎學相長)을 떠올리게 된다. “좋은 안주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고, 참된 진리도 배우지 않으면 그 장점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배운 뒤에야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후에야 비로소 어려움을 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스스로 반성하고, 어려움을 알아야 스스로 보강할 수 있다. 교학상장은  배우고 가르치면서 서로가 성장한다는 뜻이다. 학문이 아무리 깊어도 가르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배우는 것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효학반(斅學半)도 교학상장과 뜻을 같이 한다. 효학반은 "가르치는 것은 배움의 절반이다"라는 뜻이다(신동열, 2022).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스승이면서 누군가의 제자라고 말하는 이유다.

  저자도 강의 시간에 '교학상장'을 반복하여 강조하다 보니 학생들이 '미스터 교학상장'으로 부른다. 졸업생이 목판에 새겨준 '교학상장'이라는 현판을 연구실에 걸어 놓았다. 성인 학습자들을 교육하는 사이버대학에서 저자가 가르칠 분야는 많지 않다. 성인 학습자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분들도 계시고 다양한 분야에서 저자보다 깊고 넓게 사회적 경험을 쌓았다는 점에서 그들을 상대로 가르친다는 것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아무리 학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제한된 분야와 협소한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 갔을 뿐이지 않겠는가. 그들 중에는 저자보다 가방끈이 더 긴 사람도 있고 연배도 높은 분들도 많다. 저자는 우리 대학의 성인 학습자들을 가르칠 때 늘 배운다는 자세로 임한다. 솔직함을 무기로 삼는다. 강의하다 모른 것이 있으면 모른다고 말하고, 나중에 공부해서 다시 알려준다. 성인 학습자들을 상대로 강의하는 대학 교수의 애로사항일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런 환경이 저자를 성숙하게 만드는 기회가 된다.

   국민 MC 송해를 통해 교학상장의 아름다운 삶의 철학을 되새겨본다. 고인은 100세 시대에 어떻게 자기를 관리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소중한 본보기가 되었다. 교학상장은 배움의 자세에 그치지 않고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지혜를 추구하는 자세와도 관련된 듯싶다. 영면에 들어간 고인이 하늘나라에서 "전국~ 노래자랑"이 아니라 "천국~ 노래자랑"에서 명 MC로 활약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그의 안식을 기원한다. 대체나 '전국'과 '천국'은 듣기에 따라 거의 구분하기 어려운 단어 같다. 고인은 생전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천국의 계단을 하나하나씩 쌓아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고인이 부재한 일요일의 허전함을 스스로 위로해본다.


오민석. (2015).《송해 평전_나는 딴따라다》. 스튜디오본프리.

강혜란. (2022). 《중앙일보》.〈전국노래자랑으로 국민MC... 그걸 시작한 것 61세였다〉. 6월 9일.

신동열. (2022). 《한국경제》.〈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敎學相長(교학상장)〉. 2월 14일.

이상용. (2022). 《조선일보》.〈국가 대표 MC 송해 형님... 오늘 國寶를 잃은 기분입니다〉. 6월 9일.

장유정.(2022). 조선일보. 영원한 '딴따라". 6월 16일.

채태병. (2022). 《머니투데이》.〈"앉으려면 저 뒤에" 공무원들에 호통... 송해가 강조한 '공평' 가치〉. 6월 14일.

최보윤. (2022). 《조선일보》.〈34년간 국민과 웃고 울어... 이젠 '천국~ 노래자랑' MC로'〉. 6월 9일.

〈송해 1927〉. (2021). 다큐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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