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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Jul 12. 2022

대통령의 말

말은 공명한다

  생물이나 무생물이나 격(格)이 있다. 사람의 격을 됨됨이라고 하고 인품이라고도 한다. 인품은 그 사람의 품격이고 수준이다. 인품의 총합이 곧 인격(人格)이다. 지구촌의 80억명이 넘는 인구가 있지만 각자 격이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말에도 격이 있는 법이다. 한자식으로 표현하면 언격(言格)이다.

  대통령은 행정부를 대표하는 선출직이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최상위 공직자의 자리에 있다. 국군을 통솔하는 군 통수권자 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그 자리가 가지는 권위와 권한만큼이나 책무감 또한 클 것이다. 미국의 해리 트루만 대통령(재임 1945~1953)은 집무 책상 위에 'The buck stops here'라고 쓰인 팻말을 놓고 일을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국정의 최종 책임을 지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곧 국가를 대표하고 그만큼 무게감이 실린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은 뭇사람들의 말하고는 엄연히 다르다. 대통령의 말은 실천을 전제로 하는 약속의 언어이고 약속어음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이 실행에 옮겨지지 않으면 부도를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도를 내면 신뢰 관계가 망가져 지속적인 거래를 할 수 없는 것처럼, 국민들은 부도낸 대통령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남아일언중천금'이라는 말이 있지만, '대통령일언중천금'이다. 

  저자는 세계의 대통령 중에서 미국의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재임 1981~1989)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재임 2009~2017),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재임 1940~1945/ 1951~1955),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재임 1994~1999)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여기에서는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레이건은 대통령으로서 미국이 처한 어려운 국내외 상황 속에서도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무엇보다 그가 사용하는 말은 품위를 갖추었으며 희망을 담은 미래지향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레이건 시절 미국 경제는 침체를 겪었고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모두 쌍둥이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레이건은 대통령으로서 품위와 미국과 미국인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그의 말을 듣는 국민들은 웃었고 뭔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레이건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레이건 이래 지도자의 자격 조건으로 유머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레이건이 얼마나 유머러스한가에 대해서는 다음의 일화가 말해준다.

  1981년 레이건은 워싱턴 D.C. 에서 존 힝클리라는 25세 청년(2022년 6월, 41년 만에 자유 신분이 됨)으로부터 저격을 당했다. 총알은 70세 레이건의 심장을 살짝 비켜갔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레이건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손을 잡아주던 간호사에게 “혹시 낸시가 우리 사이를 눈치챘을까요?”라고 농을 건넸고, 황급히 도착한 낸시 여사에게 “여보, 내가 엎드려는 걸 깜빡했어”라고 말했다." 의사들이 총알을 빼내는 수술을 집도하려고 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공화당원이라고 얘기해주시구려.” 민주당원이었던 의사들도 "각하, 오늘만큼은 우리 모두 공화당원입니다." 위급한 상황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유머 있는 말로 긴장감을 해소하고 걱정하는 국민들을 안도시켰다. 레이건은 암살을 모면하고 생사의 기로에서 유머 있게 말을 한 덕분에  대통령직을 두 번하면서도 높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을 특별히 잘 살게 해 준 것도 아니지만, 미국인들은 레이건의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다. 국민은 대통령이 위기에 닦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저자는 2022년 5월 10일 임기를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 윤 대통령의 화법과 어투는 한마디로 직설적이고 정제되지 않았다. 좋게 생각하면 말하고 싶은 것을 있는 그대로 하는 솔직한 스타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크다. 대통령이 하는 말의 무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두 가지의 사례를 짚고 가보자.

  첫째, 2022년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경남 양산사저로 내려갔다. 일반 시민으로 돌아간 전직 대통령의 집 앞에서 반문(反文) 단체들이 연일 집회를 열고 확성기를 틀면서 욕설을 퍼붓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문 대통령 양산 사저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의에 “글쎄 뭐 다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느냐”라고 답변했다. 저자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육법전서로 공부하여 사법고시에 패스하고 그 법의 잣대를 들이대 법을 집행하는 검사 출신이라도 그렇지 그건 아니다 싶었다. 대통령의 말은 현직 검사가 이제 막 부임했을 때 하는 투의 말이었다. 누가 '법대로 하자'라는 생각을 못해서 질문을 했겠는가. 대통령은 국민의 입장을 헤아리며 입을 열어야 한다. 대통령의 말에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직 대통령을 특별히 배려하자는 뜻은 아니다. 현직 대통령이라면 전임 대통령이 겪는 고초에 대해 최소한 이런 식으로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도 문 대통령 내외분이 겪 고통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고 송구합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법에 따라 시위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선진 법치국가는 인간의 존엄을 앞에 놓지 법을 앞에 놓지는 않는다. 그럼 법, 법 타령을 하는 윤 대통령 가족들이 물의를 빚은 논란은 법대로 깨끗이 해명이 되었단 말인가. 성경에도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세상에 가장 하기 쉬운 말이면서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말은 '그래, 법대로 해보자'이다. 대통령의 말에는 전체 국민을 아우르는 통합의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이유다.

  둘째, 김영삼 대통령은 '인사는 만사다'라는 철학을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기억한다. 조그만 조직에서도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법이다. 하물며 국정을 담당하는 인재를 찾아 기용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찾아 삼고초려했듯이 필요하면 사고초려라도 해야 할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역량은 인사에서 갈리게 된다. 정파나 진영에 국한하여 인재를 찾으려고 하면 인재풀이 한정되어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재를 찾을 수 없을뿐더러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놓으면 창의적인 생각이 모아질 리가 없다. 생물이 동종교배를 하다 보면 언젠가 소멸되고 만다는 것은 진화론의 제일 법칙에 해당한다. 조직이 발전하려이종교배를 시켜야 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혼혈파워라고 하지 않던가.

  다시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를 보자. 취임 초기 대통령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기용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급선무일 것이다. 대통령 혼자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들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을 기용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높다. 어떤 인사들을 기용하는가를 보면 앞으로 국정의 방향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사 문제는 대통령의 지지도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 윤 대통령은 ‘인사 실패’와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그럼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되물었다. 또 ‘인사에서 반복되는 문제는 사전에 충분히 검증이 가능했지 않았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다른 정권 때와 한번 비교를 해보라.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것을”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말이라고 믿기지가 않는다. 한마디로 하늘을 찌르는 억지성의 오만이다. 기자들이 질문의 대상으로 삼은 장관급 후보자들은 음주운전 경력에 성희롱을 한 명백한 팩트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발언을 해야 할 것이다. "도덕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능력 있는 인사를 찾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습니다. 검증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 문제가 생기고 국민들의 논높이에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국정을 책임지는 중요한 인사인만큼 조금 늦더라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여하튼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합니다." 대통령의 말은 모든 국민들이 듣고 평가한다. 윤 대통령에게는 겸손함이 묻어 있지 않고 국민들에 대한 오기로 가득하다. 말을 한다고 해서 다 말이 아닐 것이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윤 대통령의 말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윤 대통령 자신도 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가 아니던가.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개인이나 공인으로서 대통령도 실수할 수 있다. 문제는 실수 이후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위기리더십이 리더십의 본령이다. 

  사실 윤 대통령이 당선 이후  '협치'니 '통합'이니 하는 말을 수십 번도 더 강조하는 것을 보고 이번 내각은 좀 다르겠구나 하는기대를 했는데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는 장관급 이상의 후보들 중에는 적재적소의 능력 있는 인물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적임자도 있었지만, 많은 후보들은 국민의 눈에 식상한 인물들이었다. 대통령의 인력풀이 한정되어 있으면 야당과 전임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도 러브콜을 보내고, 필요하면 국민공모제 또는 추천제를 통해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여 삼고초려하려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을 보라. 그는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 등 다채로운 인종과 이력을 가진 사람들로 내각을 채웠다. 국정 운영을 해야 하는 고위공직자에겐 '능력'이 필요하지만, 그 능력은 매우 다중적인 요소이다. 능력이 해당 분야의 전문성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도덕성, 공감능력, 리더십, 유머감각, 국제감각, 추진력 등도 중요한 능력에 속한다. 전문성이 능력으로 둔갑하는 순간 우리 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정글의 경쟁사회가 되고 만다. 아무나 협치나 통합을 함부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감내하기 어려운 큰 말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면 국민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미국의 대통령은 거의 하루 걸러 대국민 브리핑을 하고 뉴스를 탄다. 부러운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국민들이 꼭 알아야 일들을 직접 보고하는 것은 이른바 보고 책임(accountability)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은 중요하고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이 직접 보고하는 것을 원하지 관련 장관이나 대변인이 대신 발표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제왕적이니 구중궁궐에서 숨어 보이지 않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모두 역대 대통령의 노력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군주제도 아니지 않은가.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에 대통령실을 마련하고 국민들과 적극 소통하기 위해 1층에 기자실을 설치하고 출근길에 이른바 도어스테핑을 한다. 도어스테핑이란 대통령이 출근길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약식 기자회견을 말한다. 의도야 신선하고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문제는 도어스테핑에서 나오는 대통령의 말이 국민들을 피곤하고 짜증 나게 한다는 것이다.  도어스테핑이 반복될수록 대통령의 말에서 오만과 독선의 결기를 보는 국민들은 채널을 돌리고 민심은 이반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반된 민심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로 나타나는데, 윤 대통령은 '지지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국민만 보고 일하겠다'라고 대꾸한다. 얼마나 모순적인 발언이 아니던가. 정치인 그것도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에 목숨이 달려있는 법이다. 지지은 대양에 떠있는 배를 떠받치고 있는 바닷물과 같다. 그 바닷물이 화가 나 출렁이고 큰 파도를 만들면 그 배는 뒤집이고 마는 것이다. 국민들은 대통령 특유의 관대함과 여유로움을 보고 싶은 것이다. 도어스테핑을 한다고 했으면 그것에 대한 준비가 철저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말한 뒤 가버리면 참모들은 그의 말을 수습하는 모습이란 꼴불견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아니면 참모들의 변명을 믿어야 하는가.

  프랑스 어느 카페의 메뉴판이다. 고객이 커피를 주문할 때 구사하는 말의 품격에 따라 커피의 가격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격언이 맞다. 사람은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이 하는 말은 말 값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특별히 대통령이 하는 말 값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 커피: 7유로

• 커피 주세요: 4.25유로

•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 1.40유로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며 마음에 주관이 없는 자는 말이 거칠다'라고 한다. 사람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화자의 내면의 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행위이다(이기주, 2018: 136-137).  마음이 심란하고 불안하면 아름다운 말이 나오기 어렵다. 반면 마음이 안정적이고 편안하면 아름다운 말이 나오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어록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난 말을 결코 가볍게 하지 않는다. 27년간의 옥살이가 내게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독의 침묵을 통해 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말이 얼마나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30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면서 깨달은 말이라고 하니 그 말의 중량감은 얼마나 무거운가.

  윤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더 활발하게 하기 위해 구중궁궐이라 원성을 받은 청와대를 국민의 품에 돌려주고 자신은 좁고 불편한 용산을 선택했다. 그것은 진심으로 국민을 중심에 두고 내린 용단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대통령이 그런 넓고 관대한 마음으로 소통을 이어나가길 기대하는 것은 저자만이 아닐 것이다. 말은 공명(共鳴)한다. 내뺕은 말은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이 세상에 가장 하기 쉬운 것이 말이지만, 아무런 말이나 쉽게 말해도 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품(品)은 입구(口)가 세 개다. 입에서 하는 말이 쌓이면 인품(人品)이 된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말이 국민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인구에 회자되는 말이었으면 좋겠다.



이기주. (2018 ). 말의 품격. 황소북스.

임재준. (2020). 중앙일보. 레이건 대통령이 보여준 VIP 환자의 품격. 1월 8일.

한경닷컴뉴스룸. (2013). 한경. '살아있는 성인' 넬슨 만델라, 수 많은 명언 남겨 .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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