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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Jul 09. 2022

농촌 출신이라고 농촌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농사도 과학이다

   농촌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농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도시 출신 학생들과 농촌으로 답사를 갈 때면 농촌 생활과 관련된 이모저모에 대해 아는 척을 많이 했다. 저자가 말하면 학생들도 딴지를 걸지 못했다. 도시 출신의 학생들은 저자의 말이나 설명에 뭔가 신빙성이 떨어진 것 같아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식이었다. 어깨너머로 보고 들었던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 아는 체를 한 것이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고향에서 며칠 시간을 보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과 샌프란시스코라는 말이 있다. 고향은 이해가 되는데, 샌프란시스코는 왜 등장하는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누구나 고향 얘기가 나오면 마음이 설레고 추억과 향수에 젖게 될 것이다. 저자가 느끼는 고향의 정경은 대강 이렇다. 이른 아침에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마당을 걷는 시간은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설레게 한다. 소나기가 내린 후 병풍처럼 두른 앞산에서 운무가 바람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추며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모습은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시간이다. 폭염경보가 내린 낮에 이마에서는 연신 땀이 흐르지만 산속 어디선가에서 뻐꾸기가 연신 뻐꾹뻐꾹 울어대면 작렬하는 태양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서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듯하다. 대지에 어둠이 깔리면 개천과 논밭에서 개구리의 개골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정겨운 합창 경연대회를 열 때,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는 축사의 소울음소리는 실로폰의 '딩동댕'으로 들린다. 하늘의 별들은 무대를 밝히는 조명이다. 고인이 되신 국민 MC 송해 씨가 사회를 보는 전국노래자랑이 연상된다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싶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연출하는 하모니가 스펙터클하다. 이렇게 하루를 보고 느끼며 보내노라면 저절로 한 시름을 놓아버리고 몸도 마음도 힐링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행복(에우다이모니아), 즉 '최상의 좋음'일 것이다.

 

  이렇게 농촌의 분위기와 정서에 흠뻑 취할 정도로 저자는 그동안 농촌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농촌에 대해 알고 있던 지식(?)들이 정확하지도 못하고 전후 맥락도 없는 허깨비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생겼다. 세 가지 경우를 들어보자. 농촌 마을에서는 어둑해지면 가로등이 켜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자의 집 근처에 있는 가로등은 소등이 되어 있었다. 점등이 되지 않으니 주변은 어두컴컴하여 무섭기도 하고 불안감과 함께 궁금증이 발동했다. 다음날 가로등을 관리하는 집으로 찾아가 밤중에 가로등이 켜지지 않는 이유를 여쭈었다. 주인은 친절하게 설명했다. 밤에 가로등이 켜지면 작물들이 열매를 맺지 않고 웃자라기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둡지만 작물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가로등을 소등한단다. 가로등 아래에는 주인이 가꾸는 텃밥에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저자는 얼굴이 빨개졌다. 명색이 농촌을 터전으로 삼아 꽤 오래 살았는데 작물 성장과 관련된 기본 원리도 몰랐다니. 부끄러워 '아, 그런 원리가 있었네요. 잘 배웠습니다'라고 말하고 집에 돌아가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

 

   가로등 아래 불빛은 밝기는 어느 정도일까? 30에서 50룩스로 가장 밝은 보름달의 밝기(0.3룩스)보다 10배나 훤하다고 한다. 밤중에 작물을 심어놓은 밭에 가로등을 비추면 그 작물은 키만 웃자란 채 결실을 못하고 만다고 한다. 작물을 잠 못 들게 하는 가로등 불빛은 작물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벼의 경우에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빛을 받게 되면 웃자라기만 할 뿐 열매를 맺지 못하고 영양 성장만 하게 된다. 연구에 따르면 정상적으로 자란 벼와 밤새 조명을 받은 벼는 이삭과 벼 알의 충실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수확이 늦은 만생종인 경우 가로등의 밝기가 10룩스 이상일 때 수확량은 15% 정도 감소한다. 가로등 불빛의 피해는 가로등 높이(10m 안팎), 전등의 밝기, 전등의 종류(형광등·백열등·LED)에 따라 다르다. 농작물의 종류와 생육단계에 따라서도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 농작물의 야간조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가로등의 각도 조절로 불빛 방향을 바꾸거나 등에 갓을 씌워 주변 농작물의 빛 쪼임을 막도록 한다. 재배작물은 조생품종을 선택하거나 중만생종은 가로등으로부터 20m 이상 떨어진 곳에 심는 것도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또 가능하면 고추나 토마토, 가지 등 불빛에 둔감한 농작물을 심는 것이 좋다고 한다(김철수, 2013). 빛에 민감한 작물이 있는가 하면 둔감한 작물도 있었다. 땅에서 열매를 맺는 작물들은 나름의 생체시계가 작동한다. 그 질서와 원리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또 있다. 저자가 어렸을 적 본 적이 없던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야간에 축사의 가림막이 붉은색 조명으로 바뀌었다. 축사와 관련하여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막연하기만 했다. 며칠 후 축사를 지나는 길에 그 이유를 물었다. 축사 주인은 빛의 파장을 이용하여 모기, 벌레 등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든 것이 과학이었다. 과거 저자가 어렸을 적에 경험했던 농촌에 대한 지식은 낡거나 불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농촌도 과학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생산하고 유통한다.


    더 부끄러웠던 것은 텃밭에 물주는 방식이었다. 저자는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철 날씨에는 텃밭의 작물들에게 수시로 자주 물을 주면 좋은 줄 알았다. 마치 한 더위에 갈증을 느낀 사람이 수시로 물을 마시듯이... 그래서 틈나는대로 텃밭에 물호스를 대놓고 물을 주었다. 이런 경우를 과유불급이라고 하던가. 이번에도 이웃집 아저씨의 노하를 전수받았다. 작물에게 물을 주는 것도 과학적 원리가 숨겨 있었다.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땅으로 뻗어나가지 못해 땅속으로 스며드는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물을 주는 타이밍도 중요했다. 작물이 광합성을 하려면 물, 햇빛, 이산화탄소가 필요한데 활발한 광합성을 위해서는 아침 일찍 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물을 주면 식물의 뿌리가 물을 흡수하기 시작하는데 이 때 자외선이 강한 오전 햇빛이 비치면 식물의 광합성은 활발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침에 물을 주는 타이밍을 놓쳤다면 해질 무렵에 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다음 날 오전에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시기와 상관없이 작물이 시들하면 바로 물을 주는 것은 인지상정에 따르면 될 것이다. 특히 한여름에는 낮 시간을 피해 물을 주어야 한다. 낮시간대에 사람이 더우면 작물도 더울 것이라 생각하여 물을 주게 되면 뿌리 쪽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 작물에게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은퇴 후에 귀농, 귀촌을 하면 그 누구보다 농사도 잘 짓고 농촌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한낱 자만이었다. 때에 맞춰 땅에 씨앗을 심으면 만사 형평이라고 생각하였다. 땅에 심긴 작물의 생육에도 자연의 원리와 법칙이 숨어있는 줄 잘 몰랐다. 농촌 출신이라고 해서 농촌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과연 저자는 무늬만 농촌 출신이었다. 초등학교 때 광주로 유학을 간 저자는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광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주말이나 방학 중에만 고향 시골에 살지 않았던가. 물론 부모님의 농사를 거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저자가 주도적으로 농사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긴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직영이 아닌 간접적인 도우미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니 농사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아는 것 같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헛물만 켜는 식의 지식수준이었다.  농촌 출신이라고 해서 반드시 농사에 대해 잘 안다는 보장은 없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저자의 경우 농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서적 동질감을 농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농촌 출신에 걸맞은 지식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농촌에서 나고 자란 것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에는 변함이 없다. 농촌환경에서 자라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도시인들이 가질 수 없는 농촌환경에서 함양할 수 있는 감성과 자연과의 교감능력을 소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하던가. 먼저 은퇴한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나이가 먹을수록 고향 생각이 더 난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한다. 그만큼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향수는 진하고 소중하다. 이제부터라도 농촌 출신이라고 농촌에 대해 아는 체하지 말자. 자칫 저자의 사이비 지식이 농촌을 일구고 지키는 수많은 농업인들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을 것이다. 농촌에 숨어있는 신의 섭리를 겸손하게 배우고 경청할 일이다. 



김철수. (2013). YTN 과학뉴스. 가로등 불빛에 잠 못 드는 농작물.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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