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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ug 07. 2022

반려동물

가족 이상의 존재

동화 ‘플랜더스의 개’는 소년 네로와 개 파트라슈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1975년 쿠로다 요시오 감독이 TV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하여 우리나라 TV에서도 몇 차례 방영된 바 있다. 파트라슈는 원래 이동 철물점 주인의 개였는데 고약한 주인으로부터 심하게 혹사당해 탈진한 채로 길에 버려졌다. 유기견 파트라슈를 발견한 네로는 집으로 데려와 지극한 간호로 살려낸다. 네로는 파트라슈와 함께 우유 배달을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가난을 견뎌낸다. 네로와 파트라슈는 감동적이고 애잔한 우정을 쌓는다. 이것을 동고동락이라고 할 것이다. 파트라슈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네로와 함께 한다. 파트라슈는 슬픈 동화에 등장하는 개이지만 반려동물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동물이지 않나 싶다. 


최근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에 멕시코에서 손발을 쓰지 못하는 주인의 수동 휠체어를 뒤에서 밀고 가는 반려견에 지구촌 사람들의 눈이 멈췄다. 반려견은 한 동안 휠체어를 밀고 가다 차도 앞에서는 잠깐 멈춰 차량 유무를 확인하고 주인과 눈을 맞춘 뒤 다시 밀고 갔다(김소정, 2022). 중국 후난성 사오양시의 한 거리에서 떠돌이개가 어린 아이를 공격하여 땅에 쓰러뜨렸을 때 반려견이 즉시 그 사나운 떠돌이개를 덮쳐 공격을 막아냈다(김가연, 2022). 우리나라에서도 1993년 '백구'로 불리던 진돗개가 진도에서 300km 떨어진 지역의 애견가에게 팔려갔다가 7개월 만에 주인집으로 되돌아오는 기적을 만들었다(김권, 2004).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반려견이 오랜만에 보호자를 만나면 눈물이 차오르는 등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반려견도 인간처럼 눈물로 안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확인됐지만, 반려견의 눈물이 정서적 상태와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일본 아자부(麻布)대학 수의학부 기쿠수이 다케후미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반려견이 한동안 보지 못했던 보호자를 만나면 눈에 눈물이 고이며, 이 눈물 생성에는 사랑 또는 애착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이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정채빈, 2022). 반려견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가슴 찡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간에 만들어지는 미담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반려견의 충성과 의리, 그리고 희생과 헌신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저자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반려동물은 글자 그대로 반려자와 마찬가지로 한 가족처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얼마나 양육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2020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 양육률은 전체 응답자의 27.7%로 전국적으로 638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수치는 2019년보다 47만 가구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견은 521만 가구에서 602만 마리(81.6%)를 기르고, 반려묘는 182만 가구에서 258만 마리(28.6%)를 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농림축산식품부, 2021).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개 또는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양육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는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신지호, 2010). 첫째,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이 아이의 사회성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정신과에서는 동물치료법을 고안했으며, 우리나라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는 개를 통해 정신치료를 하는 동물매개치료를 실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자폐아, 우울증 환자, 품행 장애아 등이 개와 놀면서 점차 사회성을 회복한다. 반려동물은 단지 치료의 목적이 아니라도 아이의 조기 사회성 형성과 가족 간의 화목한 분위기 조성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둘째, 평온한 노년을 위해서다. 부모는 자녀가 성장하여 독립하고 나면 허탈감을 느낀다. 중장년의 허탈감을 달래주는 데 반려동물만 한 것이 없다고 한다. 미국 노인병학회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우울한 기분을 덜 느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더 나아가 반려동물은 장수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반려동물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정신적으로 크게 위안을 받으며,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건강한 몸을 위해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혈압과 콜레스테롤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개는 사람의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건강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며,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규칙적인 산책과 활동은 신체적 건강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어린이가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위장염에 덜 걸리고 면역력도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개나 고양이가 위장염의 원인이 된다는 일반적인 견해를 뒤집는 연구결과다.


저자와 반려동물과 얽힌 이야기를 해보자. 6, 70년대 농촌에서 성장한 저자는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냥 개 또는 고양이에 적당히 이름을 붙여 불렀다. 누런 개는 '누렁이', 검정색 개는 '검둥이', 집에 복을 가져오면 하는 바램을 담아 '복실이', 귀를 쫑긋 세운다고 해서 '쫑' 등 개 주인도 이름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생김새나 특성을 살펴 불렀다. 가장 널리 불리던 이름은 '저 놈의 똥개'였다. 사람들 간에도 호칭이 중요하듯이 사람과 동물 간에도 호칭이 중요하다. 반려동물로 개념화하고 호칭하면 그에 맞는 대접을 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저자에게 개나 고양이는 집 밖에서 살아야 하는 동물 또는 가축이었고, 좀 낮춰 부르면 '짐승'이었다. 당시 농촌 마을에서는 복날에 개를 서너 마리 잡아 보양하는 것을 전통적인 풍습으로 생각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개를 다른 인격체로 대우하고 정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정을 들면 선뜻 개를 내놓지 못한다.  


지금도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개에 대한 기억이 있다. '해피'라고 부르는 개가 보름달을 보며 짖다 집 밖에 나가 농약을 먹고 다음날 사체로 발견되었다. 해피는 어머니를 잘 따르고 집을 잘 지켜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햇볕 좋은 날 마당에 멍석을 깔고 고추며 콩을 말릴 때 닭들이 신바람이 나 주워 먹으려고 할 때면 해피가 여지없이 등장하여 쫓아내곤 했다. 식구 한몫을 하던 해피가 뜻밖의 사고를 당하자 우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는 해피를 못내 불쌍해하셨고 뒷산에 정중하게 묻어주었다. 영어식 이름으로 happy를 붙여 '네가 있어 행복하다'라고 생각한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중에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달(Luna)의 형용사 'lunatic'을 배웠는데 이 형용사의 뜻은 '미친, 정신이 나간'이라는 의미였다. 해피가 '보름달을 보다 정신이 이상해지고 뭔가에 이끌려 집 밖으로 나갔나지 않았나'하고 생각하고 있다. 대체나 달의 인력(引力)이 얼마나 대단한가. 해피쯤이야 쇠붙이가 자석에 붙듯 홀려갔을까 싶다. 청명한 하늘에 뜬 달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보름달과 같이 완벽한 동그라미는 어디 있겠는가. 저자는 해피 때문에 보름달을 오랫동안 쳐다보지 않는 미신의 댄스를 춘다. 나도 모르게 달에 이끌려갈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동안 학교 다니고 직장 생활하면서 해피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육십이 되어 골든 리트리버(Golden Retriever)를 알게 되었다. 사전상으로 리트리버는 '사냥 때 총으로 쏜 새를 찾아오는 데 이용하는 큰 개'로 정의되어 있다. 한국애견협회에서 제공하는 리트리버의 성격에 대한 정보에 따르면, '좋게 얘기하면 양반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천하태평 현실 도피자다. 죽을 때까지 시각장애인의 안내를 하고, 무언가를 집어 오라고 하면 땅이건 물이건 간에 무조건 찾아온다.' 저자는 최근 리트리버와 지낼 기회가 있었다. 때에 맞춰 음식을 주고 운동시키고 소대변을 처리하고, 함께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그와 정이 들었나 보다. 무엇보다 리트리버는 귀여우면서도 젊잖다. 대개 개들은 촐랑거리며 외부의 자극에 동요하면서 소란스러운 법인데, 이 개는 동작 하나하나가 무겁고 품위가 있다. 한 번은 길에서 마실 나온 고양이와 마주쳤는데 개와 고양이가 눈싸움으로 서로의 기를 꺾으려고 했다. 한참을 마주 보던 중 고양이가 성미 급하게 외발을 들어 내려찍을 듯한 자세를 취했다. 리트리버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의젓하게 자리를 지켰고 고양이는 냅다 줄행랑을 쳤다. 리트리버가 왜 애견가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줄 짐작이 간다. 또 놀라운 것은 대소변을 철저히 가린다는 것이다. 주인이 부득이 사정이 생겨 밤 10시에 집에 돌아와도 리트리버는 참고 있다 반드시 집 밖에서 생리작용을 한다. 아무리 스쿨에서 훈련을 받은 개라고 하더라도 놀라운 일이다. 사람이 7시에 대소변을 보는 습관을 가졌다면 10시까지 버티기는 어려울 일이다. 초견적(超犬的)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  


만약 이탈리아 토리노시에서 거주한다면 초견적인 애완견의 인내심만을 믿다 벌금을 내야 할 것이다. 토리노시는 애완견을 기르는 시민은 개를 위해 하루에 최소한 세 번 산책을 시켜줘야 한다는 조례를 제정했다. 두 번만 했으면 500유로(약 67만원) 벌금을 내야 한다. 애완 동물을 학대하거나 버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1만유로(약 1,335만 원)의 벌금 또는 1년 징역형에 처해진다. 애완견을 하루 세 번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애완견의 입장으로 돌아가 그가 대소변을 참아야 하는 처지를 생각해야 가능한 일이다. 사실 많은 많은 노견(老犬)은 아무리 고도의 훈련을 받았어도 노화로 인해 하루 세 번도 부족하 때가 있다. 토리노시의 조례는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에게는 동물권이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사실 이제까지 개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들은 집 밖에서 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인데 하물며 사람과 동물은 더 유별해야 한다는 유교적인 고리타분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유교적 사고의 기본은 질서에 있지 않던가. 집에서도 위계질서가 있는데 감히 가축이 어떻게 집안에서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겠는가. 또 집안에서 동물들을 키우는 것을 꺼려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을 수발들고 케어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무시할 수 없다. 고양이를 키워보면 알지만 그의 소대변의 악취는 얼마나 심한가. 이제 세월의 무게와 함께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받아들이고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놀라운 변화요 파격이다. 


개와 관련해서 고해성사를 할 것이 있다. 철없던 시절 요즘처럼 더운 여름의 중복날, 아버지가 건네주신 보양식을 먹곤 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하던가. 여름 중복날 즈음이면 보양식이 생각나던 시절이 있었고 몸을 보양한다는 명분으로 친구들과 잘한다는 음식점을 찾아다닌 적도 있다. 이 기회를 빌어 그런 습관이 불필요한 과잉 탐욕이었음을 고백한다.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에 말대로 '야만인'이었다. 보양식은 한국인만의 문화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요즘에도 꼭 그렇게 해야 되는가 싶다.  


반려견 리트리버는 사람 나이로 80세가 훨씬 넘는 고령이다. 펄펄 날던 리트리버도 세월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관절이 약해 걷는 것도 불편해하고 체력이 떨어져 좀 움직였다 싶으면 하루 종일 시원한 바닥을 찾아 쪼그리고 앉아 있다. 암 수술을 받고도 이겨냈다. 말복 더위에 혀를 내밀고 헉헉거리는 시간이 젊은 개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하도 헉헉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저자도 '헉헉' 소리를 냈더니 꼬리를 흔들며 동질감을 표시해주었다. 그에겐 요양원이 따로 없다. 집이 요양원이다. 벌써부터 리트리버가 곁에 없으면 그 우울하고 허탈한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생각한다. 나의 여생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나의 친구이자 가족 그 이상의 존재인 리트리버의 행복한 여생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말이지 지금 생각 같아서는 잘 훈련시킨 리트리버라면 열 마리도 키울 것 같다. '잘 키운 반려동물 한 마리 열 자식 부럽지 않다'라고 하면 너무 앞서 나간 것인가.  



김가연. (2022). 《조선일보》.충성스러운 中반려견... ‘개물림’ 공격당한 아이 구했다. 8월 9일.

김   권. (2004).《동아일보》.〈‘주인 찾아 삼만리’ 진도에 백구상 건립〉. 10월 3일.

김소정. (2022).《조선일보》.〈몸 불편한 주인 위해 휠체어 민 반려견… 전 세계 네티즌 울렸다〉. 8월 5일.

농림축산식품부. (2021). 전국 638만가구에서 반려동물 860만마리 키운다〉. 4 23 

신지호. (2010).조선일보.애완동물을 키워야 하는 3가지 이유. 1월 5일.

정채빈. (2022). 《조선일보》. “보고 싶었어요”… 반려견도 ‘기쁨의 눈물’ 흘린다〉. 8월 24일.

윤희영. (2023). 《조선일보》. 〈세계 각국의 신기하고 별난 법률들〉. 1월 19일.

한국애견협회 애견정보.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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