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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ug 06. 2022

브런치 연재 200회 회고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고래 점프가 필요한 이유

'브런치'는  IT 기업 카카오의 폐쇄형 블로그 서비스다. 2015년 6월 서비스를 처음 출시한 '브런치'는 선별 심사를 거친 이른바 작가들에게 글을 쓸 공간을 제공한다. 선정된 작가들만이 글을 쓴다는 점에서 폐쇄형이다. 금년 8월 저자의 '브런치' 연재 횟수가 200회를 돌파했다. 2020년 9월 23일 첫회 게재 후 2년 만이다. 월평균 8.4개, 주간 평균 2.1개 꼴이다. 주제를 보면 역사, 문화, 정치, 국제 정치 및 국제 관계, 인간관계, 리더십, 인간의 심리, 교육, 사회현상, 고전, 건축, 인물, 영화 등 각계 각 분야에 걸쳐 다양한 분야와 영역을 다뤘다. 길을 가다 모르면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물어 가듯이 모르는 주제나 이슈가 나오면 문헌과 자료를 참고하며 공부하고 검증하면서 연재를 했다. 


브런치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아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평소 기록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저자에게 좀 더 체계적인 관리를 할 수 있고 많은 독자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브런치를 소개했다. 브런치는 언제 어디서나 글을 쓰고 수정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연말에는 구독 횟수 등 다양한 데이터를 작가에게 피드백하면서 글 쓰는 동기를 부여하기도 했다. 


200개 주제에 대해 글을 쓴 소감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초보 인문학자는 되지 않았나 하는 조심스러운  평가를 내리고 싶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글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했고, 인용한 자료의 출처도 꼼꼼히 달면서 나중의 번거로움을 사전에 해소하려고 노력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나서부터 저자의 머릿속에는 온통 쓰고 있는 글과 관련된 내용이 맴돌았고 문헌이나 신문, 잡지를 읽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제와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도 수십 편을 보았다. 이미 보았던 것도 다시 보게 되었다. 하물며 걷기나 달리기를 하면서도 브런치의 주제를 발굴했고 진행 중인 글의 내용을 채워나갔다. 그런 집념과 열정이 200회 연재를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브런치 글들을 집대성하여 세 권의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2021년에는《학습예찬》과 《현대인의 인문학》을 출간했으며, 2022년 5월에는 《인문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를 출간했다. 또 금년이 가기 전에 《인문의 귀로 세상을 듣다》가 출간될 예정이다. 이미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다. 브런치 공간은 저자에게 세상에 대해 좀 더 치열하게 보고 듣고 느끼고 쓰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모든 공은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많은 독자들의 애정 어린 격려와 피드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22년 8월 현재 3만 6천 여명이 저자의 글을 열람했으니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저자는 본격적으로 인문학과 관련된 책들을 출간하는 맛을 알게 되었다. 교육학 그것도 미국 교육법으로 학위를 받은 저자 자신도 인문학에 대한 책들을 쓸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 자신도 인문학적 소양과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줄 알지 못한 상태였다. 브런치와의 인연으로 저자가 농촌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공부하고 여행하고 경험한 모든 삶의 궤적들이 고스란히 인문학적 감수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인문학에 관한 책들을 쓰면서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라는 하나의 개체가 가진 색깔과 정체성을 알 수 있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말대로 "삶을 발전시켜주는 가장 큰 힘은 자신이 가진 가장 확실한 능력이다"라고 하지 않던가. 나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그 무엇보다 비교할 수 없는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면 내 자신이 되는가에 대한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브런치와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정년한 뒤 하세월을 보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색깔과 정체가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나아갈 방향이 마치 한 밤중에 비행장 활주로에 불빛이 켜진 것처럼 분명해졌다. 글을 쓰고 그 결과물을 엮어 책을 출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그 과정에서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철학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삶에 대한 의욕과 열정을 재무장했다.


200회 연재를 기념하면서 생각나는 분이 있다. 저자는 한때 대학 총장 비서실에서 근무할 기회가 있었다. 사학과 교수 출신 총장을 모시게 되면서 저자의 삶과 사회생활에 긍정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공부를 하는 습관, 역사를 보는 눈, 조직과 사람을 대하는 철학 등은 이후 저자의 생각과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말이 있다. "젊었을 때는 논문을 열심히 써야 한다. 책은 60대 이후에 써도 늦지 않는다. 논문이 곧 책이 된다." 당시에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으나 이제야 그분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인문학과 같이 인간의 동선과 흔적을 좇아가는 학문 활동에 있어서는 지긋한 나이가 플러스가 되면 되었지 마이너스는 아닐 것이다. 


200개의 주제 가운데 독자들로부터 가장 핫한 관심을 받은 주제는 무엇일까? 독자들이 가장 많이 열람한 10개의 주제를 뽑았다. 괄호 안은 열람자 수를 나타낸다. 1위〈자(字), 호(號) 뭐가 중한디〉(1,475명), 2위〈삼국지, 제대로 알고 읽기〉(1,449명), 3위〈인의예의지신(仁義禮智信)의 나라〉(1,035명), 4위〈유방과 항우의 리더십〉(1,016명), 5위〈'감자대왕' 프리드리히 2세〉(972명), 6위〈2인자의 조건〉(894명), 7위〈1492년 스페인〉(891명), 8위〈파나마 운하〉(744명), 9위〈한민족 디아스포라〉(693명), 10위〈인간의 근원적 질문,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670명). 10개 주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독자들은 《삼국지》와 같은 이미 잘 알려진 책이나 인물, 예컨대 유방이나 항우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 또한 인간의 근본이나 처세에 대해서도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자, 호 뭐가 중한디〉, 〈2인자의 조건, 인간의 근원적 질문,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주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기대 밖으로 〈'감자대왕' 프리드리히 2세, 파나마 운하, 1492년의 스페인, 한민족 디아스포라 등 국내외 역사와 지리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작품《헨리 5세》에 나오는 대사다. "작심(作心)하면 모든 일은 궤도(軌道)에 오른다(All things are ready, if our minds be so)." 200회를 연재한 뒤 탈탈 털린 소재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더하면서 새로운 창발성을 갈구하는 저자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2년 전 우연히 작심하고 써 내려간 브런치를 통해 나의 정체성과 색깔을 확인하게 되면서 풍성한 열매를 맛보았던 것처럼, 다시 작심하며 또 다른 궤도에 오르길 기대한다.


지난 2년 동안 머릿속에서는 두서너 개의 소재가 바쁘게 사냥을 하는 벌의 '윙윙윙' 소리처럼 들렸는데, 요즘 그 소리가 뚝 끊겼다. 저자가 '벌'이고 소재가 꽃의 '수분'이라면 수분을 좀 발견하기 어렵다. 저자에게 한계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면서 조선의 문치(文治)를 활짝 연 세종대왕이 현직 관리들에게 특별 휴가를 주어 독서와 학문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한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떠올려본다. 국왕을 보좌하면서 끊이지 않은 샘물처럼 창의적 아이디어를 끄집어내야 하는 집현전 학자들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학자들은 세종이 얼마나 고마웠을까. 새로운 작심은 곧 초심을 지속하는 것이다. 읽고 또 읽어야 한다. 남 앞에서 가르치는 자도 먼저 읽고 깨달은 다음에 강단에 서는 법이거늘 글을 쓰는 사람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input이 풍성하면 output은 자연스럽게 풍성한 열매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은 저자가 지난 2년간 확인한 절대 진리였다.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즐겨 보고 있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를 가진 변호사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자폐인마다 행동 특성과 심각도가 스펙트럼처럼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보통 ‘발달장애’라고 한다. 장애인을 주인공, 그것도 난해한 법리를 따지는 변호사로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가 파격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매력은 변호사의 변론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막힌 문제를 해결할 때이다. 이때 화면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고래가 펄쩍 높이 뛰어올라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드라마의 흥행요소와는 별개로 저자로 하여금 몰입할 수 있게 한 것은, 이 드라마는 소재가 바닥난 저자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새롭게 작심하는 나를 위해 고래가 깊은 바다에서 하늘 높이 솟구치길 기대한다. 


린버그, 마이클. (2001). 《너만의 명작을 그려라》. 유혜경 옮김. 한언. 

셰익스피어, 윌리엄. (2000).《원어와 함께 읽는 셰익스피어 명언집》. 이태주 옮김. 범우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022). 드라마.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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