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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ug 03. 2022

고령 장수 사회

기대수명 vs 건강수명

유엔에서는 고령인구, 즉 노인의 기준을 65세로 정하고 있다. 1889년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할 때, 노령연금 수령 나이를 65세로 정했는데 이 기준을 유엔이 받아들였다. 당시 독일인의 평균수명으로 보면 65세에 연금을 받는 사람은 장수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65세 노인 기준이 130년이 훌쩍 넘은 기간에도 끄떡없이 유지하는 것은, 노인 기준의 변경은 국가 사회복지시스템에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표심을 민감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엔은 총인구에서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사회는 '고령화사회', 14% 이상인 사회는 '고령사회', 20% 이상인 사회를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 고령사회로 진입하였는데, 7년 만인 2025년에 초고령사회에 들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2022년 6월 기준으로 17.6%가 65세 이상의 고령자인 것으로 나타났다(통계청, 2022). 2040년에는 33.9%, 2060년에는 43.9%가 65세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신성식, 2022). 사회복지시스템이 우리나라보다 더 잘 갖춰진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의 경우에는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 2, 30년의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인이지만 초고령사회의 진입만은 제발 늦춰졌으면 하는 바람은 저자만이 아닐 것이다. 하기야 인구구성비율이 사람 마음 먹은대로 되겠는가 싶다.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시군구도 꽤 많다. 2020년 기준 전국 261개 시군구 중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곳은 41.8%인 109개였다. 경북 의성은 65세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40.8%를 차지했고, 전남 고흥은 40.5%를 차지해 두번째로 높았다. 경북 군위(39.7%), 경남 합천(38.9%), 전남 보성(37.9%), 경남 남해(37.3%), 경북 청도(37.1%), 경북 영덕(37.0%)이 뒤를 이었다.


고령인구비율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다보니 고령사회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우스개 이야기도 생겨난다. 7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농촌 마을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할머니가 하루 삼세끼를 집에서 해결하는 할아버지에게 "영감도 마을 회관에 가서 바람도 쐬고 친구들하고 어울리면 좋겠다"라는 제안을 했다. 할아버지는 며칠 마을 회관에 다녀온 뒤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한다. 할머니가 그 이유를 묻자, "선배들이 심부름만 시켜서"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65세부터 노인으로 대우받지만 농촌에서 70대는 젊은 청년축에 속한다. 어디 농촌뿐이겠는가. 고령사회에서 70대는 낀노인세대다.


인간에게 장수는 가장 큰 소망 중 하나이다. 인간이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죽는 순서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들이 생활하는 일상에서 장수를 기원하는 많은 의식과 상징들이 있다. 밥그릇, 수저, 젖가락 등 매일 음식을 먹는 데 필요한도구는 물론이고 베개, 병풍, 부채, 옷, 벽화, 액자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물건에는 여지없이 수복강녕(壽福康寧)을 수놓거나 글씨로 쓴다. 장수(長壽)를 가장 우선하였다. 천지만물 가운데 십장생(十長生)은 장수의 상징이 되었다. 해, 산, 물, 돌, 구름(또는 달),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또는 대나무를 말한다. 민속신앙에서 유래된 십장생이 인간의 장수 욕구와 조합되면서 자연숭배의 대상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 그림, 조각 등에 십장생은 흔히 등장하는 소재다.   


전통민요에도 장수를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강원도에서 전해내려온 민요 '한오백년'의 후렴에는 '한오백년을 사자는데 웬 성화요'라는 구절이 나온다. 저자는 적어도 오백년은 살자라는 의미로 이해했는데, 전북대 김병기 명예교수의 새로운 해석은 무릎을 치게 했다. ‘한오백년’이 아니라 ‘한어백년(限於百年)’ 또는 ‘한우백년(限于百年)’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한오백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한어백년을 사자는데 웬 성화요”를 현대 우리말로 풀이하면 “백년토록 함께 살자는데 웬 불만이며 하소연이란 말이요”라는 의미가 된다(김병기, 2020). 지금보다 훨씬 과거에도 사람이 백년은 살아야 장수하면서 잘 살았다는 말을 들었나 보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으로 오늘날 현대인은 백세를 거뜬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평균수명 변천을 보면 놀랍다.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나라 국민처럼 평균수명이 짧은 시간에 획기적으로 늘어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렵다. 1960년 52.4, 70년 62.3세, 80년66.1세, 90년 71.7세, 2000년 76세, 2010년 80.2세, 2020년 83.5세다(통계청, 2021). 1960년 이후 평균수명이 무려 31세 이상이 늘어났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선진국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2020년 기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가운데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로 나타났다. 이 기록은 전 세계적으로 일본(84.7년)에 이어 2위다. 기대수명은 그해 태어난 아이가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연수를 뜻한다. 한국인 남성은 80.5세, 여성은 86.5세로 각각 예측됐다.


한국인의 수명 개선을 양적 지표로 보면 괄목할만 하지만, 지표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명암이 엇갈린다. 2020년 기준으로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 받은 기간(유병 기간)을 제외한 ‘건강수명’은 66.3년이다. 건강수명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활동하지 못한 기간을 뺀 수명 기간으로,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사는가’에 초점을 두고 산출한 지표다(선정민, 2022). 한국인은 기대수명 83.5세에서 건강수명 66.3세를 17.2년을 병이 든채로 사는 것이다. 병을 앓는 기간이 길다 보니 약물 복용자와 복용률도 매우 높다.201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다제약물복용자(해당연도 10개 이상 약물을 60일 이상 복용한 사람)는 2016년 154만8000명에서 2019년 201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다제약물복용률(해당연도 10개 이상 약물을 60일 이상 복용한 사람÷해당연도 건강보험 가입자수)도 3%에서 3.8%로 증가했다. 매년 OECDE에서는 국가별 약복용에 관한 다양한 통계를 발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5개 이상 약물을 90일 이상 만성적으로 복용하는 75세 환자 비율(2017년 기준)이 통계 제출 7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인 68.1%를 기록했다. 7개국 평균 48.3%와 비교하면 무려 20% 차이가 난다. 다제약물복용자가 많은 이유는 노인 인구와 만성질환자의 증가, 잘 갖춰진 건강보험체계와 높은 의료접근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이해나, 2020).  


고령사회에 더 우울한 지표는 우리나라 노인의 자살률과 빈곤율이다. 2017년 기준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23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OECD 평균(11.2명)보다 2.1배 높았다. 자살률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증가하였는데, 80세 이상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오래 산다는 것이 반드시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고령자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노인의 4고(四苦), 즉 빈곤, 질병, 소외감, 무위(無爲, 하는 일이 없음) 등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노인의 4고는 각 요인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가난하면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고 아프면 소외감이나 사회에서 더 이상 자신을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사람이란 누구든 나름 자존감과 사회적 존재감을 갖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고령의 노인이 되어 아픈 것도 서러운 일인데 하는 일 없이 그저 밥이나 축낸다는 생각이 들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 노인만이 아니라 젊은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2018년 기준 43.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이는 OECD 평균(13.1%)의 3배가 훨씬 넘는 수준이다. 미국(23.1%), 일본(19.6%), 영국(14.9%), 독일(10.2%), 프랑스(4.1%)와 비교할 때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철저한 대비 없이 맞이한 고령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노인의 빈곤은 질병과 소외감 등 노인의 4고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빈곤을 개선하지 않으면 고령사회는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의 늪이 될 수 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라는 속담이 있다. 장수를 갈구하는 원색적인 표현이다. 아무리 병이 들어 고통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있다. 생(生)과 사(死)의 문제에 직면할 때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사람의 목숨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고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젊은 사람이 요절하면 장례식장에서 흔히 듣는 말은 '인명은 재천이라더니 참 사람 목숨은 알 수 없구나!'이다. 사람이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처도 하늘의 뜻은 알 수 없다. 반대로 죽으려고 애를 써도 죽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로 현대인은 죽고 사는 것을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줄어들었지 않나 싶다. 전통적인 생사관에 변화가 생겼다. 살려는 의지와 경제적 능력만 뒷받침된다면 얼마든지 생명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인명은 경제와 의학'이 되었다.


인간의 생명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다는 점에서 평등하지만, 고령 장수사회에서 관건은 유한한 삶을 얼마나 어떻게 건강하게 사느냐이다. 삶의 양이 아닌 삶의 질이 관건이다. 저자는 그 본보기를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 명예교수(103세)에게서 찾고 싶다. 김 교수는 고령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돌보고 사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울림을 준다. 김형석 교수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디자인하고 그것에 철학을 부여하는가를 보자. 김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옮겨본다. "남자는 이기적이고 감정과 삶의 낭비가 너무 많다. 여자는 남자보다 감성과 사랑이 더 풍부하다. 주변에 100세까지 산 지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첫째, 욕심이 없더라. 과도한 욕심이 있는 사람은 인생을 낭비하니까 오래 못 사는 것 같다. 둘째, 남 욕을 하지 않더라. 감정조절을 잘해 화를 안 낸다. 결론적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과 장수의 비결인 셈이다. 장수시대에 인생은 3단계로 볼 수 있다. 태어나서 30세까지 교육받는 기간, 30세부터 60세까지 직장인으로 일하는 단계, 그리고 60~90세까지 사회인으로 일하는 단계. 나무를 보면 열매를 남기는 기간이 제일 소중하다. 90이 돼야 좀 늙더라. 나이 들기 전에 셋째 단계인 60~90세 인생을 미리 설계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건강도 잃고 오래 살지도 못한다."(장세정, 2020). 100년을 넘게 살아본 김형석 교수가 주장하는 핵심은 60세 이후 인생 세번째 단계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건강수명이 짧아질 수밖에 없다. 평범한 말이지만 깊이 새기고 실천할 경험담이다. 이미 살아본 사람의 말처럼 확실한 말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나라 농촌과 도서벽지에 가보라. 보건지소와 공중보건의가 상주하면서 주민들을 진료할 정도로 공중보건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적용으로 MRI 등 고정밀도의 검사를 저렴하게 받을 수 있다. 누구나 장수에 관심을 가지면서 병원과 친하다보면 기대수명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대수명이 늘어났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것인가에 대해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자칫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늪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도 금년 10월이면 갑(甲)이다. 내가 태어난 생년월일이 60번째 해를 바꾸는 것이다. 요즘 갑이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시절이 되고 말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세번째 단계의 인생을 준비하고 실천에 옮기는 뜻깊은 해이다. 김형석 교수를 멘토로 삼아 미리 준비하고 실천하면서 나의 순수의지에 따라 팔팔하게 건강하게 살다 주체적으로 삶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다짐을 해본다. 건강수명으로 장수가 축복이 되면 좋겠다.


김경미. (2021).《중앙일보》.〈고령화 속도 가장 빠른 한국…노인빈곤율도 OECD 1위〉. 2월 1일.

김병기. (2022).《중앙일보》.〈한자로 보면 전통문화가 보인다〉. 8월 4일.    

선정민. (2022).《조선일보》.〈장수의 저주? ...한국인 병든 채로 17년, 건강수명은 66세〉. 7월 27일.

신성식. (2022).《중앙일보》.〈작년 노인(65세 이상) 진료비 41.5조… 치매는 여성, 뇌졸중은 남성이 많아〉. 10월 4일.    

이해나. (2020).《조선일보》.〈매일 약물 10개씩 '꿀꺽'… 국내 200만명 넘는다〉. 10월 20일.

장세정. (2020).《중앙일보》.〈100세 철학자 김형석 "살아보니 열매 맺는 60~90세 가장 소중"〉. 9월 28일.

통계청. (2021).〈생명표〉.

통계청. (2022).〈고령인구비율〉

보건복지부. (2022).〈2021 자살예방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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