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통계에 따르면, 18세 이상 인구(2021년 기준) 중 비문해율(과거 '문맹률')은 약 4.5%라고 한다. 광복 직후 12세 이상 인구의 비문해율은 약 78%였다. 기적에 가까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한편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청소년 디지털 문해력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비문해율은 1% 정도지만, 문장을 읽고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비율은 무려 75%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충격적인 통계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은 문자를 단순히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문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은 문맹에 가깝다는 말이다.
통계에서 나타난 대로 한국인의 문해율은 높지만, 문해력은 후진국 수준이다. 문해력은 단지 글자를 보고 읽는 능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실제로 이해하는 능력이다. 요즘엔 문장뿐 아니라 특정 분야 혹은 영역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생태 문해력, 이미지 문해력,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문해력 등 다양한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용어가 '실질문맹률'이다. 실질문맹이란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여 문맹에서는 벗어났지만 문장을 읽고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실제로는 문맹에 가깝다는 뜻이다. 2021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실질문맹률은 20%가 넘는다고 한다. 실질문맹의 기준이 궁금하다. 중학교 학력 이상수준의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경우1다. 우리나라 고등교육 이수율은 70% 후반대로 세계 최고 수준인데 기이한 일이다.
실질문맹률은 연령별로 차이가 심하게 난다. 50대는 8%, 60대는 36%, 70대 59%, 80대 이상은 78%로 가파르게 올라간다. OECD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장 독해력 조사 결과에서도 정부 조사 결과를 뒷받침한다. 24세까지의 문장 독해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나타냈지만, 55세에서 65세 사이의 독해능력은 20위로 최하위권이었다. 65세 이상의 연령대는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젊은 층과 노년층의 문해력 격차는 OECD 1위다.
문해력과 관련지어 재미있지만 우려스러운 해프닝은 흔하다. 특히 우리말과 한자어가 혼재된 말이나 문장에 대한 문해력이 떨어진다. 예컨대, ‘심심(甚深)한 사과’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과’, ‘금일(今日) 마감’은 ‘금요일 마감’, ‘고지식하다’는 ‘고(高) 지식’으로 그리고 ‘사흘’은 ‘4일’로 이해하거나 해석한다.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무료(無料)'를 '흥미 있는 일이 없어 심심하고 지루하다'라는 무료(無聊)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하물며 언론사의 기자조차도1 '무운(武運)을 빈다'를 “운이 없기를 빈다(無運)”로 해석하는 바람에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문맹퇴치운동은 광복 이후 가장 중요한 국가정책 중 하나였다. 국가에서는 '문맹국민 완전 퇴치운동'을 전개했다. 문맹퇴치에 기여한 공로자를 표창하는 시상식의 현수막에는 “없어지는 눈뜬장님, 자라나는 민주대한”라는 글귀가 있을 정도였다. 당시는 평생교육이란 개념도 없을 때였다. 부모는 자녀에게 '한 글자'라도 가르치기 위해 밤을 낮 삼아 일하고 소, 돼지를 팔았다. 그렇게 해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높은 문해율을 달성했고, 그것은 국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원동력이 되었다. 오늘날에 문해율이 낮은 아시아, 아프리카에서는 선거벽보를 숫자나 글자 대신에 그림으로 표시하는 나라가 있다고 하니 문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나라는 GDP만 놓고 보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세계 10대 무역국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가 되었다. 압축성장의 본보기다. 그런 나라의 비문해력이 75%(인구의 3분의 2)이라고 하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부끄러움을 넘어 국가의 문해교육 정책에 대한 총체적인 부실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문맹이라고 하면 동남아시아 혹은 아프리카 어느 국가를 떠올릴 수 있는데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절박 하면서도 국가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거듭 강조하지만 오늘날의 문해교육은 글을 읽고 쓸 줄 알면서 글자에 눈을 뜬 개안(開眼) 수준이 아니라 문장을 읽고 정확히 이해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한국인의 문해력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자교육을 게을리한 탓이라는 주장도 적절한 이유는 아닌 것 같다. 한자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았던 세대가 그렇지 않았던 세대에 비해 문해력이 낮기 때문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독서를 하지 않은 탓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의 일상화가 독서를 손절하게 만들었다. 국민의 90% 이상이 스마트폰을 통해 지식이나 정보를 습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UN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인의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였다. 성인의 25%는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2017년 발표한 OECD 국가별 성인 1인당 월간 독서량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은 0.8권으로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 중국 2.6권 등에 비해 크게 낮다. 병인양요(1866년) 때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의 병사가 “조선과 같은 먼 극동의 나라에서 우리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의 자존심마저 겸연쩍게 만든다”라고 기록한 사실을 생각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년 11월이면 평택시의 평생학습관에서 주최한 <노인문해학교 시화전>에 출품된 작품 심사에 간다. 배움의 때를 놓쳐 늦깎이로 공부를 시작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지역의 평생교육기관에서 배우고 익힌 한글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 출품한다.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누어 심사를 하는데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시화(詩畵)에 발이 멈추고 눈이 가는 곳은 초급 제출자의 글이다. 중급 이상은 글은 매끄럽고 글씨체도 세련되었지만 뭔가 기교가 섞여 감동이 덜하다.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삶을 조명한 초급의 글에 감동이 더 크다. 70여 년을 살아온 그들의 삶 자체가 시인데 특별한 기교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글을 몰라그들의 삶을 표현하지 못하고 한(恨)을 품고 살아왔을 것을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저자의 심금을 울렸던 글을 소개한다.
<배우니까 살맛 난다>
집안이 너무 어려워 글자를 배우지 못했다.
차라리 고아원에 보내졌더라면
한글을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학교만 오면 나는 살아있다는 게 느껴진다.
학교에서는 한 마음 한 뜻으로
배운다는 것을 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이다.
선생님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에 많이 좋아지고 있다.
배우니까 살맛 난다.
<배운다는 것은>
배운다는 것이 이렇게 신기하다.
뭐든지 쓰고 싶다.
자꾸만 쓰고 싶다.
예전에는 시장 가면
꼭 하나씩 빠뜨리고 못 사 왔는데
지금은 쪽지에 적어서 가니까
못 사올게 없다.
글씨가 이렇게 신기하다.
<다시 사는 삶>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가족을 부른 의사 선생님의 말에,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말았다.
눈 떠보니 제일 먼저 남편 얼굴이 보였다.
나한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이 덜덜 떨린다.
지금은 남편과 같이 학교에 간다.
밤새 숙제한 책보따리 챙겨주며,
학교 태워다 주고, 끝나면 집에 태워가고...
남편도 나도 다시 사는 인생이다.
문맹(文盲)이란 한자어 맹(盲)을 보라. 망할 망(亡)과 눈 목(目)의 합성어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까막눈이다. 눈뜬장님이라고도 한다. 긴 세월 글을 모르고 사는 외롭고 한스러운 삶을 살다, 어느 날 글을 깨쳐 글을 쓰는 그들의 손이 얼마나 떨렸을까?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모습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내적인 희열은 얼마나 컸을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자신과 부모와 세상에 대한 원망을 글에 쏟아붓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희망의 노래로 승화시켰다. 글속에 연륜이 묻어난다. 그들은 글에서 '배우니까 살맛이 나고, 배우는 것이 신기하고, 배우는 것은 곧 다시 사는 인생이다'라고 했다. 그들이 자신의 삶이라는 재료에 문해의 기쁨을 버물려 만든 평범하지만 진실의 시향을 풍기는 시어(詩語)다. 평생교육의 개념과 의미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문해력 수준이 이 정도인 줄 몰랐다. 다시 초심으로 되돌아가 제2의 문맹퇴치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때다. 문해력이 낮으면 세대 간에 통합은 물론 국가정책을 펼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경제적으로는 문해력이 곧 노동의 질이고, 생존 능력이다. 문해력을 향상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지다.
조선의 세종이야말로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한 군주요 문맹퇴치운동의 선구자다. 그는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로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제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이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들게 되었으니 백성들이 쉽게 익혀 매일 사용하는 데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 훈민정음 창제의 핵심은 백성들이 쉬운 말을 사용하여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세종은 백성의 문해력을 높일 목적으로 한글을 만드셨던 것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말귀는 '말이 뜻하는 내용'이다. 이 속담은 말이 뜻하는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여 흔히 사용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문해율을 높이는데만 관심이 높았지 않나 싶다. 진즉 중요한 것은 문해력이다. 저자 자신도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문해력 등에서는 문맹일 줄 모른다. 괜히 아는 척, 잘난 척하지 말아야 한다. 낮고 열린 자세로 항상 배운다는 평생학습자가 되어야 한다.
H. 쥐베르, CH. 마르탱. (2010). 프랑스 군인 쥐베르가 기록한 병인양요. 유소연 옮김. 파주: 살림출판사
안진용. (2022). 문화일보. ‘심심한 사과·금일·고지식’ 뜻 모르는 MZ세대…문해력 부족 ‘심각’. 8월 29일.
정희진. (2021). 한겨레.. [정희진의 융합] 문해력 ‘최하위’ 한국. 5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