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로환(正露丸)에 얽힌 사연
일본의 군국주의 미련과 후안무치
우리나라에 상수도 시설이 제대로 구비되지 않던 시절에는 배설물과 생활 오폐수가 정화되지 않은 채 강과 바다로 그대로 흘러 들어갔고, 국민들은 그 물을 그대로 퍼다 마시던 때가 있었다. 공중보건 위생 개념도 제대로 수립되지 않았다. 물갈이를 하면 배가 꼬이면서 사르르 아프거나 배탈, 설사는 다반사였다. 이때 찾는 약이 '정로환(正露丸)'이다.
정로환은 오랜 역사를 지닌 약이다. 1905년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정로환은 군국주의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면서 본격 개발되기 시작했다. 러일전쟁(1904∼1905)이다. 러일전쟁은 만주와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제국주의 전쟁이다. 일본을 세계 제국주의 무대에 올려놓은 전쟁이기도 하다. 일본은 만주에 파병한 병사들이 잇따라 죽어나가자 그 원인을 조사한 결과, 만주의 나쁜 수질이 배탈, 설사의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일왕은 ‘배탈, 설사를 멈추게 할 약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다. 수많은 약 중에 다이코신약에서 만든 약이 효력이 뛰어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정로환이다. 한자 뜻으로 정로환(征露丸)은 '러시아를 정복하는 약'이라는 의미이다. 러시아는 한자로 '露西亞(로서아)'로 표기한다.
정로환의 탄생과 관련하여 다른 설도 있다. 일본은 러일전쟁 개전 전에 병사들이 물갈이를 하면 탈이 날 것을 준비하여 미리 정로환을 개발해 두었다고도 선전했다. 유비무환의 일본군을 홍보하는 것이다. 또 일본군이 일장기를 등에 지고 행군하기 때문에 ‘해(日)가 뜨면 이슬(露)은 사라진다’는 의미로 '정로환(征露丸)'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어떤 설이든 정로환은 동북아시아 격변기와 맞닿아 있고, 일본군은 약하나에도 군국주의 냄새를 풍기고 다녔다.
정로환은 효능은 좋은데 냄새가 지독하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구토증세를 보인다. 일본군 병사들도 처음에는 지독한 냄새 때문에 약을 복용하지 않고 버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군당국에서는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라는 천황의 명“이라고 하면서 병사들에게 먹였다고 한다.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원래 이름이 '크레오소트환'이었던 것을 러시아를 정벌한 약이라고 해서 '정로환(征露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정로환은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약품이 되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시기에 정로환을 ‘육해군어용약’이라며, 황군위문품의 최적의 약품이라면서 자신들의 제품을 사서 일본군들에게 위문품으로 보내라고 선전해 댔다. 또한 상품명을 ‘전몰기념환’이라고 바꾼 적도 있을 정도로 일본의 군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약품이었다. 오늘날 일본은 야스쿠니신사, 즉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에다 정론환을 전시하고 있다. 제사상에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차리는 것처럼 전몰병사를 위해 정로환을 전시하고 있다.
정로환(征露丸)이 어떻게 정로환(正露丸)이 되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 후 일본정부는 ‘국제적 신의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정복할 정(征) 자를 바를 정(正) 자로 고쳐 쓰도록 전국의 제약회사에 명령하여 오늘날의 정로환(正露丸)이 되었다. 일본이 정복할 정(征)에서 바를 정(正) 자로 고쳤지만, 여전히 군국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한자 바를 정(正)에는 '정당하다', '올바르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정로환(正露丸)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당시 러시아와의 전쟁이 정당하고 떳떳한 침략행위였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러시아를 정복하는 데 혁혁한 공로가 있는 약품이라는 정로환(征露丸)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정로환의 개명을 보면서 과거 역사에 솔직하지 못하고 반성하지 못한 일본인의 모습은 정로환의 독한 냄새를 맡는 것 같다.
국내에서는 1973년부터 정로환((正露丸)이 생산되었다. 1973년 12월 17일 자, 동아일보 광고에서는 정로환을 '급만성설사, 일반설사, 급체, 복통, 위장병, 소화불량'에 약효가 있는 신제품으로 광고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배탈에는 정로환’이라는 광고 효과는 절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로환'은 보통명사가 되었다. 법원은 동성제약이 보령정로환을 출시한 보령제약을 상대로 시작했던 상표권 소송을 기각했다. 정로환은 동성제약만이 아니라 다른 제약사도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8개 제약사에서 정로환을 생산한다. 독한 냄새가 나지 않도록 당의를 씌운 제품도 발매하고 있다.
정로환은 배탈설사에는 탁월한 효능을 지니고 있고 미국 FDA 승인을 받아 효과나 안전성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정로환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역사적 맥락과 배경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일본은 정로환(征露丸) 또는 정로환(正露丸)이라는 이름을 완전히 바꿔 군국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불쾌하겠는가 싶다. 일본인은 남에게 폐 끼치는 것, 즉 '메이와쿠(迷惑)'에 민감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부와 군부에서는 왜 이렇게도 무례하고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정부와 군부의 메이와쿠는 일반 국민의 메이와쿠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란 말인가. 둘째, 우리나라 제약사들도 정로환(正露丸)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모를 일 없을 것이다. 일본어와 일본문화도 필요하다면 우리나라에 외래문화로 차용할 수 있지만, 정로환(正露丸)은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로환(正露丸)이란 이름을 계속 사용하면 일본인은 좋아하겠지만, 이는 우리 국민을 모욕하고 국제적으로도 도의에 어긋난다 할 것이다. 제약사에서 약이름을 한글 '정로환'으로 표기해도 그 본래 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굳이 공자의 정명 사상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약 이름은 약 이름다워야 한다.
윤영철. (2015). 동북아 역사를 지독한 냄새로 담아낸 정로환. 8월 10일.
청년의사. (2004). 동성제약 ‘정로환’. 5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