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음치에 가깝지만 노래를 듣는 것은 좋아한다. 학창 시절에는 가곡이나 클래식을 듣거나 팝송을 따라 부르기도 했지만, 요즘엔 듣기도 편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트롯을 듣게 된다. 트롯을 즐겨 들으며 대리 만족을 느낀다. 트롯만큼 사람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노래도 드문 것 같다. 마치 맞춤복을 입는 것처럼 딱 맞다.
어머니도 트롯을 참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특히 이미자의 일편단심 찐 팬으로 가장 즐겨 부르는 십팔번은 <동백아가씨>와 <섬마을 선생님>이었다. 앙코르곡으로는 <목포의 눈물>을 부르셨다. 어머니는 바쁜 농촌 생활에서 약간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이미자의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곤 하셨다. 2012년 10월에 뇌수술을 하고 기적적으로 회복하셨을 때, 저자는 어머니에게 카세트에서 이미자의 노래를 들려 드렸다. 어머니는 웃음을 지으시면서 박수로 장단을 맞추셨다. 뇌가 완전히 회복되지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미자의 노래는 뇌파를 자극하여 어머니를 환하게 웃게 만들었다.
요즘 저자 자신도 트롯에 흠뻑 빠졌다. 트롯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어쩌면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인생 이야기에 곡을 붙인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트롯 가수가 저자를 대신하여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할 때도 있다. 특히 방송국에서 주관하는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보려고 한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 지망생들은 십 대 어린이부터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트롯은 연배 지긋한 중장년 이상이 부르는 노래라는 선입견이 단번에 무너진다. 하물며 10대 초반의 어린 트롯 영재들이 등장하여 어른도 소화하기 어려운 노래를 잘도 부른다. 어린이들이 대부분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하는 트롯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나 걱정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그들은 시청자의 감정을 풀어헤쳐놓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갔다 놓는 데 능숙하다. 마치 연줄을 풀었다 감기를 반복했다. 전국적으로 트롯 열풍이 불고 트롯의 전성기가 다시 찾아온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트롯을 부르거나 듣는 사람을 '고루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클래식을 듣거나 팝송이나 빠른 박자의 랩 정도는 불러야 고상하고 멋을 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트롯의 역사라던지 곡의 배경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비하했다. 우리나라 트롯의 역사는 다분히 민족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왔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트롯은 슬프고 애절한 감정,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신세나 처지에 대한 비관, 고향을 떠난 실향민이나 나그네의 애잔한 슬픔과 고통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일제 식민시기에 불러진 <황성옛터>(1932년), <타향살이>(1934년), <목포의 눈물>(1935년), <나그네 설움>(1940년) 등은 조국을 빼앗긴 한민족의 설움과 슬픔을 노래에 담았다. 남과 북의 분단과 동족이 싸웠던 6.25 때는 <가거라 삼팔선>, <단장의 미아리고개>, <꿈에 본 내 고향> 등의 노래에 분단과 전쟁의 슬픔과 고통을 담았다. 그때 트롯은 우리 민족의 국권상실, 분단, 전쟁으로 실의에 빠졌던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우리나라 트롯은 한민족 특유의 가슴에 응어리져 남아 있는 표현하기 어려운 한(恨)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노래로 표현하였다. 그런 트롯은 노래를 듣는 자신의 또 다른 아바타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 이후 트롯을 국민가요의 위치로 올려놓은 가수는 이미자, 배호, 하춘화, 남진, 나훈아 등 트롯의 레전드들이다. 그때 트롯의 주제는 대부분 사랑과 이별 그리고 이루지 못한 꿈과 회한에 관한 것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당장 내일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야 했던 보릿고개 시절에도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던 사랑과 행복 그리고 과거에 대한 회상 등 인간적인 고뇌를 주제로 국민의 가슴을 후벼 팠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남진의 <가슴 아프게>,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 하춘화의 <물새 한 마리> 등 주옥같은 노래들이 유행했다. 한편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일부 트롯에 대해서는 지나친 애수의 감정을 담고 있어 퇴폐적이고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동백아가씨>는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1965년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1987년에야 해금되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조치였다. 1970년대는 포크송이나 록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트롯의 인기가 주춤해지기도 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는 조용필이 트롯의 전성시대를 다시 열었다.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시작으로 트롯의 전성기를 부활시켜 가왕(歌王)이라는 타이틀을 얻기까지 했다.
저자는 트롯만큼 우리 민족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노래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트롯은 더 이상 '뽕짝'이란 이름으로 폄하되거나 저학력, 하층민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트롯은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대중가요였지만, 이제는 초중등학생은 물론 젊은이들도 트롯을 즐긴다. 흥미로운 점은 트롯이 타 분야의 예술장르와 융합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성악전공자, 국악전공자, 발레리나, 뮤지컬 배우가 트롯을 부르면서 트롯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다. 트롯의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그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트롯은 더 이상 특정 집단이 즐겨 부르는 올드송이라거나 고루한 사람이 즐기는 노래가 아니다. 어린이, 청년, 중장년, 그리고 노년층이 자신의 취향을 가진 가수의 팬카페에 회원으로 등록하며 탄탄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 트롯 가수들에 대한 팬덤 현상은 1990년대 아이돌 못지않다. 오히려 아이돌 팬덤보다 지지층이 넓고 충성도와 결집력이 강하다. 특히 공개 오디션으로 트롯 스타가 된 임영웅, 김호중, 영탁, 이찬원의 팬카페 회원수를 합치면 수십만 명에 달한다. 조은재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동안 중장년층이 향유할 만한 놀이 문화, 또래 문화가 제한적이었다. (중략) 놀이 문화에 대한 갈증이 컸던 만큼 팬덤의 충성도와 결집력이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라고 진단한다(신동아, 2021). 트롯이 중장년층의 놀이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또래 간의 결속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헨리 젱킨스는 팬덤을 이루는 팬들의 활동이야말로 "평범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억압해야 했던 흥분과 자유를 회복시켜 주는 대안적 문화 경험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장유정, 조선일보). 트롯 팬들이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는 이유는 억압에서 해방되고 인간다운 삶을 되찾기 위한 문화활동인 것이다. 트롯 팬덤 현상의 이유가 어떻든 우리 민족의 애수와 한을 흥과 끼로 승화시켜 발산하는 트롯에 주목하는 이유다.
트롯이 시대변화와 무관하게 오랜 시간 국민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는 비결은 무엇일까? 트롯 작사가와 작곡가들이 새로운 트롯 장르를 만들면서 사랑과 이별 그리고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이나 욕구를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트롯의 가사들이 솔직 담백한 인간미를 풍기며 내면의 세계를 리얼하게 드러내는 것도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노래나 제품이 인간의 기본 욕구를 자극하게 되면 대중은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저자에게도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프로가수 뺨치는 아마츄어 트롯가수가 저자에 한 말이다. "트롯의 매력에 한번 빠지게 되면 다른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이번 주에도 트롯 방송을 한다. 신선하고 새로운 트롯 장르를 기대하는 것은 저자만이 아닐 것이다.
백경권. (2023). 작곡가 백영호. 서울: 도서출판 윤진.
김지영. (2021). 신동아. <임영웅 ‘영웅시대’ 15만, 김호중 ‘트바로티’ 10만 … 문화 지형 바꾼 트로트 팬덤>. 4월호.
장유정. (2022). 조선일보. <트로트 팬덤>. 12월 1일.
<트로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