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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Sep 24. 2020

역사의 ‘정의’에 공소시효는 없다 ②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

1990년대 초 독일 뮌헨 다하우(Dachau) 수용소를 방문했다. 다하우 수용소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악명 높은 강제 수용소들 중 한 곳이다. 전쟁 중 나치는 ‘국가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1000만 명을 학살(홀로코스트)했는데 이 중 600만 명이 유대인이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전대미문의 역사적 악몽이다. 생체실험실, 고문실, 가스실, 유골 전시실 등을 둘러보는 내내 소름이 돋고 얼마나 긴장하였던지 입술이 바싹 탔던 기억이 난다. 악마의 소굴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하우 수용소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나치가 저지른 온갖 만행들을 고스란히 전시해놓고 있다. 독일은 과거의 반인륜적 범죄를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대신 역사 앞에 진실로 사죄, 반성하고 있구나 하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수용소의 모든 안내판이 검은색 바탕에 흰색 글씨였다. 하얀 셔츠에 검은색 양복을 입고 추모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표기하고 있다고 한다. 독일이 부끄러운 과거사를 대하는 진정성을 보면 이와 극명한 대조를 나타내는 일본의 태도는 가히 실망을 넘어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최고 사령관은 친위대 소속 하인리히 히뮬러 장군이고 실무 책임자는 아돌프 아이히만 중령이었다. 아돌프 히틀러와 이름이 같다. 아이히만은 독일 및 독일 점령 지역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체포하고 수용소로 강제 이주시키는 실질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지휘했다. 어찌 된 일인지 아이히만은 종전 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소환되지 않았다. ‘학살 기획자’ 아이히만이 이스라엘과 국제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는 그와 관련된 영화와 다수의 자료들이 말해주고 있다. 영화 ‘아이히만 쇼’(2017년)와 ‘오퍼레이션 파이널’(2018년)이 연속으로 제작되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년)을 집필했다. ‘아이히만 쇼’는 홀로코스트의 기획자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오퍼레이션 피날레’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은신하고 있는 아이히만을 이스라엘 비밀 정보부(모샤드)가 어떻게 체포(일종의 ‘납치’)하고 송환했는가에 대한 과정을 다룬 첩보 영화다.  


남미로 도망친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 국적의 ‘리카르도 클레멘트’로 이름을 바꿔 자동차 공장에 취업하여 봉급 생활을 하는 평범한 가장으로 행세했다.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독일에서 도망친 꽤 많은 나치주의자들이 살고 있었고, 여전히 나치즘을 추구하는 조직을 운영했다. 그들이 얼마나 끔찍한 반유대주의자들이고 인종차별주의자인지는 그들의 구호에서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을 비누로 만들자.’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이다. 아이히만의 존재가 모샤드에 알려지게 된다. 모샤드는 아이히만을 법정에 세우기로 결정하는데, 홀로코스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 학살자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1960년 모샤드가 추진한 아이히만 체포 작전은 자칫 외교와 주권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전범 학살자를 체포하는 것이지만,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자국 국민의 납치 사건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샤드는 작전명 ‘오퍼레이션 피날레’를 극비리에 추진하여 ‘클레멘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아이히만을 체포하는 데 성공하고 법정에 세웠다. 재판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終戰 15년 만이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 시효가 없음을 증명했다. 집단 학살자의 법정 진술은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집단 학살의 만행을 저지를 정도의 범죄자라면 폭악한 성격의 소유자이거나 정신적으로 이상한 괴물일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벗어났다. 그는 평범한 가장이었고 자신이 맡은 직무를 성실히 수행한 보상으로 봉급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상부의 지시와 명령에 따랐을 뿐이고 받는 봉급에 비해 일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양심의 가책을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미국의 잡지 ‘뉴요커’의 특파원 자격으로 재판을 참관한 한나 아렌트는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발표했다.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라고 추정한다. 악의 근원은 ‘사유의 불능성(inability to think)’에 있음을 지적한다. 사람들이 악인이라 부르는 범죄자도 본래 포악하거나 정신이상자가 아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지시와 명령을 묵묵히 수행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발생한 사건에서도 ‘악의 평범성’과 ‘사유의 불능성’은 도처에서 목격됩니다. 무고한 양민 학살, 시위자에게 무차별 발포, 고문, 공권력의 가혹한 집행, 군대에서의 가혹 행위... 인간의 본질에 대해 근원적인 회의(懷疑)가 든다. 언제든 제2의 아이히만이 나올 수 있다. 평범한 몬스터들은 인간의 내면에 숨어 지내다 적절한 환경이 갖춰지면 밖으로 불거져 나온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공자의 말씀을 떠올린다. 우리 교육의 방향도 지식 전달보다는 사유(思惟)의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뜨거운 가슴보다 머리만 큰 가분수의 몬스터들을 양성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영화 ‘아이히만 쇼’(2017년)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2018년)

Arendt, Hannah (1963). Eichmann in Jerusalem. 김선욱 역(2017).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서울: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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