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고양이' 이야기
초보 집사의 가슴앓이
반려동물하면 개를 떠올리지만, 최근에는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개는 사람과 친근하고 활동적이지만, 조용하고 산책도 필요 없고 대소변도 잘 처리하는 고양이의 장점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바쁘고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현대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는 개보다는 사람을 덜 귀찮게 하는 고양이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반려동물, 그것이 개든 고양이든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는 가족 이상의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도 독립하여 멀리 떨어져 살거나 자주 보지 못하지만, 반려동물과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면서 정서적, 심리적으로 안정과 위로를 얻기 때문이다.
저자는 반려견을 키우고 있지만, 얼마 전에는 고양이를 입양했다. 요즘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사(執事), 즉 고양이를 시중들듯이 살뜰히 돌보며 기르는 사람이 된 셈이다. 이웃집의 어미 고양이가 생산한 새끼고양이가 젖을 뗄 시기를 기다려 입양했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백 살이 넘는 반려견을 케어하는 것도 여러 가지로 번거롭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이유는 따로 있다. 뱀을 퇴치할 목적으로 고양이를 키운다. 농촌에서 한 여름이 되면 식물은 최대치로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다. "여름은 열 게 많아서 여름"이라고 하는 박노해 시인의 짧은 시가 와닿는 이유다. 여는 것은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식물뿐만이 아니다. 동물이나 곤충, 벌레들도 열게 많은 게 여름이다. 특히 농촌에서 뱀은 매우 위협적인 동물로 해년마다 퇴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당이나 텃밭에서 뱀을 보면 공포에 질릴 뿐 아니라 뱀이 나타난 장소에 다시 가기 싫게 된다. 뱀이 사람에게 주는 묘한 공포심이다.
그 뱀을 퇴치하는 천적이 고양이다.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면 뱀뿐 아니라 쥐와 같은 병균을 옮기는 유해성 동물을 퇴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고양이보다 개를 좋아한다. 고양이는 눈매가 매섭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지닌 야수로 생각하다 보니 편안한 느낌을 주지 않아서다.
고양이를 입양하기 전에 고양이가 사람에게 얼마나 유익한 존재인가를 경험할 수 있는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1년 여 전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길고양이가 집에 들어왔다. 측은한 생각에 먹이를 주고 정성껏 보살폈더니 아예 보일러실에 둥지를 틀고 살게 되면서 가족이 되었다. 허약하고 병든 길고양이였지만, 그가 집에 상주한 뒤로 여름철 집마당에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뱀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길고양이는 먹이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문제는 사람이 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 치료를 하기도 어렵고 스킨십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 길고양이가 동네 덩치 큰 고양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다 며칠을 굶더니 그만 집을 나간 뒤로 소식이 없었다(주변 사람들은 '고양이는 죽기 전에 며칠 먹이를 먹지 않다가 주인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죽는다'라고 하는데 이 말이 고양이의 정확한 습성인 줄은 모르겠다).
시골집에 고양이의 부재는 분위기를 휑하게 만들었고 여름이 돌아오면 집마당에서 발견하는 뱀이나 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주인의 품에서 '그렁그렁' 소리를 내는 반려묘를 키워보고 싶었다. 2개월 된 새끼 고양이를 입양하여 가족처럼 돌보았다. 새끼 고양이는 금세 자랐다. 주인의 품에도 잘 안기고 무엇보다 똥이나 오줌을 잘 처리했다. 고양이처럼 위생관리를 잘하는 동물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입양한 뒤 2개월 정도 키우다 보니 정이 들었고 외출하고 집에 온 주인을 대문에서 맞이하는 모습에서는 충성심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반려견과 고양이, 즉 견묘지간은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로만 알았는데 노견(老犬)이 한참 손자뻘 되는 고양이를 한없이 관대하게 대하면서 고양이는 할머니 앞에서 연일 재롱을 부리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반려견과 반려묘가 가족 구성원이 된 이상 가화만사성의 주체는 사람만을 고집할 것이 아닐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
습기가 많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아침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현관문을 여는 소리만 들려도 어디선가 달려와 '야옹' '야옹' 소리를 내던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지만 먹이를 주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고양이 이름을 부르면서 고양이를 찾아보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외부 일정을 보았다. 늦은 오후가 되어도 고양이는 집에 오지 않았다.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밤사이 다른 동물에게 물려 죽었는지, 아니면 누군가 데려가버렸는지 등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소극적으로 고양이를 기다리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찾기로 했다. 무더위를 피해 마을 정자에서 쉬고 계시는 동네 어르신이 '자기 집에 이름표를 목에 건 새끼 고양이가 왔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르신 집에 가서 이름을 불렀더니 헛간에서 숨어있던 고양이가 걸어 나왔다. 집사의 애간장이 탔던 긴 시간이었다. 지난밤에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남의 집에서 자기 집을 찾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었다.
고양이를 잘 키우려면 고양이에 대한 생태를 잘 알아야겠다 싶었다. 유튜브에서 '집 나간 고양이'를 찾는 영상을 시청하고 관련 지식도 찾아보았다. 시선을 끄는 지식은 집 나간 대부분의 고양이는 자기 집에서 20m 거리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고양이는 안전한 곳을 선호하는데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음침한 곳에 숨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새끼고양이가 숨어있었던 곳은 우리 집에서 20-3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저자는 고양이의 집사가 되기 전 고양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고양이가 영물(靈物), 즉 약고 영리한 짐승이라는 것뿐이었다. 시사 상식으로 중국의 등소평 주석이 개방과 개혁을 통한 실용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말한 것으로 잘 알려진 흑묘백묘(黑猫白猫),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의미 정도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집 나간 고양이를 찾는 과정에서 고양이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게 된 것은 뜻밖의 수확이다. 이를 두고 곤이지지(困而知之), 즉 어려움을 겪은 다음에 얻은 지식과 깨달음이라고 하던가. 이번에 알게 된 고양이에 대한 속담도 깊이 새길 만하다. 묘덕부덕부지(猫德婦德不知). 이 말은 일차적으로 '고양이 덕과 며느리 덕은 알지 못한다'라는 뜻이지만, 이차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항상 베푸는 작은 덕은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동안 고양이가 우리 가족과 우리 집을 위해 하고 있는 역할을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고양이가 집을 나간 사이에 그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특히 고양이가 전통사회에서 상징하는 비유적 의미에 대해 공부할 수 있어 좋았다.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로는 십장생(十長生), 즉 해, 산, 물, 돌, 달,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또는 대나무)을 언급한다. 고양이는 십장생의 족보에는 등재될 수 없는 동물이지만, 70세 노인을 칭하는 모(耄)의 중국어 발음이 같아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고양이의 수명은 길어야 20년이라고 한다. 고양이가 70세 노인을 칭한다면, 나비는 80세 노인을 칭하는 질(耋)과 발음이 같다고 한다. 화가들이 고양이나 나비를 소재로 그림을 괜히 그리는 것이 아니다. 옛사람들은 장수와 축수의 목적으로 모질도(耄耊圖), 즉 고양이와 나비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렸다. 지금이야 70세를 살게 되면 장수했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지만, 옛사람들에게 70, 80세는 오늘날의 100세에 해당할 정도로 장수를 누렸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장수를 뜻하는 고양이나 나비를 그림 속의 소재로 등장시키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은 뒤에 저자가 고양이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고양이를 단순히 집에 출몰하는 뱀이나 쥐를 잡는 야수로 대하며 키우는 것과 고양이의 습성과 그의 상징적 의미를 알고 난 후 그를 대하는 저자의 마음과 행동은 분명히 달라졌다. 무지는 무관심이나 방임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고양이가 집을 나간 덕에 고양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고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으로 그와 스킨십할 수 있어 다행이다. 고양이가 집을 나가기 전에는 야수로서 고양이였지만, 집으로 다시 돌아온 고양이는 반려묘로 신분상승을 했다. 더 이상 반려묘가 집을 나가는 일이 없으면 한다. 경험해 보니 집 나간 자식에게서 소식이 끊긴 심정이나 똑같았다. 초보 집사에게 이산의 가슴앓이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보채는 듯한 '야옹' 소리와 안아주면 내는 오토바이 소리 같은 '그렁그렁' 소리가 친근감 있게 느껴진다. 우리 집에서 묘덕(猫德)을 실천하며 천수를 누리기 바란다.
박노해. (2021). 걷는 독서. 서울: 느린 걸음.
이원복. (2015). 조선일보. [일사일언] 장수의 상징, 고양이. 10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