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철현 Aug 08. 2024

회화나무와 쉬나무 이야기

평생학습자로서 선비

공부하는 학자로서 좋아하는 어록이 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공자가 남기신 말씀이다. 공자가 이 말씀을 얼마나 중하게 여기셨는지 공자 사후 그의 제자들이 집필한 <논어>의 제일 앞장에 실렸을 정도다. 이 말씀은 배움의 이유를 압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공자는 배움(學)과 익힘(習)을 동시에 일어나는 작용으로 보기보다는 배움 다음에 익힘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배움은 교사와 학습자 간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지만, 익힘이란 학습자가 주체가 되어 자기 주도적인 반복학습을 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공자의 이 말씀을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 즉 사람다움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자의 마음과 자세, 그리고 보람과 희열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사람다움을 위한 원리를 깨우치고 설파해 온 공자는 70여 년의 삶을 사는 동안 배우고 익히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평생학습의 모범생이라고 할 것이다.


공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옛사람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배우고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고 지속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와 중국 역사 드라마를 보게 되면 사회 지도층이었던 선비(사대부 혹은 양반이라는 표현과도 일치됨)는 집에 혼자 있을 때 책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조선에서는 문관 관료로서 4품 이상을 대부(大夫), 5품 이하를 사(士)라고 하였다. 사대부는 대부와 사를 합친 말하지만, 때로는 문관 관료뿐 아니라 문무 양반관료 전체를 포괄하는 명칭으로 사대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선비는 책 읽는 것을 일생의 업으로 삼았다. 과거(科擧)라고 하는 국가 공무원 채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책을 읽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생을 다할 때까지 책을 읽고 또 읽는 것이 선비의 일이었다. 독서가 평생 직업이었다.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세종은 유능한 인재들을 선발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 즉 오늘날의 대학 교수의 연구년제에 해당하는 제도를 시행하여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선비라고 해서 매일 앉아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공부 안 하고 놀고먹는 사람은 선비 축에 끼지 못했다. 선비의 기본 조건은 공부였다. 그 공부는 오늘날의 지식공부와는 결이 다르다. 성현의 말씀을 좇는 인격 수양 공부였다. 묘지명에도 '현고학생(學生)부군신위'라고 적었다.

'

선비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인격을 갈고 닦는 중 국가의 부름을 받아서는 공복으로 일하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알았다. "때를 만나지 못하면 숨어 살고, 때를 만나면 세상에 나와 벼슬하는 것이 선비의 떳떳한 일이다"라는 을파소(고구려 고국천왕 때 재상)말을 떠올리게 된다. 농사를 짓다 천거되어 국가를 위해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던 을파소야말로 전형적인 선비상이 아닐 수 없다. 선비는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스스로를 수양하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일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자연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그 특성을 인간 세계에 적용하는 데 탁월한 지혜를 발휘했던 옛사람들은 나무 중에서 '학자수(學者樹)', 즉 학자 나무를 지정했다. 학자수는 공부하는 사람이 가까이 심어 놓고 학습을 일깨우는 상서로운 나무다. 영어로는 차이니스 스칼러 트리(Chinese Scholar Tree)다. 그 주인공이 되는 나무는 회화나무다. 우리나라에서는 회화나무로 부르지만, 한자어로 괴목(槐木)이라고 한다. 이 '괴'의 중국 발음이 '홰(huái)'로 들려 회화나무 혹은 홰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괴목은 느티나무를 의미하는데 괴산군(槐山郡)의 군목이 느티나무로 지정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회화나무가 상서로운 학자수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회화나무 가지가 자유분방하게 뻗은 모양이 '학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상징한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디 회화나무 가지만이 멋대로 가지를 뻗겠는가만은 옛사람들은 회화나무에 그 영예를 안겨 주었다. 나무의 가지 뻗음의 모양을 보고 학자 다운 기개 운운하는 것이 재미있는 발상이다. 반대로 회화나무 가지의 자유 분방함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멋대로 뻗은 가지 모양이 곡학아세(曲學阿世), 즉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바꿔 세상에 타협하고 권력에 아첨 혹은 굴복하는 행위로 보았다. 나무 가지의 모양을 놓고이런저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선비들의 높은 사유 세계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회화나무를 놓고 부여된 다른 의미, 즉 호연지기와 곡학아세는 공부하는 사람이 어떻게 처세하고 삶의 지침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가에 대해 교훈을 던져준다.


회화나무에 대한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교차하지만, 회화나무는 중화사상이 팽배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정원수로 가장 선호했던 나무였다고 한다. 주류 계층에 의해 한 번 각인돼 버린 의미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더 강하게 뿌리내리기 마련이다. 회화나무의 의미는 공부하는 선비들이 선호하는 나무를 넘어 벽사(辟邪), 즉 집안에 귀신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나무로까지 확장된다. 회화나무를 집 문 앞에 심으면 집안에 좋은 기운이 모여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인물이 나오며 잡귀신이 감히 오지 못하게 하는 길상목(吉祥木)으로 대우받았다. 회화나무가 얼마나 높은 위상을 차지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은 궁궐 건축에서 왕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만나는 자리에 회화나무를 심었을 정도다.


'인생의 덧없고 헛된 꿈'을 뜻하는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는 고사도 회화나무에서 유래했다. 당나라 이공좌(李公佐)의 전기소설(傳奇小說)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순우분(淳于棼)이라는 선비가 집에 있는 아름드리 회화나무 고목 아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깜빡 잠이 들었다. 꿈에서 괴안국(槐安國) 왕의 사위가 되고, 남가군(南柯郡)이라는 지역의 태수를 지내며 20여 년간 선정을 베풀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섯 아들 모두 높은 벼슬에 오르고 딸은 왕가에 시집보냈다. 태수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눈을 떠보니 그가 누린 온갖 호강들은 회화나무 아래에 있는 개미나라에서 벌어진 꿈속의 일이었다. 인생여백구과극(人生如白駒過隙), 즉 인생은 문틈사이로 백마가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선비가 낮에만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밤에도 독서에 정진해야 한다. 밤을 밝히기 위해서는 기름이 필요했고, 석유가 나오기 전 그 기름은 동식물에서 얻었다. 저자 역시 지금처럼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 등잔에 불을 켜놓고 있으면 심지에 그을음이 생겨 방 안의 공기가 매캐했던 기억이 난다. 그 옛날 매캐한 공기는 더 심했을 것이다. 오래 전의 전통사회에서 대표적인 유지(油脂) 식물로는 유채, 해바라기, 아주까리, 들깨였다. 목화씨에서 얻는 면실유도 기름으로 사용하였다. 나무로는 소나무, 동백나무, 쉬나무가 대표적인 유지 식물이었다. 소나무 옹이 부분의 관솔과 동백기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저자는 쉬나무 열매에서 얻는 기름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다. 알고 보니 쉬나무는 가장 효율이 좋은 기름 나무로 불이 맑고 밝으며 무엇보다 그을음이 적다고 한다. 밤을 밝혀 책과 씨름해야 하는 선비들에게 쉬나무는 최고의 기름 공급원이었던 셈이다. 눈여겨볼 점은 쉬나무도 회화나무와 마찬가지로 집안의 재앙을 막는 벽사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옛사람들은 집안에 들이는 것, 그것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간에 최우선의 기준은 집안에서 재앙의 기운을 물리쳐야 하고, 그다음으로 생활에 효용성이 있어야 한다. 회화나무와 쉬나무는 그 기준에 맞는 나무였다. 잡귀신을 범접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회화나무와 쉬나무는 일생 책 읽는 것이 주업이었던 선비들의 공부에 대한 일념을 집 안팎에서 지켜보았던 나무들이다. 지금도 궁궐, 서원, 사대부의 고택(古宅)에 가면 회화나무가 보호수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수백 년 수령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마을 근처나 뒷산에서는 기름 공급원으로서 쉬나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많이 배운 사람들이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알량한 권력에 빌붙어 사슴을 말이라고 하고 거짓과 위선으로 사리사욕에 눈이 먼 모습을 보게 된다. 회화나무 가지의 자유분방한 호연지기를 왜곡, 변질시켜 세상을 자기 중심으로 재단하고 공동선을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세기말적 현상을 보이는 오늘날, 나무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까지 선비다운 삶을 올곧이 지켜내겠다는 그들의 지조와 신념이 깊이 와닿는 것은 저자만이 아닐 것이다. 선비들은 이사를 가면서 학자수 회화나무와 등불을 밝히기 위한 쉬나무의 종자는 반드시 챙겨갔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이사가면서 반드시 챙기는 물건은 무엇일까 싶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다. 그 기쁨은 인간만이 누리는 삶의 특권이다. 공부가 힘들고 고달퍼도 희열과 기쁨에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늘을 스쳐가는 솔개의 날갯짓도 고맙다는 이 무더운 여름, 회화나무와 쉬나무에서 울어대는 매미 소리는 마치 옛 선비들이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소리 내어 책을 읽는 소리로 들린다.



박상진. (2020). <우리 나무의 세계>. 파주: 김영사.

신동열. (2019). <한국경제>.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남가일몽 (南 柯 一 夢). 10월 7일.

이종민. (2021). <매일신문>. [이종민의 나무 오디세이] 회화나무 있는 집에 큰 인물 난다. 9월 17일.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누군가의 꽃받침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