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간계(反間計)의 덫

항우와 조조

by 염철현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승패는 무기와 병력 못지않게 심리전도 중요하다. 특히 고대 중국에서 전쟁은 군사력의 대결보다 반간계, 즉 적에게 거짓 정보를 흘려 내분을 일어나게 하는 책사들의 지략 싸움에 주목하게 된다. 판세를 바꾼 반간계의 대표적인 사례 두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는 유방과 항우의 초한대전(楚漢大戰)이 한창일 때 유방 진영의 책사 장량과 진평이 항우 진영의 책사 범증을 제거하기 위한 반간계다. 파촉에서 세력을 키운 유방은 점령 지역에서 관대한 정치를 펼쳐 민심을 얻으며 그 위세가 갈수록 강대해졌다. 무엇보다 한신 장군의 대활약으로 항우가 황제 노릇을 하는 초나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변 국가를 평정했다. 초한대전의 전략적 요충지는 영양성과 성고성이었는데, 그때 유방은 영양성에서 눌러앉아 실질적으로 천하를 호령하고 있었다. 유방을 몇 수 아래로 보는 항우는 영양성에 쳐들어가 유방의 세력을 송두리째 뽑아버릴 계획을 세웠다. 유방의 정황은 좋지 않았다. 한신을 비롯한 주요 장수들이 북방 정벌에 가있는 상황에서 항우의 공격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책사 장량과 진평은 유방 진영이 처한 위급함을 넘길 것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아예 항우의 책사이면서 아부(亞父)로 불리는 범증을 제거하기 위한 반간계를 사용한다. 우선 항우 진영에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범증과 종리매 등은 지금까지 많은 공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우가 아무런 논공행상도 베풀어 주지 않아 항우에게 원한을 품고 지금은 유방과 내통하여 초나라를 망하게 만들려고 한다.' 성품이 불같이 급하고 우직한 항우는 거짓정보에 솔깃하여 당장 범증과 중리매를 불러 죽일 것 같았다. 다행히 대장 용저(龍且)가 "전시에는 적이 이간책으로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폐하께서는 범증 군사를 끝까지 믿어주셔야 합니다." 항우의 분노는 가라앉았지만 그렇다고 의심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다. 단순하고 의심이 많은 항우에게 반간계가 먹혀들고 있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항우는 범증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하면서 영양성 공격만큼은 항우 단독으로 의사결정을 하였다. 항우가 영양성을 공격하게 되자 유방 군은 방어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책사 장량과 진평은 다시 반간계를 사용한다. 이번에는 유방이 항우에게 화친을 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영양성을 경계로 동쪽은 초나라가 차지하고 서쪽은 한나라가 다스리는 것으로 하자"라는 요지였다. 항우는 범증을 불러 생각을 물었다. 범증은 "저들은 영양성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화친을 제의해 온 것에 불과합니다. 이 기회에 영양성을 함락시켜야 합니다. 유방의 감언에 속아 대사를 그르쳐서도 안됩니다"라고 말하며 반대했다. 화친이냐 공격이냐를 놓고 결심을 못한 항우는 유방 진영에 사신을 보내 한나라의 실정을 알아본 뒤에 최종판단을 내릴 계획을 세웠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항우는 적의 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장군 우자기(虞子期)를 유방 진영에 보냈다. 장량과 진평은 항우가 보낸 사신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반간계를 성공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았다. 우자기가 영양성에 왔을 때 장량과 진평은 직접 마중을 나와 객사로 안내하여 융숭한 접대를 했다. 장량이 우자기에게 "범증 아부께서는 무탈하시옵니까? 오늘은 무슨 일로 귀공을 일부러 보내셨습니까?"라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엉뚱한 질문을 받은 우자기는 '자기를 범증이 보낸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보면 범증이 한나라와 내통하고 있는가'라는 의심을 하면서, "나는 범증 아부가 보낸 사람이 아니고, 항왕 폐하께서 보내신 특명사신입니다"라고 말했다. 장량과 진평은 "그러면 당신은 범증 아부께서 보낸 밀사가 아니고, 항왕이 보낸 사람이었단 말입니까?"라고 되물으며 부하를 시켜 "이 사람은 범증 아부가 보내신 밀사가 아니고 항왕이 보낸 사람이라고 하니 바깥 사랑채로 모시도록 하라"라고 명령했다. 장량과 진평은 우자기를 바깥 사랑채로 쫓아냈다. 사랑채는 초라하고 가재도구도 형편없었다. 우자기가 "이제 알고 보니 범증과 한왕과 내통하고 있었구나"라는 심증을 굳히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우자기는 입궐하여 유방을 만나기 위해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에 수천 권의 책이 쌓아있는 책상에 흩어진 서류도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우자기가 서류를 흩어보던 중 서한 한 통을 발견했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항우는 지금 팽성을 비워 놓은 채 영양성을 취하려고 원정의 길에 올랐는데 병력은 30만 명 정도입니다. 그러나 항우는 천명을 거역한 사람이니 머지않아 패망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한왕께서는 항복하지 마시옵고, 한신 장군을 급히 불러다가 영양성을 끝까지 수호하도록 하시옵소서. 노신(老臣)과 종리매 장군 등이 이곳에서 끝까지 대왕을 도와 드릴 것입니다. 참, 보내 주신 황금은 잘 받았습니다. 대왕께서 통일전하의 상업을 완수하시거든 이 늙은 신하를 고향의 후백으로나 봉해 주시옵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서한 내용으로만 보면 범증은 한나라가 보낸 뇌물을 받고 유방과 내통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우자기는 그동안 소문으로만 들었던 범증의 내통 혐의를 확인하는 증거를 확보하였다는 생각에 한껏 우쭐했다. 우자기는 항우에게 돌아와 서한을 보여주고 장량과 진평에게 당했던 사실을 보고했다. 범증을 불러들인 항우는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길길이 분노했다. 범증은 "평생 폐하를 보필해 온 이 몸이 어찌 딴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서한은 장량과 진평이 노신을 제거하기 위한 모략입니다. 부디 속지 마시옵소서"라고 변명했다. 항우는 "쓸데없는 변명은 그만 늘어놓시오. 우자기 장군이 영양성에서 이 서한을 직접 훔쳐왔는데, 이것을 어떻게 적의 모략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말하며 노여움을 풀지 않았다. 범증은 "폐하께서 의심하시면 굳이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신의 공로가 적지 않사오니 여생을 고향에 돌아가 살 수 있도록 관대한 처분을 내려주시옵소서. 이 늙은 신하의 마지막 소원입니다"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간청했다. 늙은 범증의 읍소에 항우는 범증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려 고향에 돌아가 살 수 있도록 했지만, 얼마 후 범증은 71세의 나이에 죽고 말았다. 장량과 진평은 반간계를 성공시켜 초한대전 최고의 지략가 범증을 제거했다. 범증이 없는 항우와 장량과 진평이 있는 유방이 벌인 초한대전의 저울추는 한나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중국 후한 시대 조조는 유비와 손권 동맹군과 장강 적벽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북방 출신으로 구성된 조조군은 육지전에서는 강하지만 수전에는 약했다. 반면 오나라 손권의 군사들은 조조군에 비해 열세지만 수전에 능한 강점을 지녔다. 때마침 조조가 전략요충지 형주를 차지할 때 채모(蔡瑁)와 장윤(張允)이 귀순해 왔다. 조조는 파격적으로 채모와 장윤을 수군책임자로 임명하여 수군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게 했다. 이제 손권유비 동맹군은 조조군의 수군마저 세력이 강성해지면 막아낼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


마침 오나라의 장수 주유(周瑜)와 교분이 있는 조조 진영의 지략가 장간(蔣干)이 오나라의 실정을 정탐하기 위해 찾아왔다. 장간이 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주유는, 채모와 장윤의 필적을 모방해서 두 사람이 자기에게 내통하는 서한을 위조하여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주유는 옛날 친구 장간을 극진하게 접대했다.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둘은 잠에 떨어졌다. 먼저 잠에서 깬 장간은 책상에 놓인 편지가 궁금하여 읽어보다 깜짝 놀랐다. 채모와 장윤이 주유와 내통한 편지였다. 장간은 주유가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편지를 옷소매에 넣고 아침 일찍 주유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고 헐레벌떡 오나라 진영을 벗어났다.


장간은 조조에게 큰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조조에게 그 편지를 바쳤다. 조조는 길길이 분노하며 수군을 맡겼던 채모와 장윤을 끌어다 증거로 서한을 내보인다. 둘은 극구 부인하며 억울하다고 했지만 조조는 끌어내어 목을 쳤다. 조조는 서한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반간계의 덫에 걸린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대패하여 겨우 목숨만 붙여 달아났다.


오늘날에도 반간계는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가 최고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상대방의 반간계 덫에 걸려 선거에 패배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대중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공인들은 상대의 제안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참모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에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반간계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나 욕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반면 자기 목표가 확실한 사람, 성실한 사람은 반간계에 강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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