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약속에 의해 돌아간다고 봐야 한다. 사람이 사람과의 약속으로 일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한자 약속(約束)을 자세히 보면 실타래처럼 단단히 지켜져야 함을 암시한다. 약속은 곧 신의와 신뢰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맹약(盟約)이라는 말도 나왔을 것이다. 영국 속담에는 '약속은 천천히, 실행은 빠르게"라는 말이 있다. 지켜야 하는 약속은 신중하게 생각해서 하고, 한번 약속을 했으면 신속하게 지켜라는 말이다.
고대 중국에서 흥미로운 경기가 펼쳐졌다. 그것도 왕 자리를 놓고 겨루는 왕좌의 게임이었다. 폭정을 거듭하는 진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거병한 항우는 초나라 백성의 민심을 얻어 천하를 제패할 요량으로 초나라 황족의 핏줄을 가진 웅심(熊心)을 초나라 왕(초회왕 또는 의제(義帝))로 모셨다. 초회왕은 진나라 수도 함양(관중)을 정벌하기 위해 출전하는 항우와 유방을 격려하는 환송연에서 내기 경기를 제안한다. 함양에 먼저 도착한 사람을 관중왕으로 삼겠다는 제안이었다(중국 고대사에서 관중(關中)은 중요한 지역으로 등장하는데, 사관(四關)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관중이라고 불렀다). 초회왕이 항우와 유방이 선의의 경쟁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성정이 거칠고 폭악한 항우를 몰라도 한참 몰랐다.
유방과 항우가 함양에 도착하는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 유방의 전략은 싸움을 최소화하는 대신에 적들을 달래고 회유하면서 성을 하나씩 점령해 나간 반면, 항우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적을 괴멸시키거나 불을 질러 초토화시켰다. 민심은 점점 유방에게 쏠리고 있었는데, 항우는 민심이란 강력한 힘으로 얻는 것으로 생각했다. 숫제 항우는 초나라에 귀순한 진나라 군사 10만 명을 생매장해버리는 패륜행각을 저지르기도 했다. 반역의 기미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함양 땅을 먼저 밟은 사람은 유방이었다. 초회왕의 약속대로라면 관중왕은 유방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항우는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항우는 함양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관중왕은 자신의 차지라고 생각했다. 난세에는 강한 것이 모든 것을 삼키는 법이던가. 항우를 두려워한 유방은 항우가 관중왕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를 멸망시킨 뒤 항우는 관중왕 행세를 하면서 논공행상을 했는데, 유방을 서쪽 파촉 땅으로 보내버렸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항우가 관중왕 자리를 빼앗은 악덕분자로 보게 되었고, 훗날 민심은 항우가 아닌 유방을 택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