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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우령(金牛嶺)과 잔도(棧道)

인간의 탐욕에 불을 지른 지혜

by 염철현

유방의 책사 여이기(酈食其)는 유방과 그 일행이 파촉(巴蜀)으로 가는 길에 금우령(金牛嶺)을 넘게 되었을 때 그 유래에 대해 설명한다. "진나라 혜왕(惠王)이 촉국을 정벌하려고 했으나 촉나라에는 다섯 명의 신력(神力)을 지닌 역사(力士)가 있어 그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진혜왕은 역사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촉나라를 멸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무쇠로 다섯 마리의 소(牛)를 만들어 놓고, 이렇게 거짓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다섯 마리의 철우(鐵牛)가 날마다 다섯 말(斗)의 황금 똥(黃金糞)을 싼다. 진나라가 오늘날처럼 부유해진 것은 다섯 마리의 철우들의 덕택이다.' 촉나라 왕은 그 소문을 믿고 철우를 훔쳐 오기 위해 길을 새로 만들고 다섯 명의 역사로 하여금 진나라에 잡입하여 철우를 훔쳐오게 했습니다. 진혜왕은 그 기회를 이용해 다섯 명의 역사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고, 그들이 새로 만들어 놓은 길로 촉나라에 쳐들어가 마침내 촉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습니다."


촉나라 왕은 황금을 차지하려는 욕망으로 잔도를 만들었고, 그 잔도는 촉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 여이기에게 잔도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지만, 항우에게 쫓겨나다시피 한 유방이 그 잔도를 다시 이용하여 촉나라 땅으로 가고 있으니 그 심정이 얼마나 울적하고 분노가 하늘에 닿았을 것이다.


이 잔도는 한나라와 초나라가 천하를 놓고 싸울 때 커다란 변수로 작용한다. 장량은 유방 일행이 잔도를 넘자마자 잔도를 모조리 태워버렸다. 잔도를 태워버림으로써 항우에게 유방이 다시는 초나라로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주었다. 그리고 그 암시는 항우는 물론 초나라 장수들이 유방과 한나라 군사들의 침략을 방심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잔도가 불에 타 없어지면서 항우의 유방에 대한 경계심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중에 한신이 한나라 대원수가 되어 본격적으로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나섰을 때에도 이 잔도의 이용가치는 엄청났다. 한신은 군사들을 시켜 잔도 보수를 하는 것처럼 위장하여 한나라 군사들을 속이는 한편,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함양으로 가는 길을 이용하여 별동대를 기습 출전시켜 함양을 점령해 버린다. 천혜의 요새를 지키던 초나라 장수들은 잔도를 보수하는 데 필요한 시간만 계산하면서 방비를 게을리하다 그만 당하고 말았다. 악조건을 이용하여 목표를 달성한 한신의 놀라운 지략이 돋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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