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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하기 Jan 15. 2024

나 딸기를 좋아했구나...




'나 딸기를 좋아했구나... 딸기 생크림 케익도 좋아하는 구나...'



이번 주에 있을 출강에 필요한 급한 서류 준비를 마치고 한숨 돌리기 위해 집 근처 카페에서 충동적으로 주문한 케이크를 포크로 한 조각떼어 입에 넣는 순간 깨달아 버렸다. 


그 동안 비슷하게 생긴 케이크나 디저트들을 수없이 먹어왔다. 

그런데 이걸 이제서야 깨닫는다는 것이 이상했다. 

불과 지난주에만해도 딸기 생크림 몽블랑을 먹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면 지난주에도 난 

'어떻게 잘라야 몽블랑 빵과 크림과 딸기를 가장 맛있는 적절한 비율로 한 입에 먹을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느라 칼과 나이프를 양 손에 쥐고 한동안 빤히 쳐다보긴 했지만 말이다. 




늘 딸기라떼와 커피 중 고민을 하지만 딸기라떼는 따뜻한 음료가 없는 터라 선택은 언제나 커피였다. 

(혹은 차)

아쉬움은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케익을 볼때면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딸기 생크림 케익을 떠올리며

'왜 저 케익과 똑같은 케익은 없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저 있으면 좋을텐데 정도의 아쉬움이었다고 생각했다.


"무슨 과일을 제일 좋아해요?"

라는 질문에 

"과일은 다 좋아하는 편이라.. 하나를 고르기 어렵네요"

라고 답을 하면서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넌 어려서부터 귤을 정말 좋아했어~"

라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라 집어든 귤을 장바구니에 넣는 손은 늘 주춤거렸다. 

그렇게 사온 귤은 끝까지 먹질 못하고 1/3은 버리기 일쑤였다.

'좋아하는 과일인데 왜 그럴까...'

이상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입맛도 변했나보다고 가볍게 넘겨버렸다.


그러다 몇년 전 "귤 자체는 맛있는 과일이지만 나는 귤을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하고는 버리는 귤의 수가 줄어들었다. 

(행사장에서 만나면 두어개 집어먹을 때가 제일 맛있는 것 같다!)


"특별히 좋아하는 과일이 없는 사람"

"과일은 어느 것이나 다 상관없이 잘 먹는 사람"

나는 나를 그렇게 규정지어 버렸다. 



그럼에도 늘 싱싱하면서도 행사가격이 붙으면 주저없이 사오는 과일이 딸기였고,

그렇게 사와서는 바로 씻어 한 통을 다 먹어버리는 과일이 딸기였다.

혹여라도 미처 다 못먹어 한줌이라도 남을라치면 우유랑 갈아버리거나 냉동실에 얼려서라도 가능한한 끝까지 먹고 또 사다 넣어두는 과일이 딸기였다.

비싸지만 비싼만큼 맛있는 과일이 내겐 딸기였다.

(샤인머스켓이 한동안 유행했지만, 그때도 난 그 가격으로 딸기를 하나 더 살래 쪽이었다)

그럼에도 그저 딸기는 내게 "좋아하는 과일 하나"였을 뿐이었다. 



.

.

.





그런데 뻔하디 뻔한 공산품 생크림 위에서 하얀 슈가 파우더를 눈처럼 맞고 올라앉아 있는 딸기 세 알을 보는 순간 3단으로 되어 있는 그 케익을 결제해 버렸다. 


'딸기를 먼저 먹을까, 케익을 먼저 먹을까?'

고민하는 것 조차 즐거웠다.

고민 끝에 딸기를 먼저 집어서 입에 넣고 바로 생크림과 빵을 듬뿍 떼어내어 입에 털어넣었다. 

입 안에서 딸기의 과즙과 크림이 뒤엉키고 이내 만난 빵을 녹여버리더니 목구멍으로 넘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3단으로 된 빵 틈틈히 끼어있는 딸기 조각들이 보이자 

"와~ 딸기가 더 있어!" 라는 감탄과 함께 다시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그렇게 몇 분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케이크를 먹는 일에만 집중했다.

곧 있을 강의 준비도 해야하고, 읽어야 할 책도 쌓였고, 아직 어떤 대학원을 갈지 공부할 과목도 정하지 않아 갈피도 못 잡고 있는 상황임에도 아무래도 상관없다 싶었다. 


지나가다 누군가 봤다면 이상한 사람이다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정말 만화 속 캐릭터가 그러듯이 케익 한 입을 입에 넣고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 감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의 한 구절처럼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나자 딸기가 얹어진 케이크는 더 맛있게 느껴졌다. 



수제 케이크도 아니었다.

화려한 데코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용된 카스테라나 크림도 그렇게 고급진 등급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입이 즐겁고 마음이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아... 나 딸기 좋아했구나.. 

생크림 딸기 케이크도 좋아하는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딸기였구나..'


그 동안 나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이 또 얼마나 있을까?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알수는 없다. 

그저 내가 나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새삼 느끼고는 미안해 졌다. 



나와 화해하고 나를 돌보기로 마음먹은 다음부터 난 나조차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오면 반가우면서도 미안해 진다. 

그 미안함에 빠져 어쩔줄 몰라하던 때도 있었다. 

나에게 미안한 마음에 나만 생각하느라 주변을 돌보지 못한 시기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미안해 하는 것보다 발견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반가움과 안도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지나간 시간에 미안해 하는 것은 짧게 하기로 했지 않은가.


그래서 오늘도 난 "미안했다" 사과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또 하나를 발견했다는 반가움과 기쁨에 행복해 하는 시간에 잠시 머물러 있기로 했다. 





* TMI : 최근에 발견한 또 다른 좋아하는 것들

 - 차가운 음료보다는 따뜻한 음료를 좋아한다.

   (단, 카라멜 프라푸치노와 얼음이 들어간 콜라는 제외한다. 맥주도 하이볼도 찬 것보다는 실온이 좋다.)

 - 자연스러운 코튼 향도 좋아하지만 진한 향수도 좋아한다.

 - 높고 화려한 구두도 좋아하지만 낮은 운동화와 워커도 좋아한다.

 -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을 좋아한다.(정확히 말하자면... 얼굴을 밝힌다.)

 - 선명한 비비드 색은 좋아하지만 원색은 싫어한다. 

   (짙은 보라색, 짙은 마젠타 색, 짙고 어두운 초록색, 짙은 네이비 색, 골드 등 클래식한 가을 색감이 좋다)

 - 파스텔 색은 싫어하지만 솜사탕 색은 좋아한다.

   (수채화 붓으로 그려낸 얇고 투명한 색, 얇은 옷감으로 비치는 감의 연보라색과 민트색)

 - 생각보다 잠이 없는 편이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을 때나 체력이 방전되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 생각과 고민이 많아지면 잠으로 도망가버린다.

 - 의미 없는 농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 물건들을 각 잡힌 모양새로 정리해 두는 것을 좋아하지만 옷가지와 책은 예외다. 

 - 쇼핑을 좋아하지만 생각보다 물욕은 없는 편이다.

 - 서점보다는 도서관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맛의 아이스크림이 몇가지 있을 뿐이다.

   (민트초코, 카라멜맛, 소다나 우유맛을 제외한 아이스크림에는 별 감흥이 없다. 난 내가 체리쥬빌레를 정말 좋아하는 줄 알았다. 먹을 때마다 그 달고도 진한 인공적인 체리 과육을 덜어내고 먹으면서도 말이다.)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처음엔 미안했고, 그 다음엔 놀랐으며, 지금은 반갑다. 

앞으로도 또 몰랐던 나에 대해 혹은 변해버린 나에 대해 발견하게 되겠지. 

그럴 때마다 반갑게 새로운 나를 알아차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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