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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하기 Jan 16. 2024

어떤 계절을 좋아하세요?

아직도 친해지지 않은 나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어떤 계절을 좋아하세요?"


누군가 이렇게 물을 때면 늘 고민이다.


"음... 다른건 몰라도 겨울은 아니예요. 추위를 많이타서 추운걸 정말 싫어하거든요."


내 대답은 늘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좋아하는 계절을 물어봤는데, 싫어하는 계절을 답하다니.

소통강사로써 실격인 답변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난 다른 계절은 몰라도겨울의 그 추운 날씨를 싫어했다. 


온도는 봄이 좋고 분위기는 가을이 좋다.

따뜻한 봄 햇살이 좋고 부드러우면서도 화사한 색감의 꽃들이 좋다.

반면 지나치게 들뜨는 분위기와 꽃가루는 별로다.

가을 길의 은행과 떨어지는 낙엽으로 지저분해진 거리는 싫지만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고혹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약간은 쓸쓸하지만 강렬한 햇볕이 있어 가을도 좋다.

여름엔 내 생일이 있어서 좋다.

각자의 일상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던 이들도 일년에 한 번은 연락을 주는 날이 여름이다.

사계절 모두에 좋아할 이유가 있었지만,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없었다. 


추운 날씨가 싫고, 눈이 와서 지저분해지는 거리와 얼어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도로가 싫었다.

운전을 안 할때는 10cm가 넘는 힐을 좋아했기에 겨울이 싫었고,

운전을 시작한 다음에는 눈길과 빙판길 운전이 무서워 겨울을 싫어했다.

무엇보다 추운 날씨가 정말 싫었다. 








그런데 지난 1월의 어느날 

갑자기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너무 그리워졌다.

일정이 바쁠 때는 일주일에 절반은 새벽 첫차를 타야했기에 새벽공기는 익숙하면서도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공기가 갑자기 그립다니. 스스로도 이해가 되질 않아서 그 마음을 외면했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잠결에 자꾸만 새벽 공기가 코끝을 스치는 것만 같았다.

당시 바쁜 하반기를 끝내고 난 뒤라 몇달간 밀려있던 잠을 몰아서 자던 시기였다.

점심 때쯤이나 되야 느즈막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던 휴식기였다.

그런데도 자꾸만 새벽에 눈이 떠졌다.

마치 "제발 좀 나가!!! 새벽 공기가 맡고 싶다고!!!"라고 무의식이 핏대 세우며 외치는 것만 같았다.


사흘 째 되던날 결국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문을 나서자마자 차가운 바람이 두꺼운 점퍼를 뚫고 온 몸을 감쌌다.

으슬거리는 감각이 느껴지자

"으~~~~~~"하며 몸을 움츠리고 진저리를 쳤다.


마스크 너머로 찬 공기가 폐부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자 마스크를 내리고 더 깊에 공기를 들이마셔봤다.

갑자기 귀까지 올라붙었던 어깨가 내려가고 안쪽으로 굽었던 어깨가 펴지면서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었다.

"아~~~~ 좋~~~타~~~"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들은 사람 없겠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고 집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운동화 바닥 너머로 느껴지는 아스팔트의 감각을 느껴봤다.

마스크를 벗은 볼과 코, 입술에 닿는 새벽공기도 느껴봤다.

생각보다 새벽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까지도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잠을 자고 있던 내가 떠올랐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일정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아침 루틴을 갖겠다고 결심한 것이.

그리고 겨울이 좋은 이유가 생긴 것이. 







여전히 나는 저녁형 인간이기에 미라클 모닝은 어렵다. 

그러나 차가운 겨울의 새벽공기를 좋아하기에 한번씩 이 공기가 그리워 질 때면 새벽에 눈이 떠진다. 

새벽에 알람도 없이 그냥 눈이 떠지는 날이면 새벽 공기에서 에너지를 충전받아야 한다는 신호이기에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얼마 전 한가지를 더 발견했다.

나는 추운 날씨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춥다는 감각에 움츠러 드는 내 자신의 모습이 싫었던 것이란 것을. 


추운 감각에 한껏 움츠러들고 뱃속이 오들오들 떨리는 감각은 어떤 일로 긴장했거나 부당한 상황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부들부들 떨며 참아야 했던 과거 감각과 비슷했었다.

그래서 추운 날씨에 움츠러들고 떨리는 감각이 느껴지면 과거 경험이 떠올라

"추운 날씨는 정말 싫어!!!"라고 외쳤는지도 모른다. 

애먼 날씨 탓을 했던 것이다.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던,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 과거 경험의 조각이 무의식에 아직도 남아 추운 공기를 만날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연상하게 한것 같다. 


이제 그 과거의 조각도 흘려보낼 준비가 되었나 보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지고, 

빙판길의 얼어붙은 도로에서의 운전을 도전이라 여기게 됐으며,

몸이 으슬거리는 감각에 '이번 겨울도 얼마 안 남았네~'라며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코코아는 추운 날씨 속에서 마셔야 더 맛있다.

호빵도, 고구마도, 붕어빵도, 오뎅국물도 다른 계절에 먹으면 그 맛이 살질 않는다. 

한 겨울에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의외로 여름에 마시는 것보다 맛있을 때가 많다. 

겨울이기에 좋은 이유가 이렇게나 많았는데, 왜 그 동안 나는 겨울을 싫어했을까.

아니, 싫다고 생각했을까.


누군가 다시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이젠 정말 한 계절만 고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봄의 싱그러움과 여름의 생기넘침, 

가을의 여유로움과 겨울의 상쾌함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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