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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하기 May 07. 2024

이상하고 유별난 아이

발작버튼이 더이상은 작동하지 않기를



'아, 또..매번 참... 타이밍 못맞춘다니까...'








두 달전부터 준비했던 강의였다. 

그 동안 다뤄오던 방식이 아닌 고객사에서 요청한 대로 따라야 하는 방식이라 더 긴장한 상태에서 강의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오늘 할 내용들을 복기하고 있던 때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처음에는 카톡이었다. 

의견을 주고받다가 성에 차지 않았는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내 무의식은 받지 말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늘 한톤 높은 목소리로 말 중간에 끊으며 

'00엄마한테 들어보니까', '엄마 아는 사람이 얘기하는데'가 대부분인 엄마와의 대화를 나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궁금한 것은 순수한 엄마의 의견이다. 


하지만 

"그래서 엄마 생각은 어떤데?"

라는 내 물음에 돌아오는 말은

"나야 잘 모르지. 그냥 주변에서 다 그렇게 말하니까 그게 맞는거 같아"

이다. 


엄마에게 주변 사람들의 의견과 평판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대화를 마치고 나면 진이 빠지고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마음이 왜 그런지, 어떻게 이 마음을 대해야 할지 모를 때는 정말 답답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처음 마음 공부라는 걸 시작하고 나를 들여다보면서 엄마를 대할 때는 속이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 극에 달했던 것 같다. 

'그래도 소통 강사고, 마음챙김 공부하는 사람인데 내가 먼저 바뀌어야지'

라는 생각에 이런 감정을 누르고 애써 부드럽게 웃으며 말해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마음 속에서 한숨이 나오고 화가 치미는 것을 애써 삼켜내야만 했다.

그때는 내가 그래야 한다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와 화해를 하겠다 마음먹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초등학생 시절 엄마 생일날 아침이었다.

전날 시험성적이 좋지 않아 화난 엄마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던 나는 한번도 해 보지 않은 미역국을 끓여보겠노라 소쿠리에 미역을 불려두었다.

엄마보다 먼저 일어났어야 했는데 그만 늦잠을 자버렸다.

잔뜩 화가 난 채로 불려놓은 미역을 모두 버리던 엄마 뒷모습이 무서워 다가가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난 아직도 엄마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쩔줄 몰라했던 그날 부엌에 서 있었다. 

명상을 하거나 일기를 쓰며 엄마가 떠오를 때면 늘 그날아침이 떠올랐다. 

잔뜩 주눅 들어 눈치만 보던 그날 아침에 더는 나를 세워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 기억과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얘기하고 나면 좀 나아질까?'

싶어 얘기를 꺼내고는 이내 후회했다. 

당신이 당시에 얼마나 화 나 있었는지를 얘기하는 모습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 뒤에 있던 나도 한 번만 좀 봐줘요...'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대신 가시 돋힌 말이 튀어 나갔다. 

그래야 울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결혼해 자신이 아닌 엄마로써만 살아야 했던 사람. 

무뚝뚝한 남편, 모진 시어머니와 시누이들 등쌀, 막내 며느리면서 맏며느리 노릇까지 해야 했던 상황 속에서 친정동생들까지 돌봐야 했던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려서부터 봐왔고 들어왔던 이야기였다.

얼마나 힘들었었는지, 당시 어린 자신이 얼마나 애써왔는지, 얼마나 벗어나고 싶어했는지, 그럴 때마다 왜 다시 돌아와야 했는지...

술이라도 한잔 하는 날이면 이런저런 말들을 푸념처럼 늘어놓곤 하셨다.


그럴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아니었다면, 엄마는 더 행복했을까?'

'내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홀가분하게 떠났을텐데'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이런 생각들은 나를 지배했다. 

이런 생각들은 내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수록 엄마에게는 더 엇나가게 되었다. 


엄마가 나와 동생을 낳고 기르던 20대와 30대를 지나가면서 그 이야기들이 감정적으로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같은 사람으로써, 여자로써 그 삶이 안쓰럽고 측은해졌다. 

그래서 이제 괜찮을 줄 알았다. 엄마에 대한 내 감정이 사그라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마음공부를 하고 나를 들여다 볼 수록 내 안에 더 많은 억울함과 원망, 분노,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나는 남들처럼 가족과 있으면 편하지 않을까, 안심되지 않는걸까'

내가 이상했다.


"넌 참 이상해"

라는 말은 내 발작버튼이었다.


남들과 다른생각을 한다는 것, 자신과 다른 생각과 마음을 갖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비슷하거나 같지 않으면 내쳐질지 모른다는 알수없는 불안감.

이 불안감은 처음에는 방어기제로 내 의견을 고집스럽게 소리높여 말하던 모양새로,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상황에 수긍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언제부터 '잘하지 않으면 언젠가 버려질거야'라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했는지

부모님에게 잘보이고 착한 딸로 인정받는 것이 왜 그렇게도 중요했는지 알수가 없었다. 


언젠가 엄마에게 이 말을 했을 때

"넌 정말 이상해. 왜 그렇게 생각해? 혹시 그것 때문인가..?"

입버릇처럼 나에게 이상한 애라고 말하던 엄마가 어느 날 꺼낸 이야기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갓난아이 시절의 이야기였다. 

비로소 나는 속이 후련해졌다. 

내 실수로 엄마와 떨어져 길을 헤매던 일 때문도 아니었고, 엄마아빠가 장난으로 나를 잔디밭에 남겨두고 반응을 보던 일 때문도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이야기를 듣는 내가 느낀 감정은 후련함이었다. 

이유를 알게 되어 속이 시원한 그런 기분. 




그리고 그 때부터였나 보다.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어린시절의 기억 대부분은 억울함이었다.

동생과 다투고 혼날 때도 억울했고, 좋지 못한 성적을 받고 와서 혼날 때도 나는 억울했다.


동생과 내게 똑같이 아이스크림을 나눠준 것은 엄마였다.

숨겨둔 내 몫을 몰래 훔쳐 먹은 것은 동생이었다.

약올리는 동생에게 화를 내자 돌아온 것은 똑같은 수대로 맞아야 하는 회초리 뿐이었다.

왜 원인을 제공한 동생과 내가 같이 혼나고 똑같이 맞아야 하지? 

한대라도 저 녀석이 더 맞아야 하는거 아닌가?

억울했다. 동생이 미웠다.


80점을 받아 온 나는 틀린 갯수대로 맞아야 했다. 

5개를 틀리면 5대를, 8개를 틀리면 8대를 맞아야 했다.

60점을 받아 온 동생은 꾸지람으로 끝났다.

"걔는 원래 공부를 못했고, 너는 잘하는 애가 성적이 나쁘니 혼난거지"

나름의 논리가 있었지만, 억울했다. 


90점을 받아도 큰 칭찬은 없었다.

반에서 2등을 해도 1등이 아니라 아쉬워 하는 반응에 서운함을 느꼈었다.

매년 받는 학력우수상은 더 이상 부모님에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처음으로 트로피를 받았던 날 버스에서 내리던 나는 맞이해 준 엄마의 시선은 내가 아닌 트로피에 닿아있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더는 공부로 부모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공부를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울기보다는 소리지르고 악다구니를 질렀다.

성적이 나오는 날이면 혼날 생각에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30분 거리를 걸어오며 내내 울던 나였고, 

동생과 다퉈 혼날 때면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소리 내서 엉엉 울었었다.

억울함이 큰만큼 눈물이 많았다.

우는 것이 소용 없다는 것을, 참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중학생 시절부터 나는 울기보단 목소리를 높이고 어긋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학교가 아닌 학교를 선택했고, 부모님이 원하는 진로가 아닌 진로를 선택했으며, 부모님이 원하는 직장이 아닌 직장을 선택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누구나 부러워할 그런 삶을 살거라는 부모님의 기대는 점차 사라져갔다. 

그 즈음 공부를 못하고 말썽을 부리던 동생은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어디다 내놓아도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이 되었다. 












나와 화해하겠다며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그때 내 감정과 기억들이 매맞고 혼난 것 때문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의 평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 내가 기대했던 평가가 아닌 전혀 다른 평가에 지쳐버렸던 것이다.


"누나가 되서 동생한테 그 정도도 양보 못해?"

"조금만 더 하면 100점 받을 수 있을텐데, 왜 공부를 더 열심히 안해?"

"또? 뭐 맨날 아프대니. 조금만 아프면 얘기하고, 어느 정도는 좀 참아봐"

"피아노? 넌 하고 싶은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 쟤(동생)은 안그런데, 넌 왜그렇게 하고 싶은게 많은지"


동생에게 양보하지 못하고 다투는 속좁은 누나.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게으른 아이.

작은 통증도 못참고 아프다는 엄살이 많은 아이.


이런 반응들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만큼 내 기대와는 다른 반응이었기에 억울하고 아팠었다. 


기대한 반응 = 인정 받았다!

기대한 반응이 아니다 = 인정받지 못했다!

아프지 않으려면 =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으려면 = 시도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이런 믿음들이 내게 심어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믿음들은 내가 알아차리기 전까지도 계속 작동되고 있었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고, 매달려 일했다. 일만큼은 노력한만큼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까.

인정받지 못할 것 같다면 시도도 하지 않았다. 피하거나 외면했었다.

그리고 이 경험들은 또 다른 믿음을 만들어 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삶 깊숙이 자리잡고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영향들이 긍정적이었다면 아마 평생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와 화해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도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야 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묻어두고 잊어버리고 외면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끌어내고 들춰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처음에는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주변에 알아달라고 소리지르고 울부짖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소용없음을 알아차리고 다른 방법을 찾았을 때도 여전히 아파서 피하고 싶었다.

일기 쓸 때, 명상할 때 울다가 이 감정이 버거울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숨는다고 시작된 통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잠시 가라앉았다가 조금 스치기라도 하면 다시 시작되곤 했었다. 더 아프게 느껴졌다.


통증을 멈추는 방법은 묵은 상처를 째고 고름을 빼내고 따가운 약을 바르는 것.

인정해야 했고, 처방대로 따라야 했다.


상처를 덮어두면 덧난다. 

아프더라도 꺼내서 약을 바르고 치료해야 낫는다.

그러면 흉터가 남을지라도 통증은 멈출 수 있다.


생각보다 깊은 상처였기에 그 치료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아프다. 흉터가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언젠가 다시 그 상처가 건드려져 통증이 시작될지도 모를 불안감을 안고 살지는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의 내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강하게 자리 잡았던 믿음에서 벗어나는 상황에도 상처를 덜 받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여전히 엄마에게 나는 이상하고 유별난 딸이다.

여전히 우리는 대화를 하다가도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고 과거 상처들이 없어지진 않으니까. 

현재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수 없으니까.


다만, 과거 기억과 감정을 없앨 수 없다는 것, 그 역시 내 삶의 일부였으며, 그 시간을 통해 배운 것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그 기억들은 가치가 생긴다. 

상대의 반응이나 평가에 내가 상처받지 않는 선택을 할 수가 있다. 


모든 것이 내 문제고 내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금, 더이상 엄마의 생각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엄마의 문제니까. 언젠가 그 생각을 바꿔야하는 때가 오면 바뀌게 될 것이다. 

바뀌지 않는다면 아직 그 때가 아닌 거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게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이 지옥이 아니어야 한다. 

내 마음이 평화롭고 평안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바꿔야 할 것은 내 마음이었다. 


오늘도 수십번 오락가락하는 마음에 묻는다.


'어떤 기분이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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