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럴 때가 있다.
도무지 읽히지 않던 책이 갑자기 술술 읽히는 때.
읽히지 않아 책장에 꽂아만 두던 책이 갑자기 눈에 들어와 단숨에 읽어버리는 때.
마치 마른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책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고 뇌리에 박혀버리는 그런 때가 있다.
얼마전 읽었던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가 그러했고, 지금 읽고 있는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 그러하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집중하려 해도 나도 모르게 자꾸만 나의 의식은 과거로 혹은 미래로 향할 때가 있다.
현재의 내 모습이 마음에 안들때 더욱더 그러하다.
일정이라도 많아 몸이 바빠지면 덜 그럴텐데, 일정마저 여유로울 때면 자꾸만 현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친다.
잠이 늘어나고 망상을 펼치는 시간들이 늘어나기도 한다.
그런 시기가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어떤 것을 해도 의욕이 없고 의미를 모르겠던 그런 시기.
어스름하게 동이 틀 즈음에야 억지로 잠을 청하고 오후 늦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을 보내던 시기가 있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느즈막히 잠에서 깨어 몸을 일으킬 때는 죄책감이 들곤 한다.
'아... 아까 일어났어야 했는데...또 늦게까지 자버렸네. 또 하루를 그냥 보내겠네'
이런 죄책감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마음에 들리 없다.
오후 늦게 시작한 하루는 뭘 먹지도 무언갈 하지도 않은 채 멍하니 보낼 때가 많다.
그럴때면 늘 내 의식은 과거나 미래로 향해있었다.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더라면'
'애초에 어제 조금 더 일찍 잠들었더라면'
이런 과거에 대한 후회와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지'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런 미래에 대한 의지를 떠올려 보곤 한다.
그렇게 하루를 과거와 미래 속에서 보내고 잘 시간이 되어도 잠은 오질 않는다.
오래 잔 탓도 있겠거니와 제대로 오늘 하루를 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뒤엉켜 다시 머릿속이 엉망진창인데 잠이 올리 만무하다.
"목표를 크게 구체적으로 잡아라"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날짜와 함께 현재 진행형으로 적어두면 목표 달성이 수월해 진다"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라"
"상상하라. 실제인 것처럼 생생하게 상상하라. 그러면 현실이 된다."
어떻게든 다시 시작해 보려 마음을 먹고 펼쳐든 자기계발서나 영상 속에서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는 이러했다.
한번 해 보기도 했었다.
미라클 모닝, 스몰스텝, 명상 등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들 대부분은 3일을 넘기기 힘들었다.
그리고 또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상황에 좌절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실망할 일도 상황에 좌절할 일도 말이다.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좋은 일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
더 행복하고 싶고, 더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고, 더 풍요롭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일도 일어날리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뭔가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다시 망설이고 주저한다.
이럴 때는 정말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곤욕이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모든 것을 이룬 시점에 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또 미래 속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을 살아야 한다.
지금이 모여 내가 바라는 미래가 될테니 말이다.
이 역시 머리로는 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 변화된 행동을 하느냐 마느냐이다.
나에게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트리거가 책과 사람이었다.
그래서 읽히는 책이 중요해 졌다.
읽으려 애써도 읽히지 않는 책은 아직 때가 아닌 책이라 여기게 되었다.
마음 가는 키워드 대로 집어들었을 때 읽히는 책, 마음에 와 닿는 구절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게 하는 그런 책. 되뇌이면서 나에게 적용해 볼 수 있는 그런 책들은 조금씩 지치고 무기력했던 마음에 에너지를 보태주고 있었다.
함께하는 이들이 늘어날 수록 이 에너지는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현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전히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오가는 시간이 있지만, 현재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그 즈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책이 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즈음 일상에서 자꾸만 현재에 머물러야 할 상황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과거 후회되는 상황을 떠올리거나 혹은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라던가, 그때는 그랬어야 했어, 혹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왜 그랬을까? 다시 비슷한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야할까? 등을 상상하고 있을 때 말이다.
그럴 때 순간 적으로 시야가 흐려지거나 옆 차선의 차가 위협적으로 다가오거나 신호가 바뀌는 등의 가슴 철렁하는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마치 "지금에 집중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멍하니 숏츠 영상을 돌려가며 의미없이 보고 있을 때면, 갑자기 조용하던 단지가(함께 동거하는 15살 고양님) "애옭"하고 불러준다. (참고로 이 녀석은 조용한 편이며, 정말 필요한 것이 있을 때가 아니면 나를 찾지 않는다. 안는 것도 쓰다듬는 것도 오로지 자기가 허락한 순간에만 즐기는 독립적인 녀석이다. 저럴 때는 곁에 가 보아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부른 것이다. 뭔가를 바라지 않고. 그래서 더 신기한 것일지도.)
이런 일들이 있을 때면 순간 정신이 번쩍들면서 지금에 집중할 수가 있게 된다.
좋아하는 가수의 인터뷰에서도 "그냥 지금에 집중해야 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정말 끌어당김이 있는건가 싶은 순간이다.
이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을 산다는 건, 지금에 집중하고 현존(現存)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어떤 기분일까?
뭐 이런 의문들 말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는 행동들이 정말 현존하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의문일지도 모른다.
즉, 정확한 내 의문은 "나는 지금 현존하고 있는가?"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현존하는 순간순간들을 찾아보고 있다.
그리고 기록도 해 보고 있다.
이 기록 역시 더욱 더 현존하기 위해서 시작하는 것이다.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지금" 그리고 "순간"에 집중하는 상황과 그 때의 느낌, 마음, 생각 등을 기록하며 내 마음을 다독여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