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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하기 Jan 12. 2024

나는 고민이 있을 때 잠을 잔다.

불안과 동거 중

우웅

철컥

부웅

조용한 골목길에 쓰레기 수거차가 들어서고 요란한 소음이 들려온다.

아.. 또 새벽이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를 넘겨 어느새 4시가 다 돼간다.

작년부터 시작해 이제 세 자리 방문자 수를 보이는 블로그와 얼마 전 새로 개설한 카페를 들여다보고 내일 있을 강의안을 한번 훑어보면 이 시간이다.

아직도 눈이 말똥말똥하다.

6시에 집에서 나가야 하니 지금 자도 한 시간 남짓밖에 잘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잠을 포기해 버렸다.


기업과 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일정을 받게 된 뒤로 요 몇 년간 정체기였다.

생각보다 세게 찾아온 번아웃을 인정하는데 몇 년

이를 받아들이고 나를 다독이는데 몇 년을 더 보내야 했다.

생계가 있으니 강의를 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건강상의 이상으로 수개월간 일을 멈췄던 적이 있어봐서 안다.

프리랜서들은 한번 일을 쉬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일을 하면서 번아웃을 극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 괜찮아질 만하면 한 번씩 사건사고가 생긴다.

그때마다 일희일비하지 말자 마음을 다잡아도 반응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완전히 극복했다 말하기는 힘들다.

그저 이제는 균형을 맞추려는 것뿐이다.

일과 타인에게 100% 에너지를 쓰던 것 중 일부를 내게도 쓰기 시작했다는 것과 온전히 나로 살아가는 내 삶 위한 노력 말이다.

내가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불안정한 마음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됐던 탓일까?

괜찮다가도 한 번씩 불안이란 녀석이 스리슬쩍 고개를 쳐올릴 때면 이렇게 잠이 오질 않는다.

또 반대로 잠을 자면 일어날 수가 없다.

아니 정확히는 일어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예전에는 그냥 잤다.

혹은 그냥 잠을 포기했다.

이유나 원인 따위 생각해봐야 머리 아플 뿐, 어차피 힘들다는 것일 테니까 라며 소홀히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고요해진 새벽 찬찬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때론 눈을 감고 깊게 호흡을 하며 소위 명상이란 것을 흉내 내 보기도 한다. 때로는 무작정 메모장을 열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적어 내려간다.

그러다 보면 쓰윽하고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최근 마음에 걸렸던 대화나 상황들, 잘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결과들, 아쉬웠던 일이나 관계들, 생각만 하고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한 계획들.

이런 것들이 떠오르면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말을 건넨다.

그랬구나. 괜찮아. 어쩔 수 없던 거였잖아. 다음에 실수를 줄이면 되지. 더 잘할 수 있어.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해 보자. 일어나지 않은 앞일을 걱정하며 쓰기엔 내 에너지가 아깝잖니. 잘하고 있어. 괜찮아. 그래도 돼.

이렇게 되뇌면서 조금씩 굳어져 올라간 어깨에 힘이 빠지고 뻣뻣했던 목 근육이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껴본다. 꽉 다물었던 턱에도 힘이 빠지면서 입술 주변의 근육들도 이완이 된다. 그러고 나면 조금씩 나른해지면서 잠이 오곤 한다.

혹은 생각이 정리되면서 지금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엔 일주일 중 2-4일 정도 강의를 나간다.

전국 방방 곳곳을 누비고 다니다 보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생기가 돈다.

사주팔자에 역마살이 2개라더니 맞는 말인가 보다 싶다.

그러다가 집에 들어와 쉬는 날이면 하루고 이틀이고 꼼짝없이 잠을 잔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마냥.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거짓말처럼 눈 주위와 몸이 개운하다. 어질러진 집안을 보면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무언갈 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생겨난다.

잠을 자면서 놓쳤던 메일이나 톡에 일일이 답을 보내면서 늦은 것에 대한 사과를 하지만 죄책감을 가슴에 담아두지 않는다. 정중히 진심으로 사과하고 상대측에서 괜찮다 답변이 오면 그와의 대화와 업무에 최대한 집중한다.

집안을 어질러놓고 잠만 잔 것에 대한 탓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는다.

이 집은 나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공간이다.

지금 내게 더 필요한 것을 했을 뿐이니 집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친구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자신들이 아끼는 내가 수면부족으로 퀭한 얼굴을 한채 그들과 브런치를 먹거나 술 한잔을 기울이는 것을 원치 않아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피곤 해하고 당장 내가 필요하다는 sos에는 무조건 달려가겠지만 말이다.

고민이 있거나 불안이 엄습해 올 때 나는 그냥 잠을 잔다. 가능한 한 길게 오래도록.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을 나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말이다.

이것이 내 충전방법 중 하나다.


사람은 누구나 충전이 필요하다. 하물며 휴대폰도 매일 충전을 하건만 똑같이 매일 혹사시키는 내 몸과 마음은 왜 충전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를 깨닫고 난 뒤 난 충전하는 방법들을 배워나가고 있다. 내게 꼭 맞는 충전방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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