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by 하유미




참담한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다. 납득되지 않는 상황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절실히 매달릴 필요가 있었다. PESD(Post Election Stress Disorder)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사회화된 인간은 비슷한 데가 있는지 나만 상처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기대 본다.


평소 잘 듣지도 않던 클래식 음악에 홀린 듯 마음이 끌렸다.

가사도 없고 해석하기가 어려운 불친절함이 오히려 좋았다. 지금은 번듯이 포장된 친절 따위 받고 싶지 않다. 있는 그대로 날 것의 위로가 필요하다. 논리와 이성은 사라졌고 감정과 감성만이 막 내린 축제장에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다.


세상 모든 음악 중에 단조 곡만 생생히 살아있는 듯하다.

베토벤의 월광을 달려본다. 달이 녹아 뚝뚝 떨어진다. 어느 다정한 이에게는 달샤베트의 재료가 될 것이건만(*) 베토벤이 녹인 달물은 찢기고 갈라진 마음 틈으로 스며들어 조용히 고인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처럼 넘실대던 달물은 마지막 한 방울에 임계점을 넘어 틈을 뚫고 벽을 부수며 쏟아져 내린다.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달물에 몸을 맡기고 한참을 떠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종소리가 들려온다.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이다. 왼쪽 오른쪽 번갈아 한음씩 때리는 또랑한 유리 종소리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이 가냘프다. 그러나 끊임없이 날아드는 음표들의 집합은 결코 약하지 않다.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만큼이나 강하게 느껴진다.


종소리가 끝난 지점에서 바흐-부조니의 샤콘느가 시작된다. 달물에 젖어 찰흙처럼 물렁해진 몸뚱이를 할퀴며 사정없이 쳐낸다. 살점들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핏물이 맺힌다. 핏물은 흐를 겨를도 없이 튀겨 날아가고 영혼은 산산조각이 난다.


가루가 될 때까지 마구 부서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지상의 음악이 아닌 천상의 소리가 들려온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에 이르렀다. 죽는 순간에 마주한다는 주마등을 경험한다. 그동안 억눌렀던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서 한꺼번에 밀려와 덮친다. 집어삼킬듯한 파도 위에 올라타 이리저리 휩쓸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발은 지상에서 완전히 떨어져 천상을 딛고 있다. 거기에 이르러서 위로를 받는다. 지상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가치 있는 것은 다 사라졌다. 마음이 암울해진다.


당분간 뉴스를 보지 않기로 했다. 며칠이 될지 몇 달이 될지 알 수 없지만 희망을 가지려 억지로 마음을 추스르지 않을 것이다. 감정이 다 사라질 때까지 절망하고 침울해할 것이다. 제 상처를 핥으며 잔뜩 웅크린 짐승이 될 것이다.

연주가는 한 음을 치기 위해 구 할의 여백을 둔다. 그 여백에 일 할의 터치가 더해지는 순간 한 음이 완성된다. 그렇게 한 음씩 쌓으며 한 곡을 완성한다. 한 곡을 감상하기 위해 구 할의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스스로를 기다릴 것이다.

어느 날 단조 곡만 아니라 장조 곡도 다시 들릴 때까지.



(*) 참조 : 백희나 작가-달샤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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