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을 이기는 방법

by 하유미




원래는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서 아침잠을 더 자려고 했다. 지난밤 한잠 중에 아이가 안방으로 들이닥쳐 눈이 아프다고 눈물을 짜는 바람에 세 식구 모두 잠을 설쳤다. 회사로 학교로 가야 할 곳이 있는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다지만 내가 침대에 다시 못 누울 이유는 하나도 없으니까.

반쯤 침대의 유혹에 넘어간 눈꺼풀로 현관에서 아이를 배웅하고 있는데 집안에서 벨 소리가 났다. 아이가 누가 왔나 보다고 할 때도 틀어 놓은 음악소리라고 무심히 대답했는데 인터폰을 보니 정말 아파트 공동현관에서 누가 우리 집을 호출하고 있었다. 아침 8시에.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울리는 벨소리는 시한폭탄과 같은 초조함을 일으켰다.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어제 일을 훑었다. 남편이 예매해놓은 공연 티켓을 배달하러 왔었는데 하필 내가 없을 때라 수령하지 못했다. 오늘 오전 중에 다시 방문하겠다고 한 것이 기억났다. 그것이구나. 다행히 문을 열러 가는 열 발자국 안에 의문의 폭탄을 해체했다.

근데 왜 심장이 벌렁거리는 기분이지? (가끔 내 심장은 많은 것을 예감하는데 흔히들 이런 걸 육감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그 뒤로 일어날 연쇄 사건들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걸 속도 느린 나의 컴퓨터-뇌-보다 심장이 먼저 알아챘던 것이다.


아이가 계단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배달원과 맞닥뜨려 시키는 대로 기기에 전자서명을 했다. 사인을 하며 흘깃 복도 창문을 내다보니 하늘이 우중충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우산 없이 학교를 간 아이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휘갈기듯 서명을 하고 날씨를 검색해보니 오후에 비가 잡혀 있었다. 곧바로 전화를 걸어 아이에게 집 쪽으로 다시 오라고 하고 우산을 들고 서둘러 내려갔다. 멀리 가지 않았던지 공동현관을 얼마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 만났다.


“엄마, 그러고 왔어?”


아이 눈길이 내 잠옷에 꽂혀 있었다. 집이 2층이라 계단으로 얼른 갔다 와야겠다고만 생각하고 공동현관을 벗어나면 마당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한 것이다. 손짓으로 대꾸하며 다급히 아이를 보내고 집으로 피신했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은 것에 한 숨 돌리면서 식탁을 치우고 세탁기를 돌리려고 빨랫감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이번엔 전화가 울렸다. 아직 잠에서 말끔하게 깨지 못한 시간대에 전화까지 걸려오다니. 요란한 구급차 사이렌 같은 소리에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엄마, 나 안경을 안 가져왔어. 선생님께 연락하니까 늦어도 다시 가져 오라셨어. 옷 갈아입고 육교 쪽으로 와줄 수 있어?”


아까 엄마의 차림새에 충격받았던 아이는 ‘옷 갈아입고’를 강조하며 안경을 갖고 와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리 허락을 받았다지만 지각이 걸린 위기의 순간, 어릴 때 봤던 어린이 영화 주인공들처럼 ‘파워 레인저!’를 외치면 순식간에 옷이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옷을 되는대로 걸치고 뛰쳐나갔다. 옷 갈아입는 동안 아이가 거리를 좁혀온 덕에 놀이터에서 만나 안경을 건넬 수 있었다.


벌써 두 숨 째 돌리며 집에 들어서다 거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띈 영문을 지금도 모르겠다. 3월이 넘도록 치우지 않고 이대로 좀만 더 뭉그적대다 트리를 좀 일찍 장식했다고 우길까 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었으면서 몇 달째 시야에 걸리적거려도 아무렇지도 않던 티눈이 하필 오늘 딱 이 시간에 존재감을 발할 건 뭐란 말인가. 할 수 없이 바람은 바랬던 것으로 끝내기로 하고 창고에 트리를 치울 박스를 가지러 갔다.


창고 문을 열자 휘발성 냄새가 코를 찔렀다. 며칠 전에 세제를 가지러 갔을 때도 이 냄새가 나서 그때는 어디서 페인트칠을 하나보다 생각하고 말았는데 오늘 또 그런 걸 보면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곳저곳을 들춰보다 트리에 버금가는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고 굳어버렸다. 귤 박스였다. 한 달 전 아니 두 달 전, 언제 샀던 건지 명확하지 않은 귤 박스 안에 귤이 몇 개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녹아내려 즙이 된 아이, 주황색이던 표면이 하얗게 질려버린 아이, 말라붙어 돌이 된 아이, 실험실에서나 볼 법한 곰팡이 균사체로 도포된 아이 등등. 박스 안은 갖가지 모양으로 썩은 귤로 엉망이었다.

고무장갑을 끼고 한 개씩 쓰레기통으로 옮기면서 언젠가 봤던 기사가 생각나 괜히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한 대학에서 발생한 집단 폐렴의 원인이 실험실 안에 있던 썩은 동물사료에서 발생한 곰팡이 균이었다는 기사였다. 곧바로 쓰레기를 분리수거장에 버리고 왔다.


잇따른 사건을 해결하느라 세 번씩이나 들락거리며 바깥바람을 쐬었더니 천근만근 같던 눈꺼풀이 이른 봄날 풀리듯이 가벼워져버렸다.

설쳐댄 탓에 기운이 빠져 커피 한 잔을 내려 놓고 어제 읽다 만 책을 들었다.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란 책인데 14명의 철학자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낸 책이다.


음악은 심장의 보편적 언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고 있던 음악소리를 키웠다. 베토벤 소나타 30번의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임동혁의 손끝에서 그려진다. 요즘 내 상태는 이 멋진 피아니스트와 바람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침 형 인간이지 못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침대 밖으로 한 발을 내딛는데 수많은 철학적 사고를 갖다 붙이는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로마 황제조차 힘들어했던 아침잠을 나는 오늘 이겨냈다. 물론 마르쿠스가 깨달았듯이 침대 밖으로 나갈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의무감으로 해낸 것이긴 하지만.


그치만 뭐 어떤가. 나같이 평범한 한 인간은 그렇게라도 해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침대에서 나오기 힘들 때 대철학자처럼 ‘나는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만 한다.’고 외칠 순 없어도 ‘나는 엄마로서 주부로서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도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것을 오늘 몸소 증명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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