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중 목이 말라 잠이 깼다. 물 마시려고 나왔는데 하필 정수기가 탱크 물을 빼내며 자동세척 중이었다. 탄산수라도 꺼내 마실까 싶어 냉장고 쪽을 보다가 싱크대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물병 두 개를 발견했다. 아이가 오늘 학교에 개인 식수로 가져갔던 건데 저녁 설거지 때 놓쳤었나 보다. 흔들어보니 두 병 다 아침에 넣어준 그대로 물이 꽉 차 있었다. 물병을 열어 물을 한 잔 부어 마시고 아이 방으로 갔다.
‘오늘 물도 한 모금 못 마실 정도로 애쓰고 왔구나.’
멀찍이 차낸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나서 머리를 한참 동안 쓸어 주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코로나 시국에 식이란 식은 모두 생략돼버렸다. 그런 영향인지 입학식 날 아침까지도 당사자는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어 보여 오죽하면 집을 나서는 등에 대고 초등학교로 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덤덤해 보이던 녀석이 평소 같으면 가뿐히 해치우고 왔을 물통 두 개를 고스란히 가져온 걸 보니 내 생각만큼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나 보다.
천둥벌거숭이 같았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얼마 전 봤던 과학 기사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는 순간에 꿈을 꾸거나 과거의 기억을 회상할 때 보이는 뇌파 패턴과 유사한 뇌 활동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 꼭 죽지 않더라도 그만큼 극적인 순간 인간이 주마등처럼 기억을 훑는다는 건 사실일 확률이 높다.-
초등학교 입학 후 담임 선생님들에게 매년 전화를 받았다. 하나같이 주의를 요망한다는 선생님들의 부탁 사항은 참으로 다양했다. 수업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돌아다닌다,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해서 수업에 방해가 된다, 개인 물건을 심지어 양말 따위도 벗어서 자꾸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꾸중을 해도 소용이 없다 등등. 그 바람에 아이를 대신하여 나는 신학기만 되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입맛을 잃는 신학기 증후군을 겪었다.
요즘도 가끔 저녁식사 때 반찬이 심심하다 싶으면 그 시절 행적들을 밥상 위에 올릴 때가 있다. 셋이서 농담으로 씹고 뜯다 보면 새삼 그런 일들이 있었나 싶게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4학년 때 평생 잊지 못할 선생님을 만났다. 학기초 상담전화에서 학교생활을 지레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키시며 하신 말씀을 잊지 못한다.
'목소리가 커서 발표도 잘하고 민기의 기발한 생각 덕분에 수업이 풍성해져서 좋아요.'
난생처음 듣는 말이라 생경했다. 작년까지는 어디까지나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지적받던 행동들이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고 존중해주는 선생님을 만나고 아이는 많이 달라졌다. 자연스레 자신감도 생기고 수업 시간에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 현생에 로또 당첨 대신 우리 선생님을 만난 것만 같았다.
그 뒤 고학년이 되고 이사를 하게 돼 전학이라는, 어쩌면 본인에게는 힘들었을지도 모를 일도 아이는 제 나름으로 잘 헤쳐 나갔다. 한 날 선생님께 전학한 학교에서는 어떤지 궁금하다는 안부전화가 왔다. 그날 처음으로 이 세상에 ‘스승의 은혜’라는 단어가 왜 존재하는지 이해했다.
이렇게 4학년 때 선생님만 떠올리면 자꾸 말이 길어진다.
입학 다음 날 자기소개서를 써가야 했다.
내가 ‘부모가 내 아이에게 바라는 고칠 점’ 항목에 ‘없음’이라고 쓰자 아이는 ‘올해 이루고 싶은 일’에 ‘공부 잘하기, 건강하기, 친구 많이 사귀기’라며 화답했다. 눈치껏 공부 잘하기를 첫 번째로 적는 요식행위를 할 정도면 중학생이 될 준비는 잘 마쳤다고 믿고 싶다.
중학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일이 뭐냐니까 첫 번째로 급식 질이 향상된 것을 꼽았다. 오늘은 삼계탕이 죽여주게 맛있었다며 제 방으로 들어가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 그 기운을 게임 속 상대방을 죽이는 데 쏟고 있다. 내가 공부를 대신해줄 수도 없고 친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먹고 키나 크라고 입에 치즈를 물려주고 우유를 놓고 나왔다.
식탁 위 오늘 가방에서 꺼내 놓은 물병을 들어보니 텅 비어있다.
그래, 그만하면 되었다.
아들아 입학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