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의 변

by 하유미




평소 청소를 잘하지 않지만 정리는 제때 하는 편이다. 애초에 어지르지 않음으로써 청소할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고단수라고나 할까. 가끔 방문하는 손님들은 집이 단정하다고 말하는데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 발밑으로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나 욕실 바닥에 타일 문양 인체 하고 있는 머리카락들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주 째 머릿속이 오랫동안 청소 안 한 우리 집 거실 모양새다. 반짝 떠올랐다 사라진 생각 부스러기들, 미처 삭이지 못한 감정 찌꺼기들이 저들끼리 뭉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있다. 글로 다듬어 제자리를 찾아 주어야 하는데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아 방치된 탓에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때마침 브런치에서 ‘작가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문자가 날아와 숙제 안 한 걸 들킨 학생처럼 뜨끔했다.


일정기간 글을 쓰지 않으면 어김없이 심적 변비증이 생기는 건 왜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청해서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일까?

좀 더 단순하게 질문을 뒤집어 봐야겠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쓴 글이 50 편정도 되었을 때 글을 쓰는 기분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그 글 말미에 100 번째 글을 쓸 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글쓰기가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었다. 목표치를 달성한 지금 어떤가. 글쓰기가 나아졌기는커녕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마저 헷갈리고 있다.


맨 처음 글을 쓴 계기는 가족의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육아를 하며 울고 웃었던 장면을 마음속에 저장해두었다가 아이가 잠든 깊은 밤 꺼내어 글로 되새김질을 하곤 했다. 아이는 글 속에서 나날이 성장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갔다. 부모가 되어 서툰 첫걸음을 내디뎠던 떨리는 순간부터 그 후 겪은 좌절, 기쁨, 싸움과 화해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성장 일기로 남았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건 블로그를 만들면서였다. 우연히 시작한 글쓰기 수업이 끝나고 글쓰기를 놓지 않기 위해 시작한 활동이었다. 가끔 내 글이 재밌었다는 댓글이라도 보는 날엔 손가락이 신바람이 나서 노트북 위를 내달렸다. 글을 쓸수록 글 솜씨가 계속 향상될 줄 알았는데 실상은 오히려 내리막길이었다. 손가락이 아우토반을 미끄러질 땐 언제고 이제는 한 문장마다 턱에 걸려 요지부동이기 일쑤였다. ‘다음번 글도 잘 써져야 할 텐데’ 라며 주문받지도 않은 설레발을 사발 째 들이킨 탓이다.


사실 저런 고민은 작가들이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작가라면 글로 먹고살거나 벌이와 상관없더라도 매일 혹은 꾸준히 쓰는 사람이어야 마땅하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고 글 쓰는 취미를 가진 사람 정도 되겠는데 문제는 작가의 스트레스를 내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아무도 나에게 글을 잘 쓰기를, 계속 쓰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글로 누구에게 빚을 지지 않았기에 채무감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다. 취미활동에 왜 스트레스를 받는단 말인가. 그럼에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글을 쓰고 싶지만 잘 쓸 자신이 없어 망설이게 되고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어떻게든 써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좀 더 솔직해져 보자. 나는 이미 이 모순의 근원을 알고 있다. 오래전에 마음속 깊숙이 봉인해 묻어 둔 어릴 적 꿈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글로 밥벌이를 하거나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일찌감치 자신의 능력치를 저울질해본 영악한 내 뇌는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실패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패배자가 될 용기가 없어서 나는 게으른 자가 되었다. 지금 겪고 있는 스트레스는 아무리 외면해도 내 무의식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은밀한 욕망이 자신의 존재를 알려오는 입김 같은 것이다. 게으른 자여, 패배자가 되어 보라며 뜨겁게 불어오는 영혼의 바람.


이제 질문을 바꿔본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작가가 되고 싶은 걸까?

그걸 잘 모르겠다. 내가 쓸 수 있는 건 오직 내가 겪은 일뿐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글을 빚어내는 능력은 없다. 내 이야기는 상처와 감정 따위를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두어 발효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이다. 사실 누구나 마음속으로 이런 과정을 겪는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마음으로 쓰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단지 나는 그걸 글로 적을 뿐이다.

남들도 다 겪는 일, 남들도 다 아는 이야기밖에 쓸 게 없는 작가라면 입장이 너무 궁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두렵다.


독서반 친구님께서 하신 말씀이 자꾸 떠오른다.


“글을 쓸 자신도 없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책을 내지는 않을 거예요. 종이 낭비하면 나무한테 미안하잖아요.”


나무에게 빚을 져도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덜 수 있을 만한 글로 내가 책을 낼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마음이 더욱 흐려진다.

50편 자축 글을 신나게 써 내려갈 때 그 뒤로 두 배의 글을 쓰고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고민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지금도 영혼의 밑바닥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욕망의 입김을 그저 맨몸으로 맞으며 버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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