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감정 노동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감정 노동에 지쳤다.

by 하유미





(혹시 이 글을 읽을 독자 분께 문단을 나누지 않아 읽는데 어려움을 드린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논리 없이 오직 감정으로만 쓴 글이라서 그렇습니다.)


수초가 무성한 토기 어항에 물을 한 바가지 부었더니 가라앉아 있던 찌꺼기들이 한꺼번에 솟구쳐 올랐다. 한번 떠오른 침전물들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물속을 부유했다. 물고기들은 입에 들어가는 것이 먹이인지 똥 인지도 모르고 입을 한껏 벌려댔다. 엉망진창이 된 물속을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다.

언제 마음이 조금 고장이 났다는 걸 알았을까. 코로나 확진 후 자가 격리 해제 이틀 만에 남편이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집에 들어왔을 때? 남편이 다시 허리가 나가 디스크 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싣고 갔을 때? 치과에서 어금니마다 잔금이 갔다며 평소 너무 이 꽉 깨물지 말고 힘 빼고 있으라는 말에 어이없이 눈물이 핑 돌았을 때부터였을까?

전혀 다를 게 없는 일상이었다. 남편은 지극히 남편답고 아이 또한 더없이 아이다웠다. 이상한 건 내 쪽이었을 것이다. 분탕질이 된 속을 드러내지 않고 여느 때처럼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는데 날이 지날수록 마음이 정리되기는커녕 도리어 깊이 파묻혀 잊고 있었던 온갖 감정들까지 끌려 나와 분탕질에 합세했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났다. 시댁에서 점심을 먹다 회를 몇 점 넘기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고 계속 얼굴을 살피시던 어머니께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집을 뛰쳐나왔다. 그길로 터벅터벅 걸어서 멀지 않은 친정으로 갔다. 혼자 온 나를 이상히 여겨 남편과 아이를 찾는 엄마에게는 머리가 아파서 좀 누우려고 먼저 왔다고 둘러대고 방에 들어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나중에 내가 집으로 돌아간 뒤 두 어머니들께서 긴긴 통화를 했다고 전해 들었다.

결혼생활 내내 단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두 어머니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그날 이후로 걱정과 충고와 다독임의 메시지가 글을 쓰는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 말들은 나비가 꽃에 잠시 앉았다 가는 것처럼 마음에 붙었다 쉬 떨어져 날아가 버렸다.

무엇이 내 마음에 물 한 바가지를 부었을까.

결혼생활 15년을 돌아보면 부단히 한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 애쓰며 산 기록이다. 내 우물에서 나와 다른 사람의 마음속 우물을 팠던 시간들이다. 때론 삽질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부부는 서로의 마음속에 이해의 우물을 평생 동안 파기로 공식적으로 서약한 유일한 타인이니까, 그런 생각이 주는 책임감은 엄청나게 무거운 것이었다. 그건 어찌 보면 고된 감정 노동과 같은데 그런 셈을 잊고 살던 내게 갑자기 번아웃이 온건지도 모르겠다.

결혼 후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임무는 남편을 잘 돌보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굉장히 편한 팔자라고 한다. 시댁에 불려 다닐 일도 양가 부모님을 챙길 일도 아이가 속을 썩이는 일도, 결혼생활 속에 평범하게 일어날 만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족 누구나 내게 까칠한 성격의 남편을 당부했고 아이가 조금 크고 난 뒤 자연스레 나도 아이에게 아빠를 봐주라고 말했다. 성격적으로 바탕이 다른 남편에게 부탁하기보다 기질적으로 나와 비슷한 아이에게 그러는 편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남편은 몸속으로 자연스레 들고나는 공기 같은 부류가 아니다. 잔잔한 호수 같아 보이지만 미세한 파동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축에 속한다. 그 파동은 함께 사는 내내 내 마음을 떨게 했다. 우리 집 위를 종일 날아다니는 전투기 소리에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그렇다고 전투기가 날지 않는 게 아니듯이 어지간히 무뎌져 대게는 잊고 지내지만 남편이 만들어내는 파동이 없어진 건 아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걸 갑자기 깨달아버렸다. 잊고 있던 걸 아니 외면하고 있던 걸 마주하게 됐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만 애쓰고 싶다, 조금 지쳤다고 남편에게 긴 문자를 보냈다. 남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과 용서를 바란다고 했지만 (음주 문제를 제외하고) 자신의 어떤 행동을 반성해야 하는지 무엇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해 난감할 것이다. 나조차 내 감정을 해석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데 회사 일에 급급해 집은 늘 탈 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사람에게 이번 일은 느닷없는 공격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어항을 들여다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이 맑다. 떠돌아다니던 것들은 다시 돌 틈으로 숨었다. 물고기들이 하릴없이 입을 뻐끔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물고기를 따라 나도 입을 뻐끔거려본다. 내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양분이 될지 똥이 될지는 소화를 시켜봐야 알 수 있다. 무엇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유일하게 아는 건 끊임없이 소화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멈추는 순간 체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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