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 격리

by 하유미




퇴근하고도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던 남편이 할 말이 있다며 나를 은근히 불렀다. (이제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내 똑똑한 기억 세포들은 남들처럼 뇌가 아니라 심장에 몰빵 돼있어서 벌써부터 심장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와보라는 저 손짓, 진지한 표정, 낮게 깔린 목소리, 비밀을 말하려는 듯이 한껏 낮춘 자세. 항상 한 발 늦는 뇌세포가 저 불길한 신호들이 그동안 몰고 왔던 참사들을 하나 둘 떠올렸다.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같이 밥 먹은 사람이 오늘 확진됐어. 그런데 지금 내가 몸이 좀 안 좋아."


순간 짜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심장에 붙은 불을 순식간에 덮어버렸다. 이제 열기는 머리로 치밀어 입으로 뿜어져 나왔다.


“말은 바로 하지. 밥이 아니라 술이잖아.”


“어.. 어.. 그렇지.”


지난 두 주일 동안 하루가 멀다니 술자리가 이어졌다. 야근해서, 간만에 일찍 퇴근해서, 상사와 한 판 해서, 그걸 풀려고, 화나서, 기분이 좋아서. 극과 극의 핑계들은 모순된 사정과 감정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술자리에서 화합했다. 아이와 나는 조심하느라 외식도 거의 삼가는데 그간 술판을 벌여댄 남편에게 성이 났다.


“자가 키트로는 음성으로 나오긴 하는데... 혹시나 해서... 따로 잘게.”


내 눈초리를 읽었는지 남편은 얼른 끝 방으로 사라졌다.


다음 날 오후 남편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방역 지침 상 확진자의 동거인은 병원 검사 결과가 음성이면 바깥활동에 제재가 없었다. 아이 등교를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전염이 걱정이 되어서 남편 격리가 끝날 때까지 아이도 하교 후에는 자기 방에 가두기로 결정했다. 그날 저녁부터 두 사람의 본격적인 격리가 시작됐다.


남편이 거의 무증상 환자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명색이 환자이므로 잘 먹어야 해서 간편식으로 대신하던 아침식사를 밥과 국으로 바꾸었다. 밥 냄새를 맡아서인지 아침에 항상 입맛 없어하던 아이도 갑자기 잘 먹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밥과 국에 몇 가지 반찬을 담은 식판 두 개를 각자 방으로 배달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면 본격적인 청소가 시작됐다. 그간 우리 집 위생 상태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글 속에 흘리고 다녔기 때문에 다들 알겠지만 정리만 잘하지 청소를 가뭄에 비 오듯 하는 버릇이 있는 나로서는 버거운 일이었다. 손이 쉴 새가 없었다. 주방용 고무장갑을 벗으면 청소용 고무장갑으로 갈아 꼈고 그때마다 행주와 걸레를 번갈아 움켜쥐고 온 집을 닦고 다녔다.


발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보통 주말에 마트에서 큰 장을 봐놓고 주중에는 급하게 떨어진 식재료만 동네 가게에서 사다 먹었는데 세 식구 세 끼를 집 밥으로 해결하려니 매일 장을 보러 나가야 했다. (나를 뺀) 두 사람 다 육식 파라 고기만 굽고 삶고 볶고 튀겨도 잘 먹었는데 함께 모여 먹을 수 없으니 밑반찬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평소 반찬을 거의 만들지 않다 보니 어떤 양념이 없는지 어떤 부재료가 필요한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하루에 장을 보러 두세 번씩 다시 나가기도 했다. 여차하면 생활 걸음으로 만보를 채울 지경에 이르렀다.

친정에 걸음 한지도 오래돼 철마다 다양하게 얻어먹던 김치마저 때맞춰 똑 떨어졌다. 인터넷에 레시피를 검색하고 그동안 엄마에게 얻어먹은 입맛에 의지해 몇가지 김치를 담가보았다. 오이소박이, 무석박지, 깻잎김치, 배추 겉절이를 얼렁뚱땅 만들었더니 모양만 이름에 걸맞은 음식이 되었다. 일 년 내내 줄지 않고 냉동실에서 성에가 껴있던 고춧가루가 마침내 동이 났다.


두 사람은 격리 생활에 잘 적응을 하는 듯했다. 각자 노트북과 컴퓨터 화면을 보며 밥을 먹는데 익숙해져 갔다. 남편은 그간 보지 못했던 OTT 드라마와 영화를 마음껏 즐기며 내게 어떤 게 재밌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아이 방에는 컴퓨터와 휴대폰이 교대로 잠자는 시간 빼고는 24시간 켜져 있었다. 이 집에서 격리 생활을 힘들어하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무늬만 15년 차 주부지 독박 살림을 꼬박 일주일씩 해 본 건 처음이다. 두 어머니들께서 해주신 음식을 얻어먹고, 반찬 타령을 하지 않는 식구들 덕분에 주 요리 하나만 내놓고도 한 끼 잘 해결하고, 고기 요리를 남편이 도맡아준 덕분에 편히 밥해먹고 살았다. 청소와 빨래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는 데 민감하지 않은 식구들 덕분에 게으름을 부리면서도 살림이 그럭저럭 굴러갔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그간 잊고 있었던 여러 손들을 떠올렸다. 그들 덕분에 내가 얼마나 편히 살림을 살았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능력치 최대를 발휘하며 나를 도와준 세 도우미가 있어 격리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식기세척기님, 로봇청소기님, 건조기님에게 특별 감사를 전한다.


격리 해제 이틀 차인 어제저녁 남편에게서 회사 전체 회식이라고 전화가 왔다.

새된 내 목소리에 묻혀 사라져 가는 남편의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제 회사 사람 전부 다 걸려서 한 바퀴 돌았는걸 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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