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주말에 엄마가 동네 분들이랑 단풍놀이 가기로 한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고 사실 연이틀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볼일이 생겨서 여행은 못 가게 됐다고 말하는 모양새가 어째 주말에 대신 우리가 들이닥칠까 봐 불안해하는 투였다. 통화 내내 수상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던 엄마는 끔찍이도 좋아하는 손자 안부도 건성이더니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다!
본인에게는 캐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취조 상대를 아빠로 바꾸었다. 이런 일에는 항상 손발이 맞지 않아 눈치라고는 주워 먹을 것도 없다고 배우자에게 늘 타박을 받는 아빠는 예상대로 술술 불었다.
‘엄마 아픈 거 누구한테 들었어? 쯔쯔가무시 걸려서 아픈지 일주일도 넘었다.’
공모자의 문자 협조를 받자마자 자백을 받으러 주모자에게 당장 전화를 걸었다.
“야, 느그 아빠는 저래 평생 눈치가 없다. 쓸데없는 말을 왜 해가지고.”
“쯔쯔가무시라니. 그거 걸려서 한 번씩 사람 죽었다고 뉴스에도 나오는 그거, 맞지?”
“아휴, 그래 맞아. 말로만 들어봤지 내가 걸릴 줄 알았나.”
“도대체 엄마가 그게 왜 걸려? 그거 풀숲이나 잔디밭에서 진드기한테 물리는 거잖아.”
“그러니까 괜히 도토리를 봐가지고는......”
퍼뜩 지난 주말에 내게 갖다 준 도토리묵이 떠올랐다.
알고 보니 엄마가 그 말 많고 탈 많은 텃밭(아직도 그 텃밭이 안 없어진 것이 미스터리다.)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도토리를 줍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진드기는 신나게 엄마 등짝을 빨아댔던 거다.
나중에 쯔쯔가무시 증상을 검색해보니까 엄마가 겪었던 병상이랑 똑같았다. 이 주 정도 잠복기가 있고 그 뒤 오한과 고열, 피부발진, 복통이 있다.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1~2일 내에 증상이 빠르게 호전된다고 하는데 문제는 엄마도 의사도 독감이라 짐작하고 일주일이나 치료시기를 놓친 것이다. 계속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너무 아파서 병원을 옮겨 새로 진료를 받은 날,
“증상이 딱 쯔쯔가무시 같은데, 농사짓는 분도 아니시고 아파트 생활을 한다고 하시니. 허어 참.”
고개를 갸우뚱하며 하는 의사 말에 엄마는 순간 도토리를 주운 날이 떠올랐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진드기가 피를 빨아먹은 흔적이 있나 몸 구석구석을 살펴봤지만 별 소득이 없었는데 의사 눈의 사각지대에 숨어 있던 딱지를 그날 저녁 샤워를 하다 엄마가 발견했다. 그다음 날부터 치료에 들어가 오늘로 5일째 주사를 맞은 것이다.
“그깟 도토리묵이 뭐라고, 사 먹고 말지.”
이런 식의 내 잔소리에 좀체 수긍하는 법이 없는 분이 얼마나 호되게 아팠던지 순순히 인정을 했다.
“그래그래. 아유, 이제 도토리묵은 쳐다보기도 싫다.”
냉장고에 저 꼴 보기 싫은 도토리묵이 아직 반모 남아있다.
망할 도토리묵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중얼거리며 인터넷으로 환자 영양식을 주문했다.
입안이 헐어서 죽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처지에 이제 제법 괜찮아졌다고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 저 피의자를 어쩌면 좋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