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때문에 퇴사한 남자

by 하유미




불판 위에 고기를 뒤집는 사이 남편은 단숨에 맥주 한잔을 들이켰다. 목이 탔는지 속이 탔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업무 지시를 왜 카톡으로 하냐고. 바로 옆 사무실에 있으면서.”

“전화를 하지.”

“내 말이 그 말이야. 차라리 날 부르던가. 하여간 단톡방이 문제야.”


남편은 발주처와 원청 업체로 꾸려진 현장 사무실에서 근무하는데 한날 감리인지 감독인지가 현장 직원들을 단톡방으로 초대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공문을 보내도 되고 전화를 해도 되고 웬만하면 문자까지도 봐주겠는데 개인 업무지시를 단톡방에 올리는 건 참을 수가 없다며 남편은 열을 올렸다. 업무 보느라 바빠 죽겠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려대는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을 시간이 어딨냐는 말이었다.

참지 못할 때마다 남편은 단톡방을 뛰쳐나갔고 그럴 때마다 다시 끌려가기를 벌써 몇 번째이다.


“현장 직원들이 말이야, 오빠가 전 회사를 왜 퇴사했는지 모르나 보지?”


마시던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남편이 슬며시 웃었다.


“대충 알아.”

“정확하게 카톡 때문에 퇴사한 거 알아?”

“그래서 후배 한 명이 요새 계속 말하고 다니잖아. ‘자꾸 그러면 안 될 텐데요. 저 형님, 카톡 때문에 회사 나간 사람이에요!’”


우리는 익은 고기 한 점씩 집어 먹으며 깔깔거렸다.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정말 카톡 때문에 전 회사를 그만뒀다.

남편은 일할 때 자기 것이 아닌 회사를 자꾸 그런 줄 착각하며 일하는 부류이다.(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걸 근대적 노예근성이라고 한다.) 임금 노예답게 적당히 뒤로 빠져 있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새벽마다 전장에 선봉장으로 나서서 뛰어가는 남편을 보면 자본주의 인간에게 채워진 책임감이란 족쇄가 사람을 길들이는데 얼마나 효율적인가 하는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어 안쓰러울 때가 많다.


이처럼 일할 때 영혼까지 불사르는 남편이지만 일단 회사를 벗어나면 사람이 달라진다. 출근 때 빼놓았던 간, 쓸개를 도로 찾아 끼우고 퇴근하면 이후의 시간은 공적인 인간들이 절대 침범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 된다.

그러니 예전 회사 사장이 남편에게 업무차 타업체에 해야 할 연락을 퇴근 후 단지 카톡으로 하지 않은걸 문제 삼아 추궁을 했을 때 그는 부당함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 업무는 카톡으로 하지 않습니다.”

“아니 전화는 하면서 카톡은 왜 안 되는 건데?”

“카톡은...... 사적인 영역까지 연동되지 않습니까?”

“일하면서 공사가 어디 있나!”


그 말이 그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남편이 노예근성을 다 버리지 못한 근대인이라면 사장은 공과 사의 구분이란 태생적으로 없다고 믿는 봉건인이었다. 휴대전화를 사이에 두고 몇 세기나 떨어진 인간상 둘이 전쟁을 벌였다. 창, 방패, 철갑으로 무장한 중세 기사의 집요한 공격에 총알 없는 총을 든 근대인은 무기력했다. 총알은 월급으로 사야 하는 것이기에.


몇 달 동안 이어진 신경전-대체 단어로 괴롭힘-에 나날이 쇠하는 남편을 지켜보기가 딱해 이만하면 충분히 잘했다고 적은 흰 수건을 건넸다.

그렇게 남편은 백기를 들고 회사를 나왔다.

그는 퇴사 후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카톡 때문에 퇴사한 사람으로.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주장하며 평균적으로 농부는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한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은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는데 쓰였다고 주장했다.


김태형 심리학자의 저서 싸우는 심리학에 보면 농촌공동체가 해체되기 전 중세 봉건사회의 개인은 공동체 안에서 협력하며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낀 반면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은 경쟁 관계로 변질된 사회 속에서 타인과 철저히 분리되어 고립감과 무력감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내적으로는 아직도 봉건인, 근대인들이 현대적 문물을 이용하며 사는 시대. 현대는 허상일까?진정한 현대인의 모습은 무엇일까?

수렵채집인, 고대 농업인, 중세 봉건인, 근대인들 중 누가 가장 긍정적인 자유를 누렸으며 행복했을까?

따위의 철학을 콕콕 찍은 우스갯소리를 질겅거리며 우리는 오래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 어느 집 담장 너머로 감나무가 보였다. 가지마다 주렁주렁한 감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걸 보니 아주 예전에 국도변을 달리다 감을 따려고 갓길에 줄줄이 주차해있던 차량행렬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 장면이 이해가 안 갔었는데, 인간은 나이가 들면서 다시 수렵채집인으로 돌아가게끔 진화하게 돼 있나 봐.”

“무슨 말이야?”

“나만 봐도 그래. 봄에는 땅에서 나는 건 뭐든 캐고 싶고 가을 되면 나무에 매달린 건 뭐라도 따보고 싶어 지니까.”


미래에 수렵채집인의 삶을 꿈꾸는 현대인 두 명이 나란히 밤길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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