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고 말하는 법을 알 수 있다면

by 하유미




슬플 때만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자극을 받은 다양한 감정들이 눈물을 유발할 수 있다. 심지어 나는 평정심을 잃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어떤 이유로 감정이 불안정해지면 먼저 호흡이 가빠지고 시간차 공격으로 눈물이 뒤따른다.

어떨 때는 단순히 심장이 빨리 뛰어서 눈물이 나나 의심스럽기도 하다. 달리기(남들 눈엔 그냥 빠르게 걷기)나 등산할 때 눈물이 나는 건 터질듯한 심장 때문이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감상에 빠져서가 아니다.


어느 해 김장 때, 극구 말리는 엄마에 아랑곳하지 않고 설쳐대다 결국 제대로 몇 포기 양념 바르지도 못하고 절인 배추처럼 뻗었다. 소파에 누워 눈물을 찔찔 짜고 있으니, 고무장갑 끼고 열 일 하고 있던 아들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처럼 체력이 달려도 눈물이 난다.


가장 곤란한 경우는 긴장해서 눈물이 날 때이다. 특히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해야 할 상황에 놓이면 긴장도가 최고치에 달해 어떤 방법도 안 통한다. 소모임에서 경제기사를 읽으며 매번 왜 울먹이는지 동아리 분들이 알 도리가 없을테다.


특별히 콧물까지 가세하면 희극적인 효과를 톡톡히 수 있다. 예전에 종기가 나서 병원에 갔을 때, 짜내는 동안 눈물 콧물로 범벅이 돼 반들반들한 내 얼굴을 보고 간호사도 휴지를 건네던 남편도 입술을 깨물며 내 눈을 피하게 만들었다.


아니면 눈물샘이 민감한 친가 집안 내력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명절날이면 할머니부터 막내 삼촌까지 다 같이 모여 음식 준비를 하면서 서로 앞다투어 웃기는 이야기를 해댔다. 처음에는 배를 끌어안고 웃다가 나중에는 다들 눈물을 훔쳐 어린 내 눈에 도무지 이상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갖다 버리고 싶은 단점으로 질 떨어지는 체력과 함께 손꼽히기로 우위를 다투는 만고에 쓸데없이 눈물이 많은 점을 길게 설명한 것은 남편한테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을 때마다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부터 쏟는 버릇에 대해 변명을 좀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감정의 동요로 심박이 빨라진 상태에서 말을 하려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그러면 입은 더듬거리고 눈과 코는 맹렬히 분비물을 쏟아내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늘 지고 만다.

어물쩍 남편이 휴지를 건네주기라도 하면 자연스레 백기를 던지는 상황이 연출된다. 스트레스 주범 주제에 휴지 한 장으로 다정한 척 신분 세탁을 하는 광경이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어제 나는 또 졌다. 서운한 마음을 미주알고주알 다 쓸 생각은 아니다. 남편인들 내게 서운한 마음이 없을 리가. 그저 정도의 차이랄까.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 한 번은 남편이 아이 목욕을 시키다가 자꾸 칭얼대는 소리를 참지 못해 욕실을 박차고 나온 적이 있다. 하염없이 우는 아이를 달래 데리고 나오면서 보니까 샤워부스 문짝이 이가 맞지 않았다. 세게 닫히며 틀어진 것이다. 그날 이 샤워 때마다 어긋난 문을 면 마음 한 구석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언젠가 그 이야기가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남편은 사실을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차이가 아닐까. 일상 속에 깊이 자리한 감정을 내가 매일 마주치는 동안 남편은 깨끗이 잊은 일이 돼버린 차이.


분위기가 어느 정도 소강을 보이자 눈치 보며 남편이 하는 말에 기가 막혔다.


“나는 그냥 집에 오면 좀 편히 쉬고 싶은 거지 뭐. 일하다 지쳐서 돌아오니까.”

“당신은 직장이 항상 편안해?”

“당연히 아니지. 그러니까 집에서만이라도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것뿐이야. 절대 무관심한 게 아니야.”

“나는 집이 직장이야. 왜 내 직장은 항상 편안하길 바라? 그거 웃기는 소리야.”

“그건 또 그러네.”


양손 가득 휴지를 들고 전혀 웃기지도 않는 웃기는 소리를 하며 실실 웃는 남편 얼굴에 여유로움이 잔뜩 묻어났다.

제발 울지 않고 말하는 법을 알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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