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를 꾸미지 못한 죄

by 하유미




“잘못이 있다면 태도를 꾸밀 줄 몰랐던 것이겠지요.”


가뜩이나 어둡던 교장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버려 그녀의 말이 간혹 끊길 때에나 겨우 내뱉던 낮은 탄식조차 하지 못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항의 전화를 걸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었어요.”


탁자 위에는 ‘정년퇴임을 축하합니다.’라는 글이 적힌 띠를 두른 화분에 호접란이 흐드러지게 펴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분명한 외곽을 그려갈수록 교장의 시선은 초점을 잃어갔다. 그녀가 긴장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하는 말들이 흐려진 시야 사이로 꽃송이 끝마다 매달려 있는 듯했다. 꽃송이와 ‘축하합니다.’란 글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교장은 어지러웠다.


그녀의 말에서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란 구절을 ‘학부모의 정당한 권리’로 정정을 해주면서도 교장은 확신이 없었다.


학생이 학교에서 다쳤을 때 학부모에게 연락을 해 주는 것이 정당한 일이라면 아이가 학교에서 다쳐서 왔는데 아무 연락을 해주지 않은 일에 그녀가 담임교사에게 한 항의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복잡한 논리나 이해관계가 끼어들 성질의 일이 아닌데도 그녀는 후회하고 있었다.


실수의 주체가 명백한 사건이 바로 해결되지 않고 한 학기 동안 질질 끌며 이어진 것은 교사와 학부모, 학생 세 사람의 감정들이 얽히고설키며 여러 군데 풀 수 없는 매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부모는 학생을 볼모로 여기는 교사에게 참담함을 느꼈고 교사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학생이 치렀다. 한 학기 동안 지속된 교사의 학생을 향한 감정 분풀이에 도저히 교실에서 아이가 안전하지 않다고 여긴 그녀가 결국 교장을 찾아온 것이다.


보온병에 담아온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가는 그녀가 얼마나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하려고 말을 가리며 다듬고 있는지 느껴졌다. 그녀 앞에 놓인 보온병에서 옅은 옥수수향이 퍼졌다. 그녀의 말이 마치 보온병에서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그동안 교실에서 겪었던 옥수수 알갱이처럼 툭툭 불거진 일들을 오랜 시간 견디고 우려내며 만든 말을 보온병에 담아와 지금 꺼내 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후 교사에게 사실 확인을 따져봐야 할 믿지 못할 말들이 무수했고 교장은 자연스레 입을 닫았다.


책상 위에는 자이로스코프가 기운 각도를 유지하며 맴을 돌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도 모두 기울어 있었다. 협박, 모멸감, 수치심, 형평성, 벌, 반성문. 그녀는 무엇 하나 똑바로 서지 않은 단어들로 문장을 바로 세우려고 안쓰러울 정도로 애를 쓰고 있었다.


“아이는 억울하고 부당한 마음을 말로 할 수가 없어서 온 몸으로 참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태도가 고분고분하지 않아서 선생님이 기분 나쁘시겠지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반성하는 표정을 지을 줄 몰라서 곤욕을 더 치르는 것이겠지요. 태도를 꾸미는 법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다음 학년 때 지금 담임교사와 학생의 분리를 원하는 그녀에게 교장은 그러마 약속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나가고 교장은 자이로스코프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기울어진 자이로스코프는 사과와 용서의 궤도를 돌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교장실 문을 닫고 돌아서며 아이의 옛날 담임 선생님을 떠올렸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전해 준 편지에 적혀있던 단정한 말들이 선명하게 기억이 나 ‘아이고, 선생님!’을 속으로 외치며 그녀는 크게 떨었다.


‘궁금한 것엔 스스럼없이 질문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엔 되묻고, 모두가 당연하다는 것에 한 번쯤은 자신만의 논리로 해석해보는 그런 민기가 되었으면 좋겠어.’


선생님의 사랑을 받은 아이는 선생님의 바람대로 자라 질문하고 되물으며 자신만의 논리를 갖게 되었지만 덕분에 고만고만한 학생들 사이에서 도드라지게 됐다. 눈엣가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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