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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Apr 27. 2023

코스닥이 뭐예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다.


“현대사회는 걷는 데에도 비용을 지출하게 합니다. 그러니 여행 가시면 돈 아깝다 생각 마시고 그 지역 음식 실컷 맛보시길 바랍니다.”


맞는 말씀이다.


“역사상 가장 비싼 발걸음은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찍은 발자국이지 않을까요?”


오,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지금 이 생각을 하고 있는 주체가 나잖아?

눈이 번쩍 뜨여 침대 옆 전자시계를 보니 4시 9분을 밝히고 있다.

밤새 카페인 공격에 시달린 심장이 다 죽어 가며 애처롭게 헐떡거린다.

어제저녁 한 달에 한 번 있는 경제 소모임 날이라 밤늦게까지 책을 읽으면 피곤할까 봐 수업 가기 전 커피 한 잔을 홀짝거린 탓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머리맡에 메모지를 두고, 자다 깨면 꿈을 잊어버릴세라 기록부터 한다더니만 나는 뭘 적고 자시고 간에 어떻게든 다시 자고 싶다. 한 시간을 침대에서 버티다 포기하고 일어나 앉았다.  

곰곰이 꿈을 곱씹어보니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현대인은 이동하는데 자신의 발보다 탈 것을 이용하기 때문에 비용을 지불한다. 그럼 두 발로 걸어 다니면 되지 않나 싶지만 현대사회는 시간도 돈으로 계산할 수 있다. 이동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면 그만큼 시간 값을 더 치렀다고 볼 수 있다.

아예 안 움직이면 소모비가 전혀 발생하지 않을 것 같지만 딱히 그렇지 않다. 일없이 거의 돌아다니지 않는 나는 남편에게 돈 안 쓰는 배우자와 사는 이점에 대해 주입을 시키지만 따지고 보면 발걸음이 집 안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관리비가 늘상 폭탄이다. 냉장고 문을 여닫고 커피포트를 이용하고 정수기 물을 마시고 수돗물을 쓰고 변기 물을 내리고 형광등을 켜고 여름에는 선풍기, 겨울에는 히터를 튼다.

자연인들이나 무위도식이 가능할까 현대를 사는 특히 도시인이라면 숨 쉬듯이 돈을 써야 한다.


어쩌다 경제 소모임에 들어가게 됐다. 어쩌다 인문학 센터에 발을 들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관심거리는 많지만 행동력이 제로에 수렴하는 탓에 평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우연히 아주 사소한 불티가 날아들면 차고 건조한 시베리아 기단 아래서 마를 대로 마른 생각에 불이 붙어 생각지도 못했던 곳을 제 발로 찾아간다. 가끔 안부를 주고받는 지인과 통화를 할 때면 의외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어쩌다 거길 가게 됐어?’

정말 어쩌다 갔다는 말 밖에 해줄 말이 없어 안타깝다.


경제 소모임에 참여하게 된 건 좀 특이한 경우인데 평소 관심이 있었던 분야 이어서가 아니라 의도를 갖고 시작한 일이다. 아이는 나처럼 코스닥이 뭐예요? 따위를 묻는 금융맹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으로 참여를 하게 됐다.

스스로를 문서난독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긴 글도 잘 읽는 주제에 유독 보험 약관이나 은행의 각종 상품안내서, 부동산 서류양식 등을 읽을 때면 눈을 멀쩡히 뜨고도 감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신세가 된다.

어려서는 그런 골치 아픈 일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라 생각했고 돈을 벌며 사회생활을 할 때는 그저 돈이란 통장에 넣어 두는 것인 줄 알았다. 통장에 사는 인플레이션이란 돈벌레가 내 돈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줄 모르고 쥐꼬리도 비웃을 이자에 만족하면서 한편으로 항상 통장에 구멍이 나는 걸 불가사의해하면서.

사는 내내 경제를 모른 덕분에 어릴 적 로망을 현실로 이루었다. 집시처럼 자유롭고 빈털터리인 삶. 내실은 내일 쓸 돈이 늘 불안정한 삶이다. 그래서 남편은 월급노예 신세를 면치 못한다. 월급 꽂히는 날 치솟는 퇴사의 꿈은 각종 공과금, 카드 값, 학원비 등을 거치며 수일 내 물거품처럼 사그라진다.


내 삶을 돌아보면 현재를 살면서도 매 순간 과거를 꿈꾸며 살아왔다. 이제 공부 시작이라 앞으로 미래를 꿈꾸며 살겠다고 까지는 다짐할 수 없지만 현재에 발자국을 내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할 생각이다.

통장의 정체는 밑 빠진 독이 아니란 걸, 현대인의 진정한 자유는 집시의 삶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자립을 했을 때 누릴 수 있단 걸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카페인 때문에 어영부영 글 한편을 썼다. 감사할 수도 있지만 도둑맞은 잠은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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